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나타났다

18 고아

by dhandhan

고아孤兒

오랜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창원을 방문했다. 마침 진해군항제 기간 마지막 날이 결혼일이라 KTX 열차 예매를 서둘러야 했다. 진해 군항제는 늘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와 맞물려 열린다. 워낙 유명한 축제라 궁금하던 차에 결혼식을 빌미 삼아 1박 일정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KakaoTalk_20250612_094614234.jpg © 2025. dhandhan 창원의 주택가 벚나무 거리

예식 전날 창원행 열차에 올랐다. 처음 방문하는 도시라 숨겨진 명소를 찾기보다는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볼 만한 명소를 두 군데 정도 골랐다. 길을 못 찾거나 헤매더라도 손쉽게 택시를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버스 타고 이동하며 도시 풍경, 창원이라는 곳의 정서를 느껴보자는 심산이었다. 창원 중앙 역에 내려 버스를 검색하니 숙소까지 가는 버스가 제법 많았다. 그중 가장 먼저 도착한 버스를 타고 여러 동네를 굽이굽이 경유하는 과정을 거치니 40분 만에 숙소 앞 정류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렸다. 예보를 확인한 덕에 우산을 챙겼지만 벚꽃 명소에 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숙소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제법 빗줄기가 세차서 당장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TV를 켜고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호텔 창문 너머로 창원의 밀집된 마을이 보였다. 빼곡한 집들이 울창한 숲 같다. 늘 살던 곳에서는 못 느꼈던 것을 타지에 와서 새롭게 느낀다.


도시는 인간의 숲이다. 내 집 옆에 누군가의 집이 있다는 것, 또 그 옆에 집이 있고 줄줄이 이어지는 집의 집단을 만들면 우리가 안전해진다. 그래서 모여 살기 시작했을까. 그런데 이젠 우리가 너무 많다. 우리를 지키는 집도 너무 많아서 다른 생명들의 집이 없어진다.


숲은 나무의 집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리를 잡고 그 나무가 자손을 퍼트리면 한 종의 군락이 만들어진다. 모여 살면 대지의 수분이 햇빛의 열기로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촉촉한 땅이, 울창한 나뭇잎이 대지의 온도를 낮춰준다. 그 덕에 더운 열기를 이기지 못하는 생명체가 군락아래에서 자리를 잡는다. 그런 방식으로 차곡차곡 사람의 마을처럼 생명체의 마을이 생겨난다. 아니지 우리가 숲을 따라한 것이지.


페터 볼레벤은 『나무수업』에서 가로수는 고아라고 말한다. 그가 설명하는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을 들어보면 충분히 납득 가는 주장이다. 나무는 긴 수명을 가진 존재다. 기본적으로 300년을 거뜬하게 살아낸다. 그러니 100년 이내의 나무는 모두 어린 나무다. 숲에서 나무가 300년을 거뜬하게 살아내려면 천천히 자라야 한다. 그래서 엄마 나무가 생장을 억제한다. 빛을 덜 보게 함으로써 느리게 천천히 자란다. 천천히 자라야 밀도 있는 기둥을 가질 수 있다. 그래야 태풍에도 꺾이지 않는다. 간혹 어릴 때 엄마 나무를 잃으면 쏟아지는 빛을 받아 쑥쑥 성장하다가 태풍이나 해충 피해로 쓰러진다. 동물 못지않게 나무도 가족의 응원과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는 주장이 너무나 무지했던 내게 큰 충격이자, 각성이 되었다.

KakaoTalk_20250612_094706763.jpg © 2025. dhandhan 가로수로 살아가는 벚나무에는 자주 패인 흔적이 보인다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버스를 타고 여좌천으로 향했다. 긴 천에는 물이 말라있었지만, 그래도 상관없는 게 천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가 만개해 흐린 날씨에도 화사했다. 맑은 날엔 빛을 받아 어울어울 반짝였을 테지만 반대로 희고 분홍의 화사한 빛깔이 구름 낀 회색빛 도시에 더욱 돋보였다. 어느 나무 하나 아름답지 않은 나무가 없었다. 굵은 기둥이 몸부림치듯 휘어지고 굽이치며 하늘을 향해 오르다 사방으로 뻗어간 가지마다 꽃이 풍성하게 피었다. 페터 볼레벤의 말이 떠올랐다. 고아 나무는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 배우질 못해 혼자 자신을 과시하듯 자란다고. 뿌리 네트워크가 없으니 몸집을 부풀리듯 빠르게 성장하다 병충의 침입을 받으면 몸에 뻥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진해의 벚나무는 그랬다. 하나하나 자신을 과시하듯 멋지게 자랐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상흔도 제법 가지고 있는 고아나무였다. 아름답다고 즐거워해야 할지 혼자 크느라 고생했다고 위로해야 할지.


다음날, 결혼식에 참석하니 신랑, 신부의 가족, 친지, 친구, 동료들로 홀이 가득했다. 둘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의 숲이다. 세상에는 당연하게 사람이 이룬 숲에서 안정적으로 지지기반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일찍이 고아가 되거나 유사 고아의 상황으로 내몰리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 후자여서 그런지 이 사람숲이 무척 낯설다.


예식을 보지 못하고 나왔다. 다시 벚나무가 즐비한 거리로 나갔다. 내가 아등바등 산 시간들이 지지기반 없이 홀로 커보려고 쑥쑥 자란 가로수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사람 숲보다 거리의 가로수가 마음 편했다. 우리는 우리 살자고 자꾸만 다른 생명들을 고아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나무도 고아를 만들고, 길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도 고아가 되고, 번식장의 개들도 강제로 고아가 된다. 동물 실험한다고 고아를 만들고, 동물원에서 구경시킨다고 고아를 만들고, 고기를 만든다고 고아를 만든다. 급기야 사람도 마을 없이 자기 집만 과시하는 고아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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