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안동의 뱀은 안녕하십니까?
“2025년 3월,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영남권 일대에 역대 최악의 산불이 발생해 대규모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산불은 고온건조한 기상과 강풍, 그리고 인위적 실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피해 면적은 약 104,788ha(서울의 1.7배)에 달하며, 32명이 사망하고 54명이 부상을 입었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라 지칭되는 이번 산불을 뉴스 화면으로, 인터넷 기사로 접한 사실적 내용은 서울(수도권)과 경상도라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실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러함에도 그 어마한 산불 현장의 영상을 보며 가장 걱정되고 고통에 감응하게 한 대상은 뱀이다.
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화재의 상흔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먼저 공유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화재 현장의 공포를 떠올릴 때 뜨거운 열기와 화상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게 맞다. 그런데 지속적이고 지긋지긋하게 고통으로 몰아가는 것 중에 하나가 가스다.
몇 년 전 사건이다. 외출한 사이 아랫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보일러실에서 전기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했고 보일러실을 창고처럼 사용한 탓에 쌓여있던 물건들에 불길이 번져서 순식간에 대형화재로 번질뻔했다. 노부부가 살고 있어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있던걸 위로 올라오는 연기와 화염에 놀란 가족이 빠르게 대처에 대형 참사를 막았다.
화재를 빠르게 막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뒷수습이 미흡했다. 화재현장은 그을음과 탄 연기가 남아 오랜 시간 집주변의 공기를 오염시켰다. 숨쉬는 매 순간마다 화재로인한 오염 공기가 내 폐로 반복해 들어갔고 결국 그것을 견디지 못한 내 폐는 오작동을 일으켰다. 밤이고 낮이고 쉬지않고 쏟아지는 기침에 성대가 너덜너덜해졌고,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다. 원치 않는 불면 밤을 지내는 동안 동네 의원을 전전했고, 결국 3차 의료기관으로 향했다.
한 달 여의 약물 복용 후 기침은 멎었지만 뜻하지 않은 후유증도 발생했다. 길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면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담배가 탈 때 생기는 여러 화합물 중 특정한 한 가지 냄새는 느낄 수 있었고, 그 냄새가 나면 뒷골이 서늘해지는 불쾌감이 동반되었다. 또 TV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오면 실제로 냄새를 맡을 때와 동일한 증상이 일어났다. 이런 증상을 해명하기 위해 여러 검사를 진행했지만 끝내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 증상이 사라지는데 거의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산불 현장에 있지 않았던, 또는 그런 일을 거의 겪을 일 없는 사람에게 뉴스에서 보여지는 장면으로 ‘어떤’ 고통을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경험이 없었다면 산불 현장에서 겪었을 고통의 한 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동물이 화재 현장에서 피신하지 못해 화상을 입고, 다리를 잃고 그리고 나처럼 호흡기 계통의 이상 징후를 겪고 있을 것이다. 호흡기 문제는 생각 보다 눈에 띄는 증상이 아니니까 어쩌면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기사를 훑어 보며 구조된 동물의 상태를 가늠해보던 중에 아차! 싶었다.야생동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피해지역이 거론될 때 나열되는 지역명 중에 안동이 보였다.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 도로, 로드킬이라는 단어가 머릿 속에 툭툭 던져지며 떠오르는 동물이 하나 있었다. 내가 알던 그 많은 야생동물 중에서 잘 생각하지 않았던 동물, 뱀이다.
산불 피해 지역 중에 유일하게 방문했던 곳이 안동이다. 하회마을을 돌아보고 병산서원으로 가던 길이었다. 산과 농지 사이에 놓인 구불한 도로에 여기저기 무언가가 툭툭 던져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납작하게 짓눌린 뱀의 사체였다. 이미 납작해질대로 납작해져 뱀인지 조차 알아볼 수 없는 것 부터 몸의 절반만 바퀴에 짓밟혀 나머지 반이 꿈틀거리는 몸까지 수십마리가 도로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나는 이미 죽은 몸이라도 다시 밟고 싶지 않은 마음에 구불한 도로보다 더 구불구불 운전하며 사체를 피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사체를 피한다고 시속 10Km 이하로 주행하자 뒷차들이 신경질적인 경고음을 내며 나를 추월했다. 그 충격적인 장면은 이제 안동을 떠올릴 때마다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런데 이젠 안동에 산불이 났다. 그렇게 불현듯 떠오른 뱀을 생각하자 사방이 불로 뒤덮힌 숲에서 뱀이 피신할 수 있었을지 걱정되며 불안해졌다. 산불이 나면 뱀은 어떻게 피신하냐고 포털에 검색하니 물가로 피신하거나 땅속으로 그러니까 다른 동물이 파놓은 굴이 있으면 피신한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안도가 되질 않는다.
이번 산불은 지표를 따라 서서히 번져나간 것이 아니라 불꽃이 바람타고 툭툭 튀어나가 확산이 더 빨랐다. 게다가 건조한 날씨라고 했으니 계곡이나 강의 지류가되는 천에 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떤 뱀이 피신하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불길에 둘러싸이고 피신처로 가는 길이 막혔다면 지표의 낙엽을 태우며 번져오는 불길의 열기와 가스 속에서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숨막히고 타들어가며 죽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번 산불을 보며 나는 뱀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놀란 눈을 했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존재가 불 속에서 어떤 모습이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건은 공감이 쉽지 않지만 그 안의 구체적인 대상은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설명이 필요치 않다.
뱀들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