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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나에게로 왔다                  


“선생님 이 그림책 제가 젤 좋아하는 그림책인데. 한번 보실래요.”하며 겉표지가 닳아 투명 테이프로 꼼꼼히 보수(?)를 해 놓은 ‘메아리’란 그림책을 은주가 보여줬다.

 “이 책이 엄마가 제일 자주 읽어 주던 그림책이라 그런지 아니면 외로운 돌이가 나 같아서 그런지 이 책이 좋아요, 우울하다가도 이 그림들을 보면, 따뜻한 초록들이 날 편안하게 해주는 거 같아요.”


 표지에는 초록색, 아주 밝고 따뜻한 느낌의 초록 풀잎이 뒤덮인 언덕 위에 예닐곱 살쯤 되는 사내아이가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수묵 담채화의 농담을 잘 표현한 초록의 보색들이 입체감 있게 전형적인 한국의 산을 그려 내고, 일반적인 그림책의 일러스트와 달리 칙칙하고, 사실화에 가까운 삽화는 만날 보는 하늘, 만날 보는 산, 만날 보는 나무, 만날 보는 짐승뿐인 산간 오지에 돌이라는 아이가 단 하나 말소리로 동무해 주는 메아리와 친구하는 내용이다.

“오--”하고 부루면 “오---”하고 “잘 잤나--”하면 다시 “잘 잤니--”흉내쟁이 메아리가 대답해주는.....

 화전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가난한 화전민인 15살 돌이누나는 남의 집에 민며느리 겸해서 시집을 가게 된다. 감자밥 한 그릇씩 비우고 집을 나선 누이는 재를 넘어 떠났고, 며칠이 지나 너무나도 누나가 보고 싶은 돌이는 누나 베개를 안고 통곡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암소가 새끼를 낳자 돌이는 뛸 듯이 기뻐하며, 산마루에 올라가 길게 소리를 지른다. 

“내 산아--”

한참 만에 메아리가 ‘내 산아---“하고 대답을 하고 

“우리 집에 새끼 소 한 마리가 났어----”

“우리 집에 새끼 소 한 마리가 났어---”

“내  동생이야--”

내 동생이야--“

“너두 좋니____?”

“너두 좋니__”

 메아리도 저도 반가운지 흉내 내어 장난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돌이는 메아리가 누나 있는 곳에 가서, 그대로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2학년 은주가 빠져들만한 판타지도 멜랑꼴리도 없는데, 은주는 밤마다, 그 책을 읽고 읽다가 잠이 든다고 한다.

 그 날의 기억은 눈이 부시게 푸른 초록 산 언덕위에 새끼손톱만큼 작은 돌이의 메아리를 부르는 이미지로 남았다, 더불어 은주가 왜, 어린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을 지금도 손에서 놓지 못할까 하는 물음표를 숙제처럼 남겨 두었다.     


 은주를 통해 김동성 작가의 '메아리'를 만나고 10년이 지난  2012년 교육대학원에서 독서 치료란 강좌를 들으며, 난 운명처럼  ‘엄마 마중’( 글 이태준 그림 김동성)이란 그림책을 만나다.

  '엄마 마중'은  책장을 덮고 나서도 쉬이 헤어나오지 못하는 울림이 있다.

 전차 정류장에서 코가 빨개지도록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를 떠올리면 발이 시리고 코끝이 아려왔다. 

 ‘메아리’란 그림책과  ‘엄마마중’을 관통하는 정서는 아련한 슬픔이고 그리움인 거 같다

 김동성이 그림을 그리고 이태준 소설가가 글을 쓴 ‘엄마  이태준 작가의 창작동화를 원작으로 한다. 

 원래 글이 먼저 생겼고, 김동성 작가가 그림을 덧붙이며 지금의 그림책 '엄마마중'이 탄생하였다. 글만 읽게 되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아이는  눈을 맞으며 엄마를 한없이 기다린다.  이 그림책은 글을 생략하고 글만 읽어도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다. 글  텍스트는 아이가 엄마가 기다리던  엄마를 만났는지 아닌지 열린 결말로 남겨 둔다. 
그러나 김동성 작가는 겨울밤 전차 정류장에 아가를 무한정 세워 두는데 마음이 아팠는지 마지막 한 컷의 일러스트로 해피 엔딩을 선물한다.



다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 무채색의 그림 옆에 노오란 아주 노란 컬러의 그림

 전차가 달려오는 모습. 몽환적인 느낌의 컬러풀한 그림

하지만 오지 않는 엄마.... 

그렇게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 

처음에 읽을 때는 '잉? 왜 그림을 이렇게 표현했을까? 특히, 오른쪽 페이지의 숨은 의도가 도대체 뭐지?' 의문이 들었는데, 이 패턴이 계속 되고, 책을 몇 번 다시 읽다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왼쪽의 그림은- 아까 말한 그대로 전차를 기다리는 시간. 즉, 아이의 지루한 마음, 오지 않는 엄마에 대한 공허한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무채색으로 무미건조하게 그림을 표현한 것이고. 오른쪽 그림은 이렇게 길고 긴 지루함 끝에 달려오는 전차를 보고 쿵쾅쿵쾅 설레는 아이의 마음을 표현 한 것이다!아이는 저기 달려오는 전차 안에 엄마가 타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아이의 눈에 전차가 달려오는 풍경이 꼭 판타지 같고, 꿈만 같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직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전차는 사라진다, 초록색 풍경 속으로. 

또 다시 차장님께 묻는 아이 

" 우리 엄마 안 와요?"





 

숨은 그림을 찾듯 아주 자세히 보면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가의 행복한 뒷모습을 볼 수 있다. 한 손에는 막대사탕을 들고 아가와 엄마의 사랑스런 시선이 초록이미지의 삽화와 어울려 환상적이다

.

그림책을 통한 투사 내면의 나와 만나기

     

     

     

 전차 정류장에서 코가 빨개지도록 엄마를 기다리는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가가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늘 투닥거리며, 살갑게 대해 보지 못한 친정엄마, 어릴 때부터 지독한 잔소리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퍼붓는 일흔여덟의 엄마.

 부딪치면 불편하고, 안 보이면 그리운 엄마. 어쩜 난 그림책 속의 아가처럼 엄마를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언젠가는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말하고 싶은데. 쑥스럽고, 오금이 저린다. 초등학교 때는 고모들과 한 무리를 이뤄 엄마를 힘들게 하던 할머니한테 지쳐 있던 엄마는 장녀였던 내게 유난히 모질었다. 이런 엄마의 짜증에 난 늘 불안하고 우울했다. 20살 넘어서는 49살에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 병수발을 드느라 절망한 엄마가 서러운 푸념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 엄마의 등 뒤로 피해 다녔던 거 같다.

 상견례를 하던 자리에서 엄마는 시어머니께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게 너무 지치고 고달파서 딸 하나 있는데, 잘해주지도 못하고,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잘 부탁합니다. 많이 사랑해 주시구요. 사돈이 며느리라 생각 않고 딸 같다 하시니 맘이 놓이네요.”

'엄마 마중'이란 그림책을 읽으며, 난 늘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고, 고단한 시집살이와 부당한 운명에 푸념으로 일관하던 엄마를 오랜 전에 무의식 속에서 떠나 보낸 거 같아 슬펐다. 단 한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했다.  이 책을 통해 8살 이후로 단 한번도 엄마를 부르며 울어 보지 못한 조숙한 내면의 아이를 만나 한켠으론 반갑고 짜안하고, 애틋한 감정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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