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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시가 스토리텔링 10





묏버들 ‘애련’ 실버들 ‘서러움’ 수양버들 ‘연정의 설렘’

 



고등학생들에게 30년 동안 고전시가를 가르치며 홍랑이란 기녀가 연인 최경창을 생각하며 지은 시조에서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에서, 묏버들은 시적 화자의 분신, 쉽게 말하면 아바타 같은 거라고 가르쳤다.

   시적 화자는 자기를 두고 떠난 남정네가 언제고 돌아온다는  약조를 잊을까 봐. 묏버들 가지를 꺾어 보낸 거라고.

이 묏버들은 창밖에 심어 놓고 연초록 싹이 나거든 자기인 듯 여기 달라는 애끓는    전언이다.

 이렇게 지도해왔다. 

너희들 느낌과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외우자!  

이 시조의 주제는 “임을 향한 그리움 또는 임에게 보내는 사랑”이다. 별표 2개 하고. 여기서 한 문제 꼭 나온다. 만약에 진짜 만약에 시험에 안 나오면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   그녀 보기가  역겨워 그녀가 뿌려준 진달래 꽃잎  지르밟고 떠나는 남자 친구처럼 샘을 밟고 지르밟고 가도 된다! 하하

이렇게 호기롭게 수업을 30년 가까이하면서  단 한 번도 아니    10분도 홍랑이란 여자가 님에게 보낸 정표가  하고 많은 버들가지 중에 왜 묏버들이었는지에 주목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아마도 묏버들 가지가 꺾꽂이에 적합한 식물이라 화분에 심어 놓고 홍랑을 보듯 아끼라는 의미라고 해석해 가르쳐 왔다. 

더군다나 고전 시가에 “수양버들이나 능수버들, 갯버들”이 흔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 시조처럼 산 버들인 묏버들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현대시에도 빈도 높게 등장하는 글감 중 하나가 강가나 포구 주변에 가로수처럼 줄지어 서서 살랑이고 출렁이는 수양버들이나 능수버들이다.

그 버들이 그 버들인 듯싶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40여 종의 버드나무들이 있고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버들도 10여 가지가 넘는다.

낚시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는 ‘버드나무’이고 그밖에 갯버들, 능수버들, 왕버들, 키버들, 수양버들 등이 있다.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은 모두 15m~20m로 높게 자라고 가지가 아래쪽으로 축축 늘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갯버들은 버들강아지라고도 하고 물이 흐르는 강가, 냇가, 저수지 등으로 유입되는 수로에서 낮게 자란다. 능수버들이나 수양버들이 자주 불리는 노래 소재다.

능수버들은 ‘천안삼거리’란 민요에 중요한 노랫말이다.

 “천안 삼거리 흥흥 능수야 버들아 흥흥”하는 ‘흥타령’으로 알려진 이 노래 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은하 작교(銀河鵲橋)가 흥- 콱 무너졌으니 흥- 건너갈 길이 망연이로구나.”처럼 헤어짐과 실연의 당황스러움을 “흥, 흥”이란 조흥구(흥을 돋우는 애드리브)로 신명 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능수버들은 제 멋에 겨워서 늘어졌는데 십오야 뜬 달은 쓸데없이 밝고 나는 심란해 흥흥 “


천안삼거리란 지명 설화를 통해 천안 사람들에게 능수버들은 이별과 만남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바 있다. 전설에서는 ‘능소전’이라 해서 수자리를 떠나는 유봉서가 어린 딸 능소를 데리고 천안삼거리 주막까지 왔다가 주모에게 맡기는 장면이 나온다. 유봉서는 자신의 지팡이를 땅에 꽂으며 “이 지팡이에 버들이 무성히 자라면 그때 돌아오마” 하고 능소와 약속을 하고 떠난다. 후에 그 약속은 지켜지며 만남의 상징 ‘능수버들’이 탄생한다.

이처럼 떠나간 님에게 묏버들을 꺾어 보내는 행위 역시 님에게 자신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돌아오라는 안타까운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묏버들의 화신 홍랑의 연인인 최경창이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떠나게 된다. 오는 관리 못 막고 가는 관리 못 잡는 수청 기생의 처지에 예정된 이별을 맞이하게 된 부적절한 내연 관계  홍랑과 최경창의 이별 출정식 날이 왔다.

 그 당시 기녀란 관청 소속 노비로 새로 부임한 관리의 수청을 들다가 그가 떠나면 “쏘 쿨!”하고 보내드리는 게 관례(춘향이가 기생 신분인데,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건, 관청 소속 관노비로 관리의 수청을 드는 직무를 유기한 중차대한 대역죄를 저지른 것)라 그녀 역시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며 울며 울며 배웅길에 나섰는데. 자신이 속한 관할 지역의 경계인 함관령에 이르러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당시 관기는 관아의 소유물이었으므로 관할 지역을 벗어나면 ‘탈영’이라 추포(追捕)를 당했다고 하니....

그녀는 터지는 울음을 삼키며 길가의 버드나무 한 가지를 꺾어 최경창에게 주며 애절한 이별 시를 건넨다. 이때 꺾은 나뭇가지가 묏버들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나인 가도 여기소서 - 


--홍랑 <오 씨 장전 사본(吳氏藏傳寫本)>--


결국 그녀가 이별의 정표가 선택한 묏버들이 ‘산 버들’이었음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개연성을 확보한다.

1970년대 히트곡 희자매의  ‘실버들’에서 “실버들을 천만사 엮어 놓고도 잡지 못한" 연인이나 다시 돌아오마고 약속하던 장소의 징표인 "묏버들"을 꺾어 보낸 홍랑의 안타까운 사랑이 시대는 다르지만 유사한 시적 화자의 처지에 목이 메어 온다








원조 걸그룹 희자매의 대표곡인 ‘실버들’은 김소월 시인의 유작을 노랫말로 옮긴 것이라 한다. 1977년 당시 tbc 방송곡의 라디오 피디가 김소월의 유작시 7편을 찾아냈는데 이를 작고한 안치행이 노래로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희자매가 부른 '실버들'로 1978년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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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실버들 진달래꽃’ 노래와 영화, 그리고 TV 드라마가 된 시인--- 




이 노래는 김소월의 시의 특성상 7.5조 3 음보의 전통적인 민요조의 리듬을 살린 애절한 가사가 압권이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 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가을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때에 


외로운 맘에 그대도 잠 못 이루리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가을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때에 


외로운 맘에 그대도 잠 못 이루리 



----희자매 <실버들> ---



가는 세월을 잡기 위해 혹은 떠나가는 님을 잡기 위해 실버들 가지를 잘라 가닥가닥 이어놓고 님을 기다리는 이 노래의 여인은 실버들이 바람에 늙고 자신을 서러움에 늙는다고 애절하게 노래한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상황에  안방 무대를 독점한 각종 트로트 오디션을 통해 듣게 된 트로트 노래 가사 중에도 버드나무의 다양한 품종들이 자주 들린다. 




이연실이 부른 ‘<새색시 시집 가네> 김신일 작곡/작사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가네 ~ 


"아홉 살  새색시가 시집을 가안 다네~"에 소꿉동무 갑돌이가 사랑인 줄 이제야 알아차린 아홉 살 갑순이는 가네 가네 울며 간다는 이 노랫말에도 수양버들이 춤을 춘다.


지금까지의 실버들이나 수양버들이 애련의 정서를 보여주는 객관적 상관물이라면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의 <낭랑 18세>나 이부풍이 작사하고 박재란이 부른 <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에도 버드나무가 등장한다. <낭랑 18세>의 여성은 저고리 고름 말아 쥐고서 누구를 기다린다. 버들잎 지는 앞 개울에서 소쩍새 울 때만 기다린다.


여기에 고전시가에 단골 조류 소쩍새가 등장한다. 왜 18세 그녀는 소쩍새가 울기를 기다릴까? 왜 18세 아가씨는 자신을 낭랑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그래서 어렵게 찾아본 바 '낭랑'이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爛爛18歳(ランラン18 さい)'라 쓰고, [낭랑 18 사이]로 읽는데, 뜻은 "반짝반짝 빛나는 모양."이라고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꽃 같은 나이의 18세 아가씨의 설렘을 가수 백 난 하는 낭랑 낭창 한 목소리로 신박하게 부른다. 


야행성 조류인 소쩍새가 울면 해가 지고 낭랑 18세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기다리는 버드나무 지는 앞 개울에서 몰래한 사랑 이야기가 낭랑 18세란 노래에 녹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영화 <다빈치 코드>의 애너그램 (Anagram)처럼 철자를 바꿔 숨겨 둔 메시지를 전달하듯이 고전시가나 대중가요 노랫말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통해 서정시가의 특성인 압축과 생략, 그리고 비유를 뒤틀어 수수께끼 풀 듯, 노랫말 해독에 주목했다.


내 추론을 참이라고 본다면 <나는 열일곱 사이예요>의 버드나무 숲 역시 젊은 연인들의 밀회의 공간으로 적당한 듯하다. " 소쩍꿍 소쩍꿍"하고 밤에만 활동하는 소쩍새(두견이의 다른 이름)가 울면 어둠을 틈타 장막처럼 휘영청 드리워진 버드나무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깜찍 발랄한 노랫말들이다.


 ㅡㅡㅡㅡㅡ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당신만 아세오 열일곱 살이에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


별빛도 수줍은 버드나무 숲으로


가만히 오세요.

 ㅡㅡㅡㅡㅡ

옳타구나 여기도 만남의 장소는 버드나무, 시간은 별빛도 수줍은 버드나무 아래로 오라고 하고 열일곱 낭자가 기다린다고 한다.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늘어진 버들가지는 이리저리 산들바람에 실려 몸을 비튼다. 부드러움과 연약함으로 사람들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면서 가냘픈 여인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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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과 꽃이 섞이면 ‘화류(花柳)’라고 불린다. 여기서 버들은 순수하고 애틋한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조금은 육감적이거나 퇴폐적이 된다. [춘향전]을 보면 봄바람에 글공부가 싫어진 이몽룡이 광한루로 바람을 쐬러 나간다. 

성춘향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그려지고 있다. ‘저 건너 화류 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어른어른하는 게 무엇인고? 자세히 보고 오너라!’하며 방자를 재촉한다. 역시 봄바람이 잔뜩 들어간 성춘향도 그네를 타고 있었으니 둘의 만남은 다분히 의도적인지도 모른다. 

늘어진 버드나무에 그네를 매고 복사꽃, 자두 꽃을 배경으로 치맛자락을 펄럭였으니 숫총각 이몽룡으로서야 정신이 몽롱해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노릇이다. 몸을 파는 여인을 두고 ‘노류장화(路柳墻花)’라고도 한다. 길가에서 흔히 만나는 버들이나 담 밑에서 핀 꽃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꺾을 수 있다는 뜻으로 빗댄 말이다. 그래서 이들이 어울려 노는 곳을 아예 화류계라 했다. 역시 꽃과 버들이 섞인 탓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능수버들과 사랑이야기 - 역사와 문화로 읽는 궁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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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뜬금없이 버드나무가 나오는 장면이 생각난다. 

이병헌의 독백 중에

 "스승님 나무가 움직이는 것인가요 아니면 바람이 움직이는 것인가요"라고 물으니 스승께서는 "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거 같다. 

아마 두목의 애인을 흠모한 주인공의 마음을 헤아리고 한 이야기였던 거 같다.  감독이 영화 초반부에 버드나무의 그런 흐느적거리는 가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흔들리는(?) 마음으로 이병헌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리라.


 여기에 버들잎 한 움큼으로 왕후가 된 여인이 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썸녀 신덕왕후와 이성계 장군의 첫 만남에도 역시 버드나무가 등장한다. 버들잎은 왕과 왕비를 이어주는 상징적 연결고리다. 태조 이성계가 호랑이 사냥길에 우물가에서 아리따운 처녀에게 물을 청했는데, 이성계가 급히 마시고 체할까 버들잎을 한 움큼 띄운 처녀의 지혜에 탄복해 그녀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는 설화.


그녀는 우물가의 물 한 바가지로 황후가 된다. 히스토리는 이 일화를 태조 이성계의 갈증을 달래는 물 한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운 그녀의 현숙함과 지혜로움이 왕비가 되는 개연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하긴 물 먹고 채하면 약도 없다는데, 그녀의 물한바가지에 한 움큼의 버들잎은 이성계를 향한 그녀의 매너 타임이 사랑을 싹트게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지혜로운 여인이 썸남에게 건넨 건 하고 많은 잎사귀 중에 버들잎이다. 





버들에 얽힌 가장 많은 주제는 사랑과 이별이다. 옛사람들이 연인과 헤어질 때 마지막 이별 장소는 흔히 나루터가 된다.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눈물을 감추고, 나루터에 널리 자라는 버들가지를 꺾어주면서 가슴과 가슴으로 사랑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버들이 이별의 증표가 된 것은 중국의 고사와 관련이 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의 동쪽에는 ‘파수’란 강이 흐르고, 거기 놓인 다리를 ‘파교(灞橋)’라 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교에서 이별을 했고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를 꺾어 떠나는 사람에게 건넸다고 한다.



버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빌어 여행하는 사람의 평안과 무사를 기원하는 일종의 주술적인 뜻도 있었다. 이후 명나라 때의 널리 읽힌 희곡 [자채기]에 나오는 여주인공 정소 옥이 애인 이익에게 버들가지로 장도를 빌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후 파교의 버들은 이별의 징표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고전시가에 단골 소재인 버들가지가 이런 스토리를 담고 있다고 가르치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왜 좋으면 "나 너 좋다, " 그리우면 "너를 못 잊으나 떠나지 마라." 직접 말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뱅뱅 돌려서 애매모호하게 말했을까요?

매번 느끼지만 고전이 너무 어렵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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