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나타났다

11 너구리

by dhandhan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영하 10도 아래의 날씨에 화가 났다. 핫팩으로 손을 녹이며 일해도 야외 활동 시간이 지속될수록 추위에 노출된 부위에 통증이 느껴졌다. 구부러진 상태로 굳은 손으로는 일상적인 동작조차 부자연스럽고, 잡은 물건도 자꾸만 놓친다. 이런 날 삽질이라니.


벌써 두 마리의 사체를 발견했다. 작년 여름부터 나타난 너구리가 겨울 동면에서 깬 것 같은데 시기를 잘 못 잡은 듯하다. 원래는 땅굴을 파고 집단으로 모여 체온을 나누며 겨울잠을 자는 게 습성인데 뭐가 잘 못 된 것일까. 재건축 지역에서 쫓겨난 고양이들이 제일 견디기 힘든 시기도 겨울의 한파 기간이다. 밀집된 주택가와는 다르게 허허벌판에서 겨울을 나려면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주하고 텅 빈 재건축지역의 고양이들은 겨울집을 마련해 줘도 밤사이 겨울집에서 동사한다. 7년 동안 매년 겨울이면 죽은 고양이들을 겨울집에서 꺼내 묻어줬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너구리까지 합세했다.

© 2022. dhandhan 겨울집에서 나오다 급사한 재건축지역 고양이

익숙하고 귀여운 고양이도 죽을 때는 그리 귀여운 모습이 아니다. 피를 토하며 죽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몰골을 보며 상자에서 꺼내고 땅을 파고 묻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처음 만나게 된 너구리, 이제야 겨우 습성을 문자로 이해했을 뿐인데 겨울을 못 이기고 죽는다. 몇몇은 개선충에 걸려 벌거벗은 몸으로 겨울을 나려니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닐 것이다. 개선충은 너구리가 잘 걸리는 피부병 중 하나다. 진드기목 개선충과 진드기로 옴이라고도 불린다. 포유류 전반에 걸쳐 전염되고 피부에 기생하기 때문에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너구리의 경우 걸리면 피부가 가문 땅처럼 갈라지며 털이 빠진다. 겨울에 집단으로 겨울잠을 잘 때 서로에게 옮기는 경향이 있다.


© 2023. dhandhan 서식지 부족으로 주택가로 내려온 너구리

너구리의 치료를 위해 서울야생동물센터에 구조 문의를 했더니 뚫린 공간에서는 포획이 어려우므로 상자로 덮거나 막힌 공간에 가둔 후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난감했다. 주택가에서도 잡기 어려울 것 같은데 뻥뻥 뚫린 산에서 나보고 너구리를 포획하라니. 아, 갈 길 먼 한국의 동물 정책들.



생각해 보니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한파가 문제다. 한 때는 한국의 대표 기후가 삼한사온이었다. 겨울이면 3일 추웠다가 4일 동안 한기가 풀린다. 추워 미칠 것 같을 때 풀린다. 그럼 한숨 돌릴 수 있고 추위에 패턴이 생기면 적응도가 올라간다. 그런데 이젠 적응이 힘들다. 여름도 미치도록 더운데 겨울은 더더 미치도록 춥다. 오리털 패딩으로 무장을 해도 바깥에 30분만 서있으면 발끝이 시리고 소매 끝으로 추위가 스멀스멀 들어온다. 동물이 털로 무장을 해도 추위를 이기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몸에 한기가 든 채로 3일을 견디는 것과 일주일을 견디는 것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면에서 봤을 때 3~4배의 차이가 난다고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이는 수명과 직결된다. 길고양이 수명이 평균 5년이라면 집고양이 수명은 평균 15년 정도다. 3배 차이가 난다. 그중 가장 큰 요인이 겨울을 맨 몸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사람들은 삼한사온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다. 기후변화, 기후위기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 위기가 늘 극적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기는 지리멸렬하게 나타난다. 가장 낮은 위치 가장 벌거벗은 위치에 있는 사람, 동물에게만 가장 극적으로 닥치기 때문에 적당히 따뜻한 곳에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대개의 사람에게 이 위기는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매일 야외에서 동물들의 생활을 관찰하거나 추적하거나 돌보는 사람에게는 이 일주일 간 지속된 추위가 너무나 공포스럽다. 추운 날씨에 너구리까지 묻어줘야 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 인간의 각성이 너무 늦어 화난다.


너구리가 너무 고통스럽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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