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나타났다

20 돌발성 난청

by dhandhan


눈 뜨자마자 구토가 몰려왔다. 화장실로 향하는데 몸이 서있질 못하고 어지러웠다. 벽을 짚고 가구를 붙들며 화장실로 향했고, 변기를 부여잡고 토했다. 전날 먹은 음식은 이미 소화가 다 되었는지 노란 위액만 넘어왔다. 그거라도 토하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다시 침대로 향하는데 여전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서있거나 앉아 있으면 어지러워서 결국 누웠다. 다시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휴일이라 상관은 없지만 자고 일어났는데 여전히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구토감과 어지러움증의 반복.

응급실에 누워 수액과 어지럼증 완화제를 맞으니 구토감도 줄었다. 머리 부분의 MRI, CT 촬영을 하고 결과를 확인하니 머리 문제는 아닌 듯했다. 의사는 이석증 같으니 외래진료로 검사받으라며 퇴원시켰다. 다음날, 이비인후과 진료에서 나의 증상은 돌발성 난청으로 확진되었다.


돌발성 난청은 순음청력검사에서 3개 이상의 연속된 주파수에서 30dB 이상의 청력손실이 3일 내에 발생한 감각신경성 난청이며, 때로 귀에서 소리가 나거나(이명), 귀가 꽉 찬 느낌(이충만감), 현기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대부분 한쪽 귀에 발생하고 30~50대에 가장 많이 발생하며, 한국에서도 연간 10만 명당 10명 이상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돌발성 난청 [sudden sensory neural hearing loss]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내 안에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 세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하튼 올해 한국에서 10만 명당 10명이 겪는 그 사건이 내게 일어났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지점은 내게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슬픈) 사건으로써가 아니라, 사건이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었고 그만큼 당연하게 여겼던 사실이 실은 어마한 역사성과 원초성을 가진 조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오른쪽 귀가 청력손실을 겪었다. 그로 인해 나의 좌우 대칭적인 몸과 그 몸이 할 수 있는 행동의 메커니즘이 일순간 흐트러졌다. 진화의 역사에서 생명이 좌우대칭의 몸을 가진 것은 중요한 혁신 중 하나다. 지금 지구상에 우리가 아는 동물의 거의 전부가 대칭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은 처음 좌우 대칭의 형태가 나온 이후 수억 년을 변하지 않고 물려받은 형태라는 얘기고, 먼 과거의 혁신을 대체할 미래의 혁신이 없다는 말이다.


대칭형태의 동물이 갖는 운동 방식의 기본 형태는 전진과 방향 전환이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방향을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형태를 세밀하게 구축하며 진화했다. 이 말을 그저 책 속의 한 문장으로 만날 때는 동물이라는 불특정 한 대상을 설명하는 정보값이고 생각보다 단순한 구조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막상 구체적인 대상인 내 몸에 대입하니 내 행동, 내 몸의 움직임이 그 단순한 구조로 얼마나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왔는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카리아.jpg 이카리아 와리우티아. 최초의 대칭동물 복원도. 사진 위키피디아

우리가 지능을 갖고 뇌라는 구조를 가지게 된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대칭형태다.

뇌가 있는 동물은 좌우대칭동물밖에 없다.
최초의 뇌와 좌우대칭 체제는 처음에 동일한 진화의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동물이 조종을 통해 주변을 탐색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지능의 기원-

대칭형태는 심미적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시작이자 결과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아 일주일간 복용하면서 몸의 변화를 예의주시했다. 간헐적 어지러움증은 점차 완화되었지만 소리의 방향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는데 시각적으로는 눈앞에 물줄기가 쏟아지는데 소리는 왼쪽에서만 들린다거나, 윗집에서 TV소리를 크게 키운 것처럼 천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서 확인하면 오른쪽 방에서 나오는 소리였다든가 하는 식으로 소리의 방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오른쪽 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동안 뇌는 왼쪽에서 수집된 소리 정보만 처리하다 보니 소리에 대한 편향이 생긴 것이다. 우리 몸의 감각기관 중 무엇 하나 대칭 아닌 것이 없다. 한쪽만 기능을 못해도 전진과 방향 전환을 위한 정보 수집에 오류가 생긴다. 물론 기능을 영구 손실하게 되면 몸은 그에 적응할 대안을 마련할 것이다. 하지만 잘 작동할 때 이 대칭의 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새삼 진화의 뿌리까지 거듭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어쩌다 생명체는 이 대칭의 몸을 만들었을까. 물론 이 대칭형태가 유용하기 때문에 선택되고 변하지 않는 핵심 기능으로 자리 잡았겠지만 그 선택의 시간들을 상상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또 어려운 만큼 단순한 초기 동물의 형태에서 이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어렵고 지난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살면서 겪는 어려움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 동안의 약물 치료를 마치고 청력 검사를 했다. 결과는 좋았다. 이전 검사 기록과 치료 후 검사 기록을 비교하니 청력이 이전보다 좋아졌다. 의사는 약물 치료 후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는 50%에 불과한데 좋은 케이스라 다행이라며 휴식과 안정을 권했다. 나는 다시 전진과 전환이라는 고급 스킬을 구사하는 동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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