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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근 Oct 13. 2021

디자인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디자인은 경험이다 002

어릴 때 난 그리스 신화를 통째로 외울 정도로 즐겼었는데 이제는 특별하게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유독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어 삶의 매 순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들이 있는데 어떨 땐 그것들이 섬광을 번뜩이며 커다란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면서 내게 매번 새로운 충격을 주는 이야기는 바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을 지나는 여행자들을 살해하는 흉악범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살해법은 상당히 독특한데 우선 그는 쉼터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지나가는 여행자를 집으로 초대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여행자를 자신의 침대에 눕힌 뒤 여행자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침대 길이에 딱 맞도록 여행자의 다리를 잘라 죽인다. 반대로 여행자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여행자의 키가 침대에 꼭 맞도록 여행자의 키를 늘여 죽인다.


경험적 측면에서 굉장히 재미난 설정이 하나 있는데 바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크기와 키가 절묘하게 똑같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그 사람은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프로크루스테스의 시중을 드는 노예가 됐다. 나중에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영웅 테세우스를 만나 하필이면 침대 크기랑 꼭 맞는 키의 테세우스 부하에게 자신이 여행자를 살해하던 방법 그대로 죽임을 당한다.




나도 프로크루스테스일까?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살면서 의외로 내가 프로크루스테스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적 갈등 상황들 속에서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디자이너라고 나를 설명하게 되는 일들을 하면서 이제는 디자인적 관점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상당히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디자이너는 사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어떻게 사용자에게 자연스럽게 제공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사용자 경험이다.


디자이너는 의도적으로 사용자에게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제공하면서 사용자가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위에 올려졌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한다. 디자이너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디자이너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 경험에 대한 끈질긴 연구를 통해 사용자가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먼저 처리해주면서 꼭 필요한 경험만 골라서 전달한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를 침대에 맞게 조절하려고 하지 않고 사용자에 맞게 침대 크기를 조절해준다.


사용자에게 10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그중 불필요한 선택지를 디자이너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잘라내 5가지로 줄여준다. 어떻게 보면 사용자의 여분의 자유도가 제한되지만 동시에 사용자가 특정 경험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사용에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다. 그러면 사용자는 오히려 그 장점 때문에 자신의 선택지가 제한되어 생기는 단점을 잊게 되거나 애초에 인지하지도 못하게 된다.


사용자의 선택지가 10가지 밖에 없어 불편했다면 꼭 필요한데 없었던 5가지 기능을 디자이너가 추가해 사용자 경험을 폭넓게 늘려줄 수도 있다. 새롭게 추가되는 선택지들을 사용자가 갑자기 학습하는데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먼저 생각지도 못했지만 막상 실제로 사용하고 싶은 기능과 형태라면 학습에 대한 불편함은 잊히게 된다. 물론 어떻게 자연스러운 학습을 유도하는가도, 어떻게 자연스럽게 새로운 프로쿠르스테스 침대에 유인할 것인지도 디자이너의 몫이다.


반대로 두 번째 디자이너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는 그리스 신화와 똑같이 사용자를 침대에 맞추려는 역기능을 가진다. 나쁜 디자인은 사용자 경험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아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기만 한다. 물론 사용자 경험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디자인이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기라도 하면 그게 더 대단한 걸 지도 모른다. 이런 디자인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는 사용자에게 꼭 필요한 경험은 잘라내 버리고 불필요하고 번잡한 경험만 늘려서 제공한다. 사용자의 선택지가 10가지가 있다면 여기에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선택지 10가지를 더 추가해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내용들은 사용자에게 외면받아 얼마 뒤 사라지고 또 다른 불필요한 리뉴얼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미 사용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억지로 늘려 과장하는 디자인에 질려 떠났을 것이다.


오히려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전달하던 부분들을 디자이너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잘못된 근거로 없애버리기도 한다. 사용자는 있었을 때는 좋은지 몰랐지만 막상 해당 디자인이 사라지거나 바뀌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사용자가 기존의 어떤 기능, 어떤 형태를 만족스럽게 느끼고 있는지 디자이너가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고 스스로의 감각에 의지해서 디자인하여 생기는 일이다.


첫 번째 디자이너는 개과천선한 프로크루스테스고 두 번째 디자이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당 그대로의 프로크루스테스다. 두 경우 모두 각각이 디자인한 침대에 꼭 맞는 사용자가 나타나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의 열렬한 팬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첫 번째 경우는 가장 핵심이 되는 사용자들이 꼭 맞는 침대에 누울 가능성이 높지만 두 번째 경우는 침대랑 꼭 맞더라도 엉뚱한 사용자가 침대를 사용해 서비스 자체의 방향성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떠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희생양은 사용자


우리 모두가 착한 프로크루스테스 디자이너가 되고 싶고 사용자는 그런 디자이너를 만나고 싶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착한 프로크루스테스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여러 주변 상황이 디자이너를 나쁜 프로크루스테스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단기적인 금전적 목표를 강요하는 프로젝트나 생산량 등의 실적을 채우기 위해 보여주기 식으로 빠르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디자인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프로크루스테스도 다방면으로 생계는 유지해야 하기에 결국 사용자가 희생양이 되는 것 같다. 불편한 경험들이 사용자에게 돌아가게 되면 사용자의 삶의 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디자인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 디자인 사회와 디자인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테세우스를 만나기 전인 것 같다. 좋은 디자인을 제공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본 소양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을 소비하고 디자인을 의뢰하는 사람들 역시 사용자를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적 사고를 습득해 각자가 먼저 나쁜 프로크루스테스를 처단하는 테세우스가 될 필요성이 있다.


다음엔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로 프로크루스테스와 디자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조금 더 가볍고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 이야기를  전달하려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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