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나타났다

14 달려라, 삼색이!

by dhandhan



단지 내 목소리 하나뿐이었다.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그 사람의 목소리 하나만 의지해 허공에 떠있는 구름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을 삼색 고양이 ‘삼색이’가 해냈다.


© 2025. dhandhan 재건축지역에서 이주한 삼색이


80년대에 산을 뚫어 길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터널이 아니라 산을 둘로 갈랐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갈라진 산을 다리 하나로 연결했다. 사람들은 허공에 떠있는 듯 얹힌 그 다리를 ‘구름다리’라고 불렀다. 다리 양 끝엔 다리와 직각으로 비탈길이 만들어졌다. 다리는 6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길이와 차량이 왕복으로 지나갈 수 있는 너비에 더해 양측에 인도까지 만들어져 있다.


삼색이는 6차선 도로만 건넌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나 유용해 보이는 안전펜스는 고양이처럼 작은 체구의 고양이에게 아무런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세로 기둥과 기둥 사이는 고양이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넓었고 실수로 펜스 틈을 통과하면 착지의 달인이라도 죽을 수 있는 높이 아래로 추락이다. 고양이들도 이 사실을 알기에 구름다리를 건너도록 수십 번 유혹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구름다리 가운데서 바라본 풍경은 수평으로 펼쳐진 하늘과 긴 도로와 높은 건물이다. 늘 인간의 편의만 제공되는 도시에서 모든 걸 올려다봐야 하는 고양이에게 수평으로 펼쳐진 풍경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지 알 수 없지만 생소하고, 낯선 만큼 두려움이 먼저 생겼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삼색이는 재건축구역의 펜스 입구로 밀려나면서 인적이 뜸해진 밤이면 문 앞에 나와 한참 동안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을 구경하곤 했으니 구름다리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건너갔을 때 어떤 이익과 위험이 있을지 가늠할 만큼의 정보가 없어 지켜보고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때가 왔다. 고양이가 구름다리를 건너야겠다고 마음먹은 때. 건물 부수는 속도에 맞춰 고양이들은 재건축구역 바깥으로 밀려났고 자신이 숨을 곳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았고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먹이는 늘 부족한데 비둘기까지 떼로 몰려들어 남아나는 먹이가 없다. 춥고 배고프고 쿵쿵 건물 부수는 소리, 낯선 사람들의 움직임, 쇠붙이 부딪히는 신경 긁는 소리로 편할 날이 없다. 이제 떠나보자! 그런 생각이 들 때, 얼씨구나 믿는 사람이 다리 건너로 힘차게 잡아당긴다. 가자! 고고!


삼색이가 다리를 건너올 때 가슴이 벅찼다. 내가 바라던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총체적인 이상이 실현되는 순간이어서. 한국의, 도시의, 서울의 길고양이는 삶이 참 팍팍해서 불쌍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함에도 동정심 안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범주 안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동정심을 갖지만 의외로 그 대상들은 자신을 동정하며 살지 않는다. 동정심은 분명 타인을 이해하려는 공감의 한 형태이지만 동정심은 오히려 내가 가진 자아감이나 편견만 드러낼 뿐이다. 세상에 어떤 존재도 동일한 조건을 갖고 살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조건이 열악하더라도 그 조건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동물도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부터 출발해 살 방도를 찾아간다. 전문적 표현으로 진화는 종차원이 아니라 개체의 역량에 의해 추동된다. 나는 고양이가 맞닥뜨려야 하는 위험을 쉽게 제거하기보다 그 위험을 헤쳐나갈 권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이고, 어떤 활동을 펼칠 것인가 라는 질문을 품고 시작하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활동의 모습이다.


나는 내 활동을 통해 동물에게, 사람에게 나를(나의 주장을) 증명한다. 고양이에게는 비록 위험이 따르더라도 함께 헤쳐나갈 믿을만한 사람으로, 사람에겐 고양이가 이 도시의 일원이며 마땅히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공원으로 건너온 삼색이를 지켜보던 중년의 남자는 내게 좋은 일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양이가 구름다리를 건너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이는 건 그에게도 마찬가지라 삼색이가 나를 믿고 따라온 것에 감동한 눈치다. 그는 알았다. 그 어떤 칭찬보다 제일 듣기 좋은 말은 바로 나를 지지한다는 의사표현이라는 것을.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을 보면 절대 가만있지 않는다며 자신의 위치에서 맞서고 있음을 피력하는 그가 든든했다. 처음 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받는다. 그건 나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가치를 증명해 낸 사람들의 노고가 쌓인 시간만큼 비례한다. 당당히 사람들 보는 앞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는, 위험에 맞선 삼색이의 용기가 가장 큰 증명이다.


© 2025. dhandhan 재건축지역을 나와 구름다리를 건너는 삼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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