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나타났다

16 모기

by dhandhan


산에서 고양이 급식소를 청소하려고 쭈그려 앉으면 바닥과 내 엉덩이 사이의 공간은 불과 10센티미터 정도다. 그 자세로 그릇을 닦고, 급식상자 안에 떨어진 사료를 치우고, 더운 여름이면 떨어진 사료에 곰팡이가 피어있어 소독제로 세균 번식도 억제시켜야 한다. 실로 전염성 질병의 예방은 많은 생명체가 거의 전쟁 수준으로 치러 온 대결이다. 쭈그려 앉은 자세로 청결을 위한 청소를 하고 나면 대략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 시간이면 역사도 뒤집을 수 있다.


엉덩이와 바닥 사이를 오가며 자신에게 거의 무방비 상태인 인간을 상대로 벌이는 포식행위자, 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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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색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산모기의 정식 명칭은 흰줄숲모기다. 내 팔에 침을 박고 매달려있을 때 근육에 힘을 주면 침을 빼지 못한 채 내리치는 내 손바닥에 눌려 아작 나는 이 모기와 나는 8년째 '전쟁' 중이다. 얇은 바지 정도는 쉽게 뚫고 흡혈하기 때문에 여름이면 내 엉덩이는 산모기에게 물린 자국으로 울퉁불퉁하다. 엉덩이뿐이랴. 팔, 다리, 목덜미, 얼굴, 눈두덩이 등 노출된 부위면 가리지 않는다. 처음 산모기에게 물렸을 때를 기억한다. 가려워 긁었더니 물린 곳이 혹 난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점점 더 가렵고 긁으면 피가 비칠 정도가 되어 몹시 쓰라리다. 게다가 그 상태가 무려 일주일 동안 지속 되는데, 일주일 후부터는 간헐적으로 가렵기를 한 달 동안 이어갔다. 고로 나는 산모기에게 물린 후유증을 초겨울까지 이어갔다. 산 초입에는 방충 스프레이가 설치되어 있지만 효과를 본 적은 없다. 아마 방충제에 이미 내성이 생겼으리라.


모기와의 '전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저 먼 아프리카 대륙은 가려움이 아니라 말라리아 전염의 매개체로 모기와 전쟁을 벌인다. 한 계절 극심한 가려움증의 수준이 아니라 생사를 오갈 정도로 모기의 영향력이 큰 아프리카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다고 할 정도의 전면전이다.

모기 박멸을 목표로 삼은 탄자니아 출신 연구자 프레드로스 오쿠모 Fredros Okumo는 테드 강연 <왜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 모기를 연구하는가>에서 모기와의 전쟁에 필승을 위한 방법으로 지피지기 전략을 내세운다. 즉 모기의 생활패턴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 모기인데도 우리는 모기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 그저 모기를 피하기 위해 살충제가 처리된 방충망에 기대고 있다고 한탄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바이러스의 매개체인데도 모기를 피하는 방법이 딱히 없긴 하다. 그 방충망도 완벽하게 모기를 차단하지 못하는 날엔 귓가에 윙윙거리는 모기를 잡자고 졸린 눈을 비비며 전기모기채를 휘두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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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를 한여름과 묶어 경험해야 하는 세트 상품처럼 당연하고 하찮게 여긴 나머지 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모기>를 읽고 나서다. 여름마다 산모기에 시달리며 이 모기라는 생명체에 대해서 여러 감정을 품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기>라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감정이라 하면 우선 물릴 때마다 가려워 짜증 났다가, 오죽 먹을 게 없으면 나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까 하는 연민도 생겼다가, 우리가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인가 하는 거시적 관점을 가지는 등 혼자 별별 생각을 다 하긴 했었다.

<모기>는 인류 역사에서 모기로 인해 사멸한 인물과 그 인물의 사멸로 바뀌게 된 역사의 흐름을 짚어주며 인간의 역사는 인간 혼자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중요한 순간을 바꾸는 데 모기가 일조했다는 사실은 사소한 것이 삶에 끼치는 영향력이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진실을 보여주는데, 이는 우리가 써내려 온 역사가 상당히 편협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심의 싹을 틔우기에 충분해 보였다. 동물을 대면하고서야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처럼 모기가 써 내려간 생존의 역사가 인류의 여러 흥망성쇠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의 주요한 인물들도 그저 자연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적 감각을 심어주었다.


모기는 우리를 여름밤마다 괴롭히는 빌런이거나, 더 나아가 바이러스 매개체라는 역할 보다 더 중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구에 사는 모기의 종류는 무려 3500종이나 된다고 한다. 이렇게 종류가 많다는 것은 지역마다 모기가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방식도 종의 수만큼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는 도시가 얼마나 많은 생명의 다양성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구석구석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 생명체들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는데, 바로 이 책의 서문에서 런던의 ‘지하철 모기’에 대한 연구사례를 인용한다.

지하철 세 개 노선에서 채취한 모기가 유전적으로 제각기 달랐다는 사실이다. 노선마다 지하 환경이 거의 분리된 상황에서 차량 크기에 거의 딱 맞는 터널 속으로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것은 피스톤 운동과 흡사한 운동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각 터널에 서식하는 모기떼가 뒤섞인다고 번은 설명한다.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 p.10


3500 종의 서로 다른 유전체를 지닌 모기라니. 그리고 지하철 터널마다 다른 유전자를 가졌으며 그 유전자 풀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지하철 운행에 따른 공기의 급격한 흐름에 맞춰 다른 터널로 옮겨간다는 것, 이런 사실들은 점점 동물動物, 움직이는 모든 존재들의 움직임이 하나같이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변화의 요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예시가 되어주었다.


그 많은 모기의 종류 중에서 실제로 말라리아 보균 모기는 400종이며, 전염시키는 것은 약 70종이다. 오쿠모는 바로 말라리아를 전염시키는 모기를 가려내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모기의 생활패턴까지 파악하게 된 것이다. 모기는 떼 지어 짝짓기를 하며, 해 질 녘 수컷모기들이 지평선을 비행하면 암컷모기가 날아들어 마음에 드는 수컷과 교미를 한다. 그리고 먹이 활동을 하다가도 매일 저녁이면 같은 장소에 나타난다. 그러니까 모기 역시 매일의 활동을 끝내고 자신의 공동체가 머무는 홈으로 귀가한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니 도시의 지하철에 머무는 각기 유전자가 다른 모기들 역시 그들만의 공동체를 꾸리며 살고 있었고 연구자들은 바로 그러한 모기의 생활패턴을 이용해 연구의 재료로 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쿠모는 바로 그런 귀가 본능을 이용해 모기를 박멸할 계획을 세웠다. 모기 농장에서 살충제를 가진 모기를 만들어내고 그 모기들이 모기의 서식지로 침투하게 해서 박멸하겠다는 방식이다. 마치 예전 바퀴벌레 퇴치법 같다. 바퀴벌레를 영구히 박멸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의 열성적인 강연에도 불구하고 모기 박멸은 가능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고통이 얼마나 큰 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관계나 일의 진행에 있어서 전쟁 용어를 들먹일 때 이미 관계나 일의 중요성이 시급하다 하더라도 전쟁 용어의 사용이나 비유적 표현으로 인해서 오히려 중요성이 낮아지고 다가올 결과에 대한 기대 역시 품을 수 없게 된다. 모든 전쟁은 적을 나쁘게, 낮게, 혐오의 눈으로만 바라보게 한다. 그래야 쉽게 죽일 수 있으니까. 가끔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들을 ‘박멸’시키며 살아남았다는 단지 그 특성 하나만이면 어쩌나 싶을 만큼 걱정스럽고 슬플 때가 있었다. 내가 산모기에게 여러 감정이 일었다고 한 것은 여러 감정이 일어날 만큼 실질적인 몸의 변화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여름마다 모기에 물린 자국을 긁다가 피맺힌 상처를 보는 것이 속상했다면, 또 몇 년을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내 몸이 그 고통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리면 가려웠지만, 물린 곳이 예전만큼 심하게 부풀어 오르지 않았고 물파스를 바르면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가려움이 한 달 동안 지속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몇 년 전부터 나는 모기 물림에 대해 내성이 생겼는지 덜 가렵고 덜 고통스러웠다. 드디어 한여름 세트 상품처럼 ‘아, 더워’ 하다가 끝나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끔 나를 도와주기 위해 급식소를 챙기러 오는 봉사자들이 모기에 물려 엄청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도 한 때는 저랬지 하는 정도랄까. 10분의 반복은 나를 죽일 수도 있는 위험이지만 나를 변하게 하는 역사적 사건일 수도 있다. 누가 알겠나. 내 유전자가 의미 있게 변하고 있을지.


죽음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내 처지는 비할 게 못된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박멸해야 한다는 표현은 늘 이렇게 절실함 속에서 정당화되지만 그 뒷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예측도 이해도 없다면 전쟁은 함부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모기가 위험한 동물인 것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박멸을 말하기엔 인간 역시 넘칠 만큼 이 세상에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동물이 인간을 박멸하겠다고 하면 받아들일 텐가.


모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여전히 나는 재건축지역의 고양이들을 챙기기 위해 산으로 향할 것이고 여름 내내 의도치 않은 헌혈의 순간에 놓일 것이다. 사실 이젠 모기를 잡는 것이나 죽이는 일은 포기한 지 오래다. 그저 (피를) 주기만 하는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 기브 앤 테이크 과정이 일어난다면, 그 과정에서 너무나 급진적인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일어난다 해도 전쟁을 선포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과 함께. 이젠 우리의 역사가 호모사피엔스만의 역사가 아님을 이해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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