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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란다

늦둥딸 너울을 타다

 

2007년 12월 11일 생. 이채영. 덜 영근 열 살이다. 요즘 들어 입만 떴다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요?. 싫어!”를 호흡처럼 내뱉는다. 43살에 낳은 아이라 귀여워라만 한 탓인 거 같다.

 아침에 샤워를 시키는데 아이가 또 어깃장을 놓는다. “친구들은 고양이 세수하고 눈곱만 털고 오는데 난 왜 매일 샤워를 하는데!” 어제 한 불평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무한 반복 중이다. 아토피가 심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알아듣게 설명해도 못 들은 척한다.

 "엄마 나 오늘 인라인 스케이트 타면 안 돼?" 묻는다. 말이 묻는 거지 ‘나 인라인 탈 거니 그리 알아요.’다.

어제도 친구들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져 무릎이 까졌는데 하나마나하는 소리를 한다.  "안 돼!”했더니  

  "봐서, 안 아프면 그냥 탈래”

 “그럴 거면 왜 타도 되냐 묻는데! 그렇게 니 맘대로 할 거면 오늘부터 엄마라고도 부르지 마.”    

 유치하게 모녀 관계 정리하자는 선언을 8살 딸에게 한 후,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아이는 욕조에서 일어나 흠뻑 젖은 몸으로 나에게 안겨, 잘못했다며 펑펑 운다.    

  45살이 넘어서 갱년기 우울증으로 분노조절을 잘 못한다. 훅, 더웠다. 훅 추웠다. 아이에게 너무나 창피했다. 그날 저녁 아이의 그림일기엔, ‘아기 공룡 캬오’란 그림책에 화를 낼 때마다 불을 뿜은 아기 공룡 갸오가 그려 있고, 오늘의 반성을 쓰는 자리엔, “용돈을 모아 엄마의 갱년기를 고치는 약을 사야겠다, 너무 힘들다.”라고 쓰여 있었다. 순간 나는 오래전 캄보디아 여행 중에 리조트 천장을 기어 다니는 크림색 새끼 도마뱀이 되고 싶었다. 화장실 천장에 착!! 아주 찰싹 붙어  회칠한 리조트 천장 색으로 위장한 도마뱀.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겪는 변화를 우리는 '미운 다섯 살', 혹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일곱 살'이라며 이름을 붙인다.     

아이가 떼를 쓰거나 엄마 말을 안 들으려고 하는 건, 건강한 성장통이다. 아이의 생각 근육이 자라는 과정에서 안타깝지만 나름  소중한  자기표현이라 믿지만 그러면서도 살짝 서운한 아이의 저항은 성장 곡선을 이어 가는  필요한 역동이다. 바다가 멈추지 않고 흐르려면 바람에 올라타 너울을 만들어야 하고 너울이 모여 파도를 이룬다.

  워터 파크 파도 풀장에 갔을 때  아이가 자기 키 두 배가  넘는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크고 작은 너울의 고 안으로 발을 옮기는 걸 보며 가슴을 졸인 경험이 한두 번을 있을 거 같다. 거센 파도에 올라타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를 보며 아찔한 순간도....

새로운 도전의 스릴에 겁을 잊은 아이는 더 큰 너울을 타려고  파도풀 외곽의 물결을 탄다.  수심의 깊이만큼 센 너울에 쓸려  시멘트 외벽  펜스에 부딪힐까 봐 나는 온몸으로 아이를 방어한다. 그럴  때마다 어깨나 등을 부딪혀 퍼렇게 멍이 들기도 하지만, 좋아라 하는  아이를  보면 아픈 것도   잊는다.

 물론 튜브나 구명조끼 같은 안전장치를 하고 있지만, 아이는 엄마의 위험신호를  본 체한다.     

오늘도 아이는 자기가 다가갈 적정수위 이상의 너울을 타고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나 할 수 있다고 아프거나 다쳐도 즐거우니깐 괜찮다고, 그 신호를 이해하면서도 불끈 서러워지는 걸보다 내가 참 멘털이 약하고 부족한 엄마인 거 같다. 아이한테 부끄럽고 미안했다          




떼쓰는 아이와 함께 보면 좋은 그림책



    

(이럴 때  너라면?) 고미  타로,  천 개의 바람    

아이에게 다양한 선택 상황을 제시하고  "이럴 때 너라면 어떻게 할래?"라고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아이가 갈등 상황을 적절히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리스 센닥 , 시공주니어    

엄마에게 심하게 꾸지람을 듣고 방에 갇힌 맥스가 모험을 떠나  괴물들을 물리치고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 아이들은 이 책에 주인공이 괴물들과 싸움을 하는 장면이나 맥스의 모험을 대리 체험하여 자기 안에 있는 공격성과 분노를 풀어 내게 된다.    

(안돼, 데이비드) 데이비드 섀논, 지경사    

말썽을 피워 언제나 혼이 나는 아이의 일상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혼이 날 줄 알면서도 말썽을 부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싫어,  몰라, 취소야, 취소) 정재은 , 아르볼    

하루에도 서너 번씩 엄마와 약속을 하지만 번번이 어기기만 하는 주인공 누리.  혼을 내도 타일러도 언제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일이란 훈계 대신에  상대가 떼를 쓰거나 약속을 어겼을 때의 마음을 느껴 보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도담이와 무지개 도깨비) 서지원, 아르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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