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나타났다

15 동물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

by dhandhan




일종의 당연한 수순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의 내면을 봐야 하겠지만 그의 내면을 이루는 것은 그가 놓인 환경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인간 종이면서 저마다 처한 환경이 달라 각기 개성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고, 비슷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집단적인 사고가 다시 환경을 조직하게 만든다. 상호적이고 유기적인 일이라 한 사람에 대한 이해는 그가 놓인 사회를 같이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일련의 이해의 과정은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길고양이들의 생활사를 관찰하면서 사람만큼이나 고양이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인지 동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 동물의 서식지가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생명체가 모여있고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병행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러시아 일부 지역에만 서식하는 ‘물고기잡이부엉이’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러시아로 건너간 연구자의 기록인 <동쪽 빙하의 부엉이> 같은 경우 책의 거의 절반은 부엉이가 서식하는 환경 묘사가 대부분이다. 서사나 은유가 많은 인간에 관한 글에 비해 지루할 수 있지만 동물에 대한 기록이라면 당연히 은유보다는 상세한 현장 기록이 우선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한 동물이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놓은 인간적 관점은 오히려 동물에 대한 편견을 만들기 십상이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지향아래 동물에 대한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이 사는 곳인 숲, 숲을 이루는 식물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동쪽 빙하의 부엉이>에서 물고기잡이부엉이의 서식지를 묘사할 때 나무가 부러진 사건이 어떻게 그 지역 일대의 흐름을 바꾸는지 묘사한다. 그 사건의 묘사는 곧 풍경의 묘사이기도 한데 그 풍경 속에서 동물이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할까를 상상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의인화과정이 포함되긴 하지만 동물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래서 난 동물에 대한 글은 함부로 인간의 감정을 독자에게 들이미는 것이 오히려 부당한 감정이입처럼 느껴지곤 한다.


부러진 나무는 그 자체의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 자신의 물리적 크기, 생물학적 특성, 경제적 측면 등을 고려해 보고 부러진 나무와의 상대적 관계를 따져보면 저마다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난겨울 습기를 머금은 폭설로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들이 많이 부러지거나, 관목의 경우 바닥에 주저앉은 듯 가지가 바닥으로 쳐졌다. 당시 재건축지역에서 근린공원으로 이주한 고양이들을 챙기기 위해 산행을 해야 했던 나는 산책로를 가로지르며 쓰러진 나무 때문에 이동할 수 없었다. 지나가야 하는데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내 키가 실제적으로 장애가 되었다. 나무를 타고 넘기에는 높았고, 쓰러진 나무 아래로 기어가자니 계단을 가로지른 탓에 포복자세가 아니면 지나갈 수 없었다. 아마 생물학적으로 좀 더 키가 크고 힘이 좋은 남성이었다면 나무를 타고 넘었을 것이다. 구청에 산책로 복구 작업을 요청했으나 워낙 많은 나무들이 부러진 탓에 산책로가 복구되기까지는 거의 2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2주 동안 매번 쓰러진 나무 아래를 기어서 왔다 갔다 하느라 자잘하게 몸에 상처가 생겼고 감정적으로는 짜증 났다. 나의 짜증은 2주 후 더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 되었지만 그 불편을 해소하지 못했다면 지속적인 불편감을 느끼다 그 길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회의 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의 경제성을 따지면 돌아서 가는 것보다 잠시의 짜증이 훨씬 경제적이었기 때문에 포복자세를 감수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쓰러진 나무 아래를 기어서 오가는 동안 나를 응원해 준 고양이는 낑이다. 낑이는 내 크기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크기라 나무 아래를 기어갈 필요가 없었다. 설령 기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이 유연하고 보들보들한 동물은 상반되게도 강력한 뒷발의 힘을 이용해 내 키도 거뜬히 뛰어넘을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인간에게는 자연을 억제하는 기술력은 있을지 몰라도 그 기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몸이란 무척 하찮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동물이 사는 환경조건을 탐색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무엇이 그들의 행동을 독려하거나 억압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하는지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불편하다고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좋다고 마냥 누리기만 하진 않는다. 불편을 피하거나 해소하려는 방법을 찾기도 하고 행운을 누리다 의심과 경계심의 싹을 틔울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결론이 나면 행동이 바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인간이 복잡한 만큼 동물도 복잡하고 개체마다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이 전제가 없이 동물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또 다른 자서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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