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림책 처방전 9

엄마의 딸로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네가 세상에 태어나 줘서 엄마는 진짜 고마워!
아이가 척추를 곧추 세우고 내 자궁 속에서 직립보행 중이다. 막달이 가까우면 태아의 머리가 자궁을 향하도록 회전을 해야 하는데 아이는 스카이콩콩을 타고 튕기듯 명치끝을 수시로 들이받았다.
태아의 머리가 자궁 입구로 향해야 하기에 하루에 20분씩 고양이 자세로 체조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도 수시로 했다. 아이는 자세를 바꾸지 남산만 한 배를 감싸고 물구나무서기를 한 탓에 척추에 무리가 가서 잠깐 앉아 있는 것도 고통이었다.
첫 애를 제왕절개로 낳은지라 둘째는 자연 분만을 하고 싶었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머리를 자궁 쪽으로 돌려주면 자연 분만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마흔이 넘어 아이를 낳는다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기형아 검사를 한다고 태반에 엄청 큰 바늘을 찌를 때도 두려웠고, 정상 소견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끔찍했는데, 더 힘든 건 유산 확률이 70프로가 넘는 산모의 상태였다.
42살의 늦둥이를 임신한 나에게 담당의사는 언제든 유산의 가능성이 있다며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했다.
15년 전에 중학교 동창이 8개월에 아이를 잃고 힘들어하는 걸 봤다. 친구는 뱃속에서 8달 가까이 꼬물대던 생명을 잃은 거보다 잊을 만하면 기억을 상기시키는 지인들의 오지랖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임신 초기부터 지병인 척추 분리증으로 인한 퇴행성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정형외과 담당의는 막달이 다가올수록 늘어나는 태아의 몸무게가 척추에 무리를 줘서 하반신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혹시 모를 유산을 걱정하며 나는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워낙 노산이라 뱃속에 아이가 잘 못 될 경우 주변 사람들의 축하가 위로로 바뀔 수도 있단 우려에 만삭이 될 때까지 그냥 살이 심하게 찐 척했다.
8개월에 접어들어도 니글이는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지 않고 머리를 자궁 입구로 돌리지 않았다. 의사는 이 상태론 제왕절개를 겸한 유도 출산도 어렵다고 했다.
3대 독자인 남편을 물론 아버님은 혹시 이번엔 사내아이를 낳아 가문의 혈통을 이어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계셨다,
나는 임신 5개월쯤 태아의 성별을 알려 준다는 의사에게 로또 복권 당첨 기다리는 맘으로 출산까지 기다리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혹시 아들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방긋방긋 웃으시는 81살 아버님의 설렘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물하고 싶었다.
8개월에서 9개월로 접어들 때, 간헐적인 진통에 미세한 하혈을 했다. 유산 가능성이 더 높아졌고 의사는 조산 확률이 높으니 미숙아 상태에서 유도 분만을 하자고 했다.
수술 날짜를 이틀 앞두고 온몸의 뼈가 해체됐다가 다시 오므라드는 진통이 왔다. 내 배는 개구리 똥꼬에 보리 줄기 꽂아 바람을 불어넣은 개구리 배처럼 빵빵해졌다. 터질 것처럼 부푼 내 배에 파아란 정맥이 도드라져 올랐다 가라앉기를 48시간을 하는 동안 태아는 시곗바늘 방향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뱃속에서 회전을 했다.
10분 돌고 3시간 쉬고 5분 돌고 30분 쉬기를 반복하며 머리를 자궁 입구로 바로 잡았다. 3킬로그램도 안 되는 어린 핏덩이가 살겠다고 자기에겐 우주 공간 같은 자궁 무중력의 공간 안에서 360도 회전을 한 것이다. 덕분에 아이는 3,3킬로그램의 건강한 공주로 우리 곁에 와 주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가끔 눈치 없이 아이 면전에서 "아가야 어쩜 이렇게 이쁘게 생겼을까? 아 외할머니 닮아서 이쁜 거네."하고 눈치 없이 아는 척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만 아이는 샐 쪽 해서 한 마디 한다.
"아이 씨! 할머니 아니고 엄마라고요!!"
난 그날 이후 지금까지 6개월 간격으로 보톡스를 거르지 않고 맞는다.
2년 전 중국 서안으로 여행을 갔다가, 패키지 상품 중 하나인 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얼굴에 스팀 타월을 올리고 마사지를 시작하려는 청년에게 황급히 소리를 쳤다.
"마이 페이스 노터치, 보톡스 시슬 노터치!"
다. 마침 보톡스란 단어를 알아들은 청년의 배려로 얼굴 마사지는 패스!
난 지금도 보톡스를 주기적으로 맞는다. 내가
조금이라 더 젊어 보여야 아이가 속상하지 않을 테니까..
친구들 엄마보다 10년 이상. 많은 엄마의 나이는 아이에게 슬픔인 거 같다.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 자기를 두고 떠나면 어떻게 살까, 같은 두려움.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아이가 신이 나서 말했다.
:아! 이런 방법이 있네.
엄마가 죽어서 저승사자가 되는 거야.
그럼 나랑 안 헤어지고 옆에 있을 수 있잖아, 근데 저승사자는 아주 나쁜 짓을 해야 된다는데... 엄마가 뭘 해야 저승사자가 될까?? "♡

2007년 12월 11일 함박눈 내리던 날 니글이가 태어났다. 다음날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아버님께서 산후 조리원에 찾아오셨다. 백내장으로 희뿌연 막을 두른 아버님의 연갈색 눈동자에 연신 맑은 눈물이 고여 내 손을 꼭 쥔 아버님의 손등 위에 떨어졌다.
"수고했다. 녀석 이참에 고추 하나 달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암튼 고생했다."
아버님은
나이 마흔셋에 늦둥이 딸을 낳은 며느리의 퉁퉁 부은 손을 쥐시고 몸조리 잘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나는 산후조리원에 딸린 식당에서 저녁을 드시고 가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집에 가서 어머니하고 밥을 먹어도 된다며 발길을 돌리셨다. 현관 입구까지 배웅을 나섰다가 급하게 발길을 돌려 가시는 아버님의 어깨너머로 아들 손주를 바라시던 아버님의 아쉬움이 얼핏 비췄지만 나는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나이 들어 애 낳으면 몸이 축난다는데, 몸조리 잘해라.” 하시는 살가운 시아버님의 위로의 진정성을 믿기에^^
이렇게 배려가 깊은 시아버님은 명절 때면 방마다 꽉 차 앉은 딸내미들(어머니, 시누이, 며느리인 나와 포함한 6명의 손녀딸들)을 보시면서 이 집구석에 나랑 정훈이만 남자네"하시며 항상 해맑게 웃으셨기 때문이다
. 이번만은 아들을 낳아 드리고 싶었는데 많이 죄송했다. 그래도 아기를 보고 온 아버님이 "녀석이 날 닮아 눈이 동그랗던데" 하셔서 기뻤다.
니글이(늦둥이의 태명, 10달 내내 속이 니글니글 입덧이 심해서 얼결에 붙인 태명이다)가 태어나고 두 해가 지난 설날 아침. 니글이가 오줌 싼 일회용 기저귀를 잡아 뜯어 머리에 이고 할아버지를 깨운다. "하비 하비 쉬야, 쉬야" 그러면 아버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에이 찌린 내 코 자! 니글이 코 자"하신다. 왼쪽 입가에 거품기 섞인 침방울을 흘리시며......
여든 살 넘어 집안의 웃음꽃으로 피어난 손녀딸 채영이를 엄청 이뻐하신 아버님. 집 뒷산 등산로 입구에서 주워온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산책시켜 주시기도 하고, 갈 때마다 아이가 좋아하는 생선 눈알을 횟집에서 얻어 와 튀겨 주시기도 하셨다.
이런 할아버지를 니글이도 “하비 하비 좋아!” 하면서 잘 따랐다. 아버님이 반들거리는 대머리 위에 컵이나 수건을 얹어 놓고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묘기를 부리다. 툭하고 머리 위에 얹은 것을 떨어뜨리면 아이는 자지 지듯이 까르르 까르를 웃었다. 그다지 웃을 일도 아닌 퍼포먼스는 아이와 할아버지 사이에 나이 차를 초월해 눈물 나게 웃는 찰나의 순간이 있었던 거 같다. 2007년 12월 소천하신 아버님을 나 역시 그리워하고 아이 역시 할아버지 생각이 나면 생전에 할아버지와 찍은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아버님 소천하신 지 이제 세 해로 접어든다. 아이가 태어난 날처럼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흰 눈이 내리던 우리들 곁을 떠나셨다. "딸이든 아들이든 채원이(늦둥이 딸과 12살 차이가 나는 언니)를 생각하면 낳길 잘했다" 하셨다.
말기 암 투병 중에도 니 글이 와 병원에 가면 니글이 병자 냄새날까 봐 물수건으로라도 세안을 부탁하시던 아버님. 니글이가 '코자 할아버지(아이가 밤늦도록 안 자고 방마다 돌아다니면 장난스럽게 호통 치시던"니글이 그만 코자"하셔서 아이가 붙인 별명이다)를 그리워할 때마다 나는 그림책을 읽어 준다.
그림책 처방전 11
조부모의 사별을 슬퍼하는 아이를 위해 읽어 줄 그림책
<유령이 된 할아버지> 글, 킴 오푸 오 케손/ 그림, 에바 이릭손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 할 때 아이에게 읽어 주는 그림책은 <유령이 된 할아버지>( 글, 킴 오푸 오 케손/ 그림, 에바 이릭손)이다.
일곱 살 아이가 맞이한 이별 그리고 죽음을 다른 이 책은 죽음을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병으로 에스본의 곁을 떠난 할아버지의 영혼은 슬퍼하는 에스본에게 유령이 되어 찾아온다. 유령이 된 할아버지와 에스본의 만남 속에서 할아버지는 왜 자신이 밤마다 유령이 되어 나타나는지 얘기한다.
세상을 떠나면서 빠뜨린 것은 에스본과의 작별인사였다는 것을 결국 둘은 서로 껴안고 잠깐 같이 운다. 유령이 된 할아버지는 에스본이 보는 가운데 벽을 뚫고 마당을 지나 큰 길가로 사라지고 할아버지가 죽고 난 슬픔에 빠져 울기만 하던 에스본은 “내일은 유치원에 가야겠지?” 혼자 말을 하고 편안하게 잠이 든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어 주는 동안 눈물을 글썽이며 울던 니글이는 핸드폰 유튜브 동영상으로 미국 민요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Grandfather's Clock)를 들으며 잠이 든다.
한 손엔 할아버지의 유품인 도금이 듬성듬성 벗겨진 낡은 태협 시계를 쥐고.....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한 가장 슬픈 이별, “코자 할아버지 안녕!”
낡은 마루의 키다리 시계는
할아버지의 옛날 시계...
할아버지 태어나시던 아침에
우리 가족이 되었다네..
언제나 정다운 소리 들려주던
할아버지의 옛날 시계
하지만 지금은 가질 않네
이젠 더 이상 가질 않네
어여쁜 신부를 맞이하시던 날도
정겨운 종소리 울렸네...
할아버지의 기쁨 슬픔을 함께 한
보물처럼 아끼던 시계
이제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만
시간을 얘기해 준다네...
Uuu.. Uuu.. Uuu.. Uuu...
할아버지의 고단했던 인생에
희망을 함께했던 시계
언제나 인자하시던 미소와
사랑도 알고 있는 시계
이제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만
시간을 얘기해 준다네...
할아버지 영혼이 떠나시던 날 밤
요란한 소리로 울던 시계
하늘에 오르신 할아버지를 따라
시계는 이별을 했다네...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를 알았다네..
시계는 가지를 않네





매거진의 이전글 고전 시가 스토리텔링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