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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근 Oct 08. 2021

디자인은 경험이다 001

나는 정말 좋은 디자인을 경험하고 있을까?

이런 말이 있다.

좋은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인지(이었는지) 사용자가 먼저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나쁜 디자인은 곧바로 알 수 있다고.


좋은 디자인은 외적인 측면 이외에도 다양한 기준으로 정의될 수 있다. 좋은 디자인은 특정 제품이던 단순한 시각 이미지이던 사용자의 이전 행동, 현재 행동, 미래 행동을 쉽고 편하게 연결해준다. 좋은 디자인은 환경과 기능에 꼭 필요한 만큼의 시각 표현으로 강조될 때는 강조되고 숨어있을 때는 숨어있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가 느끼기에 마땅히 그래야 할 형태로 마땅히 있어야 할 위치에 마땅한 동적 상태 혹은 정적 상태로 존재한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가 이전에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그 디자인을 접했을 때 그런 모습인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심지어 같은 기능을 가지고 같은 환경에 놓인 다른 디자인을 판단하고 평가할 비평적 안목까지 길러준다. 만약 어떤 제품을 사용하다가 혹은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이 정말 절대적으로 나쁜 디자인이거나 이전에 그보다 더 좋은 디자인을 경험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은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인하는 사람(혹은 사물)도 그 디자인을 사용할 사람(혹은 사물)도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사용될 환경과 디자인을 사용할 대상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해보아야 좋은 디자인에 가까운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디자인을 경험해봐야 각자에게 맞는 디자인이 뭔지, 좋고 나쁜 디자인이 뭔지, 내 삶의 질을 개선할 나름의 디자인 판단 기준점이 생기게 된다. 디자인에 대한 사용자의 경험이 쌓일수록 디자이너는 사용자에게 더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보다 나은 피드백을 디자인 시장에 전달할 수 있다.


디자이너와 사용자의 경험적 상호작용으로 우리 사회의 디자인 수준이 결정되고 디자인 수준이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평생 좌석이 딱딱하고 등받이가 빈약하고 팔걸이가 없는 나무 책걸상을 사용하던 사람은 누군가 쿠션을 제공해주기 전까지는 의자 하나로 삶의 질을 개선할 필요성도 의지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번 쿠션에 앉아보면 그리고 팔걸이가 있는 의자, 완충장치가 있는 의자 등 여러 가지를 경험해본 후에는 자신에게 가장 맞는 의자를 비교 선택할 수 있고 딱딱하고 인체공학적이지 못했던 나무 책걸상이 안겨준 허리디스크와 거북목을 극복할 의지를 가질 수 있다. 더 기능적이고 심미적으로 나아진 책걸상은 사용자의 작업 효율을 백배로 높여줄 수 있다. 결국 이는 삶의 질의 증대로 이어진다. 디자이너는 특정 사용자가 선호하는 사용자의 의자가 무엇인지 경험해보고 특정한 디자인 방향성을 설정해 좋은 디자인의 의자를 만들어나갈 수 있고 결과는 다시 사용자에게 돌아가 사용자에게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제공한다.


나는 좋은 디자인은 이렇게 디자이너와 사용자의 경험적 상호작용으로 정의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의 정의를 마케팅에 직관적으로 잘 활용한 예시가 시디즈의 의자 광고라고 생각한다. 좋은 의자가 성적, 연봉, 인생을 바꾼다는 시디즈의 의자 광고는 좋은 디자인이 사회를, 삶의 질을 바꾼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이웃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토 면적이 작고 인구도 적지만 면적당 인구 밀집도는 높아 일부의 취향이나 경험이 전체로 빠르게 번질 수 있다. 무엇이 좋은 디자인이고 나쁜 디자인인지 빠르고 밀도 있게 시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사회가 정의하는 좋은 디자인이 개인의 개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다수가 선호하는 유해적 디자인에 독과점 당할 위험성도 공존한다. 이렇게 되면 특정 계층이나 특정 인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으로 여겨져 오히려 다른 계층이나 불특정 다수에게는 나쁜 디자인을 좋은 디자인이라고 인식 시켜 사회의 전체적인 삶의 질의 수준이 *제로섬이 될 수 있다.


*제로 섬(zero-sum)은 게임이나 경제 이론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모든 이득의 총합이 항상 제로 또는 그 상태를 말한다.


이런 제로섬 디자인 경험의 예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가장 쉬운 예로 패션디자인을 보면 대형 미디어를 통해 최신 유행이 빠르게 번지고 그에 따른 수많은 피드백이 시장에 빠르게 축적된다. 이를 통해 매년 발전된 레깅스, 고어텍스 등의 기능성 의류, 에슬레져 디자인들이 좋은 디자인으로서 더 건강한 도시 생활 경험, 아웃도어 경험을 사용자들에게 빠르게 제공하고 있다.


기능적으로는 분명 그런 의류들이 생활을 훨씬 편리하게 했다. 하지만 그런 디자인들이 모두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다. 스포츠 분야에 있어 엄청난 역량을 낼 필요가 없는 사용자들, 운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 몸매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도 이제는 모든 사람이 레깅스를 입으니 나도 그런 의류를 입어야 당당히 운동할 수 있다는 사회적 압박을 느끼는 사용자들이 있다. 당당하고 실용적이며 현대적인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는 레깅스 등의 최신 유행하는 디자인 스포츠 의류는 오히려 혈액순환 장애나 기타 신체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최악의 디자인일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현재 다수가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게 사회적으로 제로섬 디자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애플 제품은 분명 좋은 디자인일 수 있다. 또 시스템 선반과 USM의 모듈형 가구도 좋은 디자인이다. 그런데 우스갯소리로 스타벅스에 들어가려면 애플 제품이 있어야 한다거나 요즘 신혼집 잘 꾸미려면 시스템 선반하고 USM 가구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등 우리나라는 특정 좋은 디자인을 획일화해 모두에게 적용하고 강요하고 또 그걸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짙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에게 맞는 디자인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내 주위의 디자인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경험을 이끌어 주고 있을까? 어쩌면 나는 특정 디자인 독재에 힘없는 노예 신민으로 전락하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의 디자인, 아니 적어도 나, 내 삶의 질을 제로섬으로 만들지 않는 디자인을 나는 사용하고 있을까? 앞으로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다양한 디자인 경험을 UX 디자이너 입장에서 하나씩 공유해보려고 한다. 과연 나는 제로섬 디자인 환경에 있을까 아니면 서로 도움이 되는 디자인 환경에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


매일 만나는 일상의 디자인, 예를 들어 카페의 커피테이블, 혹은 콘센트 디자인, 엘리베이터 버튼 디자인등을 접하며 그것이 나에게 좋은 디자인이었는지 나쁜 디자인이었는지 디자인적 경험을 공유하는 시리즈를 연재하려고 한다. 그런 경험들이 일기처럼 쌓여 많은 사람들과 집단 지성을 이루어 우리가 보다 더 나은 디자인 환경을 요구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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