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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스토리텔링 11

사랑의 불시착 연군시가

선조를 짝사랑한 가인 정철의 <사미인곡>과 백지영의 <총 맞은 거처럼> 엮어 부르기     

     

 백지영의 '총 맞은 거처럼"이란 노랫말이 구구절절이 와 닿는 옛 노래 <사미인곡> 이 노래는 조선시대 싱어송라이터 정철이 반대파의 상소로 입지가 약해진 그를 냉정하게 밀어낸  임금님을 향한 짝사랑을 스토리텡링한 연가다.      

 발라드 여제 백지영의 히트곡 '총 맞은 거처럼'의 뮤직 비디오 도입부.     

 가녀린 체구에  빅사이즈의 흰 와이셔츠(아마도 전 남자 친구가 두고 간 옷인 듯)만 걸친 여자가 허망하게 주저앉아 노래를 부른다.  '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허탈하게 웃으며     

하나만 묻자 했어     

우리 왜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중략---     

     

     

     

     

고전시가는 노래다, 당대 민중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  조선시대 정극인의 '상춘곡'에서 봄을 노래하는 4 음보 연속체의 긴 노래인 가사는 3장 6구 형식의 시조로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탄생한 노래 형식이다. 처음에는 45자 내외의 평시조 연속체인 연시조란 장형 시조가 등장하지만 글자 수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서정 갈래로서 지속적인 감정 연결이 불편해 응용한 형식이 4 음보 연속체 '가사'인 거 같다. 이렇게  탄생한 '가사'는 현대 대중가요에 대입하면  발라드나 트로트라고 볼 수 있다. 사랑, 이별, 그리움, 자연친화, 기행(紀行)을 소재로 한 가사 작품은  남녀상열지사(남자 여자가 서로 뜨겁게 사랑함)적 스토리의 대상인을 님을 임금님으로 설정해 '사. 미인. 곡'은 은혜하는 님이 바로 미인(아름다운 사람)이 왕이다.      

정철의 작품에 시적 화자는 여자다, 그 여자가  괴는(고유어로 사랑하는) 대상은 선조 임금이다.       

     

     

우리 옛말에는  사랑이란 어휘가 없었다 토박이말(순 우리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다소니'라 하고 사랑은 '아띠'라고 한다.      

이 단어들은 오랜 세월 한자 문화권의 속국으로 지내다 보니 잊힌 고유어가 된 것이다. 명사로는 사랑이란 고유어가 없다 보니 ‘상대하여 생각하고 헤아리다’의 뜻인 사량(思量)이란 한자어가 변해 오늘날의  ‘사랑’이란 우리말이 정착한 것이다. 되었다.     

     

     

[출처] 우리말 같은 한자어|     

     

정철의 <사미인곡>은 조위의 <만분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조위가 <만분가>에서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처지의 시적 화자인 자신을 선녀로 임금님을 옥황상제로 비유하여 억울하게 귀양 온 자신의 한을 가사로 노래한 거처럼 '사미인곡의 서사도 하늘나라 선녀인 시적 화자가 옥황상제에게 버림받고 지상으로 내려온 지 3년, 그리움에 병이 너무 깊어 차라리 죽고 싶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문학가인 정철(鄭澈) 이 1588년(선조 21) 고향인 창평에서 지은 이 가사는     

선조 8년 동인과 서인이 분당을 하면서 본격화된 당쟁으로 서인의 중추로서 동인과 대립하던 정철에게 율곡 이이가 “조정을 혼란시키는 정쟁을 일삼지 말라.”하는 쓴소리 레 마음이 상하여 담양 창평으로 낙향하였을 때 쓴 노래다.     

     

     

[네이버 지식백과] 감성을 노래하는 시인 송강 정철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봄부터 겨울에 이르는 변화를 축으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님 생각의 간절함과 짙은 외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선조 임금을 향한 간절한 연군의 정을 님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여인의 마음으로 나타내 자신의 충정을 토로한 이 노래는 여성적인 정조나 어투로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으며, 사용된 시어나 정경의 묘사가 탁월하다. 더구나 애절하면서도 속되지 않은 간결한 노랫말이 현존하는 서정시가 중에 으뜸이다.     

     

다시 백지영의 노래로 돌아가 보자.     

     

"허탈하게 웃으며     

하나만 묻자 했어     

우리 왜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거 같진 않아"     

     

---총 맞은 거처럼----     

     

정철의 무한 임금님 사랑이 지나쳐 정적들에 의해 내쳐진 그가 <사미인곡>을 통해 딱히 잘못한 것도 없이 버려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이 노래의 서사,     

     

     

"엊그제 님을 모시며 광한전에 올라 있었건만, 그 사이 어찌하여 이 하계에, 이 속세에 내려왔나. 내려올 적에 빗은 머리가 얽히고설킨 지 삼 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단장할 연지야 있지마는 누굴 위해서 고이 단장할고. 마음에 맺힌 시름이 첩첩이 쌓여 있어, 짓는 것은 한숨이오 떨어지는 것은 눈물이구나.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은 끝이 없다.     

     

[출처] 사미인곡(思美人曲)_정철     

     

백지영의 '총 맞은 거처럼'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초췌한 모습의 여자는 배가 고픈지 라면을 끓여 먹는다. 숨도 안 쉬고 그 뜨거운 면발을 폭풍 흡입하단 여자는 사레가 들었는지 컥컥거리다, 양은 냄비 위에 라면을 왁 토해 내고 목메어 운다.     

'사미인곡'에서 옥황상제에게 버림받은 선녀와 정철 자신을 오버랩하면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고 탓하고 싶은데 감수해야 하는 주군을 향한 무한 사랑이 버려진 지 3년이 지나도록 누굴 위해 이뻐야 하나라는 심정으로 3년 내내 머리도 안 빗고, 연지분도 안 바른 일방 통행적 선조 임금님을 향한 정철의 충성심을 보여 준다.     

결국 '사미인곡'의 버림받은 선녀는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한다. "차라리 싀어디어 범나비 되어 스라"라고 하는데 여기서 ' 싀어디어'는 '싀여지다'로 '죽어지다'라는 옛말이다.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깐이나마 님 생각 않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였으나, 마음에 맺혀 있고 뼈에 사무치니, 편작이 열이 오나 이 병을 고칠 수는 없겠구나. 아아, 내 병은 이 님의 탓이로구나. 차라리 내 죽어 호랑나비 되리라. 꽃나무 가지 그 가는 곳마다 앉았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기리라. 님께서는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끝까지 내 님을 좇으려 하니.     

[출처] 사미인곡(思美人曲)_정철     

     

     

'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거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구멍 난 가슴이     

어느새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     

이러기 싫은데     

정말 싫은데     

정말 싫은데 정말     

     

--<총 맞은 거처럼> 백지영---     

     

눈물 폭탄 발라드 여제 백지영의 들숨과 날숨을 사용한 감성 창법은 심장이 아파서 죽을 거 같은 뮤직 비디오의 여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정말 닭똥만 한 눈물이 그녀의 손등 위로 뚝뚝 떨어진다.     

기나긴 겨울밤에 독수공방 하면서 꿈에나 임을 보고자 하여도 잠들 수 없음을 상사의 고통을 정철은 시적 화자인 여자의 목소리를 빌어 임을 그리워한 나머지 살아서는 임의 곁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죽어서 벌이나 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 임께 옮기겠다고 노래한다.     

     

조선시대 초기 고전시가의 중심축을 이루는 사대부들의 가창 가사는 임을 잃은 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설정하여 충신 연군 지사(忠臣戀君之辭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왜 그들은 벼슬자리에 현존해도 벼슬을 빼앗겨도, 혹은 우배를 가서도 왕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당시 지배체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지배체제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는 왕권이었고, 그 왕권에 순응할 때만이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래서 어떤 유배 가사라도 왕권에 도전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 왕으로부터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대부분의 유배 가사는 왕의 은총을 회복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리라.     

 이렇게 창작된 정철의 <사미인곡은 > 당시  사대부들의 연회 자리에 술맛을 돋우는 권주가로  자주 불렸을 거고, 슬퍼서 술 푸고 기뻐도 술 푸는 음주가무 문화에 구비전승은 기본.     

 어느 비 오는 가을날 왕이 즐기는 차를 올리는 궁녀가 다기에 찻잎을 우리다가 낙수물에 돋는 빗방울을 보며 이 노래를 불었다 치자 백지영의 '총 맞은 거처럼'처럼 애절하고 처연한 '진양조장단'으로.     

무심코 궁녀의 노래를 듣던 선조 임금이 "이리 오너라' 하시고 그 노래가 짜안하니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누가 만든 노래더냐? 하고 물었겠지. 그래서 궁녀는 "최근 궁 보드 차트 1위인 정철 대감 마마의 <사미인곡>이라 하옵니다". 했겠지!     

옳타구나 감동한 선조께서 그날 차 올리던 궁녀 성대 결절 생기도록 무한 반복 라이브를 시키며 정철의 충성심에 감동 감화하셔서 친히 편지를 쓰셨단다. "정철아 곧 부르마 쫌만 기다려라!"     

 지금까지의 스토리텔링은 미루어 '짐작컨데 내러티브'라고 이름 짓는다면 펙트는 이 노래의 덕후들이 많아 '사미인곡' 시즌 2인 <속미인곡>이 창작된 것이다. 그리고 선조를 향한 정철의 애절한 충심이 먹혔는지     

     

     

     

 54세 때인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서      

최영경(崔永慶) 등을 다스리고 철저히 동인들을 추방하고 다음 해 좌의정에 올랐고 인성 부원군(寅城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정철(鄭澈))]     

     

     

이처럼  옛 노래는 임금님을 찬양하는 스토리가 대세다. 한편 서글픈 발라드 류의 가사만 있는 건 아니다. 사대부들은 열공하고 열 충성하고 열정적으로 자연을 즐기며 놀아야 한다. 그들의 사사로은 술자리에서도  임금님 덕분에 비싼 술에 이쁜 기녀 옆에 끼고 잘 놓고 있다는 스토리를 담은 '역군은 이샸다'류의 정철의 '성산별곡'이나 '관동별곡'이 있는데 고들 학생들이 무지하게 싫어하는 기행가사 작품이 정철이 대관령에서 동해 바다까지 여행을 하고 쓴 '관동별곡'이다.     

말이 좋아 노래지  73구 146행의 길이가 엄청난 장형 가사다. 1행이 4 음보로 12자를 기본으로 하면 1752자나 된다.     

 학생들은 싫어하는 '관동별곡'을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시적 비유가 거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은으로 된 산(파도)을 깎아내어 온 천지에 흩뿌려 내리는 듯하니,     

오월의 하늘에서 흰 눈(파도 거품)이 내리는 것은 무슨 영문인고     

     

.     

[출처] 학습 내용 분석 자료 [관동별곡-정철]|     

     

     

     

     

임금을 사랑한 정철의 충심이 정치적 연적들에 의해 다소 부정적인 사료로 남았지만, 예인 정철의 작품은 서정 갈래로 단연 최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조를 위해 궂은일 마다하지 않았는데, 여러 차례 유배길에 올랐던 그의 작품 <사미인곡>의 아름다운 가인이 난 왕이 아니라 정철과 썸을 탄 여인이길 미련하게 연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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