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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조  속의 기다림의 해학

님이 오마 하거늘

기다림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리움을 덜어내지 못한다
-최사립의 한시와 작자미상의 사설시조 ‘님이 오마 하거늘’--




시조란 명칭은 영조 시절 이세춘이라는 가객이 <시절가조> 이름을 붙이고, 정조 때
이를 줄여 ‘시조’라 부르면서 널리 쓰였다고 한다. 시조의 ‘시’자는 시절이란 단어에서 온 것이고, '시절'의 옛날 의미는 당시 혹은 그 때를 가르친다. 그렇게 시절 가조는 그 당시 불려지는 노래로 지금으로 치면 최신 유행가라는 의미 정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사설시조는 시조 중에서 초장과 중장이 길어진 산문적이며 서민적인 고전시가다.
시조가 양반 중심의 문학이었다면 사설시조는 서민적인 내용과 자유로운 형식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일상적이고 흔한 소재를 언어 유희를 통해 해학과 풍자로 표현. 사설시조의 작가는 대부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설시조 [辭說時調] (천재학습백과 초등 사회 용어사전)
한자 일색의 한시에 비해 사설시조는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삶을 그린 신토불이 정형시가다. 사설시조는 가창의 자유로움과 구체적인 스토리텔링 과정에서 3행은 유지하되 부득이한 경우, 중장과 종장을 부단히 늘인 서민들의 노래다.
솔직히 평시조의 규칙인 3장 6구 45자 내외의 글자만으로 님 기다리는 여인의 애타는 심정이나 지방 관속의 수탈로 인한 백성의 불만을 노래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슬금슬금 글자 수가 늘고, 행을 넘기고 중장이나 종장이 무한정 길어진 것이다.
이처럼 최소한의 형식, 즉 종장의 첫 음보(끊어 읽는 단위) 3글자만 지켜 주면, 국문학에선 엇시조나 사설시조도 시조란 장르에 포함된다.
고려 말에 생겨나 조선시대에 널리 불린 시조는 임금님에서 기녀, 장돌뱅이까지 누구나 지어 부를 수 있는 국민 가요다. 조선 중기 한문학의 정종(正宗) 또는 상월계택(象月谿澤)으로 칭송되었던 신흠은 노래 만든 사람 시름도 많기도 많은가 보다 말로 하면 될 걸 노래까지 부르다니, 그렇다면 나도 억울함 · 분노 · 슬픔 때문에 어지러운 상황에 노래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어 볼까나 라고 노래한다.
사설시조는 서민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응집되어 첩첩이 쌓인 시름을 풀 수 있는 가창 방식이다. 흥겨운 장단에 맞춰 웃는 듯, 슬픈 듯 부르는 이 노래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어떤  형식이든 고전시가의 노랫말은 이별에 따른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서 표현이 많다. 그러다 보니 당나라의 노래인 한시나 신토불이 노래인 시조들 중에도 님 그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자주 등장한다.
기다림의 간절함을 그리움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고려 때  최고의 문장가 정지상의 ‘송인’과 비견할만한 한시가 있다. 이 작품의 작가는 고려 시대 문인 최사립이다. 한 행에 한자가 7개씩 넉 줄로 쓰여서 칠언절구라 부르는 그의  작품은 고려 5백여 년간 개경의 손님 맞이와 손님 전송의 장소로 유명한 천수문을 배경으로 창작되었다.
70년 대 멜로 드라마의 눈물바람을 이루는  이별의 공간이 온리(Onley) <김포공항>인 까닭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까진 맘 먹는 타고 티켓팅하고 대한민국 영공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멜로 드라마의 이별은 공항에서 이뤄지고   그로부터 5년 후라고 쓰인 자막 다음 씬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된 과거의 연인들의 현재의 모습 클로즈업.

고전시가의 단골  이별의 장소는 역시  강가 나루터나 국경 지대의 관문이 흔하다.

그리고 그 중에 대표적인 장소가

대동강 나루터 <남포>나 개성 동문 밖 천수사(天壽寺)다.



 <천수문>이 옛노래에 자주 등장한다.
"버들개지 날리는 천수문 앞
술 한 병 놓고 임 기다리는데
해 기우는 먼 모롱이 바라보면
틀림없던 임 가까워오면 아니어라"




- 고려 최사립 (崔斯立.?~?) '친구를 기다리며' 전문
임을 기다리는데 저 멀리 가물가물할 때는 형체가 비칠 때 틀림없이 임이구나 싶은데, 가까이 오면 아니기를 거듭하다 애간장이 끊어진다는 시적 화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봄날은 저무는데 함께 술을 함께 마실 친구가 안 와 들고 있던 술병이 멋쩍어진다는 이 남자의 정회는 당나라 시인 한유의 “풀빛인가 멀리 바라보다 다가가면 간 곳 없구나”에서 온 표현과 닮았다.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정황의 시가가 있다. 동진東晉 효무제武帝(380년 무렵) 때, 오(吳) 땅에 살던 자야(子夜)라는 여인이 지어 부른 <자야사시가(子夜四時歌)>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을 노래한 4수의 작품이다.
子夜歌
擥裾未結帶 . 紋眉出前窓
羅裳易飄飄 . 小開罵春風
.
<자야가>
치마자락 부여잡고 띠도 못 맨채
그대 오시나 창 열고 바라보노라면
표표한 바람에 치마폭 나부끼고
속절없이 바람만 흘러 가누나.
[네이버 지식백과] 자야가 [子夜歌] (두산백과)
위의 한시는 화자는 남성인지라 길 밖에 술병 들고 서서 친구를 기다려도 무방하다. 하지만 기다리는 대상이 남성인 여성 화자인 경우엔 남의 눈이 두려워 드러내놓고 기다릴 수가 없을 테니 치맛자락 부여잡고 띠도 못 맨 채 기다리는 이 여인의 애타는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야’라는 여성이 쓴 이 한시는 연인을 기다리는 여심을 그리고 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창문을 열어 놓고 바라보고 있겠는가? 최사립이 ‘기다림’이란 한시에서 “해 지도록, 먼길을 뚫어지게 바라보지만 몇몇 행인만 다가올 뿐, 친구는 아니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한다.
이와 같은 그리움의 정서를 노래는 아니지만 악보가 없이도 가락을 지어 읽는다는 현대시 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별과 기다림, 그리움의 정서를 그린 작품 중에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가 고전시가의 단골 글감 기다림과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중략---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중략---
---<게 눈 속의 연꽃> 中-문학과 지성사--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라고 쓴 황지우 시인의 안타까운 기다림은 고려 시대 문인 최사립의 ’친구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의 남성 화자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두 작품에 주인공이 선 채로 돌이 되는 망부석의 기다림을 선택한 거라면 조선 시대 서민 시가의 여성들은 직설화법으로 오지 않는 님을 원망하는 노래를 부른다.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전하는 서민들의 노래로 김천택이 지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려 있는 ’님이 오마 하거늘(시조의 제목은 따로 없어서 초장의 음보 2개를 연결해 제목으로 부른다)’이란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가 있다.
님이 오겠다고 하기에 저녁 밥을 일찍 지어 먹고
중문을 나와서 대문으로 나가, 문지방 위에 올라가서, 손을 이마에 대고 임이 오는가 하여 건너산을 바라보니, 거무희뜩한 것이 서 있기에 저것이 틀림없는 임이로구나. 버선을 벗어 품에 품고 신을 벗어 손에 쥐고, 엎치락뒤치락 허둥거리며 진 곳, 마른 곳 가리지 않고 우당탕퉁탕 건너가서, 정이 넘치는 말을 하려고 곁눈으로 흘깃 보니, 작년 7월 3일 날 껍질을 벗긴 주추리 삼대(씨를 받느라고 그냥 밭머리에 세워 둔 삼의 줄기)가 알뜰하게도 나를 속였구나.
마침 밤이기에 망정이지 행여 낮이었다면 남 웃길 뻔했구나.
[출처] [EBS 수능특강] 님이 오마 하거늘_작자 미상
이 노래는 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버선발로 달리다 넘어지고 구르는 여성의 과장된 행동을 한 편의 ‘슬랩스택(slapstick) 코미디’(comedy)처럼 보여 준다.
‘님이 오마 하거늘’의 여성은 신을 벗어 품에 품고 언제든 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혹여라도 달리다 뒤축이 헐거워 고무신이 벗겨 질까 봐 신도 벗어 손에 쥐고 요잇 땅! 사인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그 때 건너 산을 바라보니, 거무희뜩한 것이 보여서 틀림없는 임이로구나 싶어 엎치락 뒤치락 허둥거리며 진 곳, 마른 곳 가리지 않고 데국데굴 굴러 님 곁으로 다가간다.
그런 뒤에 비음 촉촉이 섞어 “자기야 이케 늦게 와써, 기다리다가 죽을 뻔! ”하고 정든 말을 건네려는 데, 아뿔싸, 곁눈으로 흘깃 보니 씨를 받느라고 그냥 밭머리에 세워 둔 삼의 줄기 묶음을 잘못 본 듯. 그 순간 민망해 죽을 뻔했다는 서민 가요다.
이 작품을 원문으로 읽으면 입말이 맛깔지다. 작중 인물은 세워놓은 삼대를 당연하다는 듯 님으로 착각하여 정신없이 달려가는 이 장면이 상당히 리듬감 있게 진행된다. 더구나 “님비곰비 곰비님비, 천방지방 지방천방, 워렁충창” 등의 시어는 주인공의 행동을 경쾌하고 발랄한 리듬으로 전달하고 있다.
마지막에 종장에 “모쳐라 밤일싀만졍 행혀 낫이런들 남 우일 번하괘라. 라며 분위기가 급전한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여기서 님이 아니라 실망한 주인공의 얼굴과 동시에 뻘짓한 거 같아 멋쩍어 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모쳐라( 때마침)’라는 한탄조 시어에 고스란히 담긴다. 시적 화자인 여성이 주변이 이미 어두워졌음에 다행이다라고 하는 장면 역시 위트가 가득한 사랑스런 장면이다.
최사립의 한시 <친구를 기다리며>나 당나라 여류 시인 <자야>의 <자야가(子夜歌)>가 기다리고 기다리고 도 기다리다 지쳐 울먹이는 노래라면 사설시조의 시적 화자 여성은 상당히 주체적이고 성깔도 있는 편이다.
기다리는 님이 오면 사납게 짖어서 쫓아내고 끔찍하게 싫은 남정네가 오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눈치없는 강아지가 미워서
”개를 어라믄이나 기르되 요 개가치 얄미오라. (설령) 쉰 밥이 그릇 그릇에 남아돈들 너에게 먹일 마음이 있겠느냐?“
[출처]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사설시조
이 노래 속의 여성은 오지 않는 님에 대한 불만을 자기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에게 퍼붓는다.
이런 발상을 통해 소박한 여심(女心)이 사실적이면서도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 또, 임을 내쫓는 개의 동작을 묘사한 부분은 의성 · 의태어를 적절하게 써서 실감나게 표현함으로써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므르락 나으락'은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나아갔다 한다는 말로서, 소박하면서도 실감나는 개의 동작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사설시조 속의 웃음
나라면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홍진영이란 가수가 부른 <GOOD BYE(잘가라)>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님에게 불러 죽고 싶다.
”잘 가라 나를 잊어라
이까짓 거 사랑 몇 번은 더 할 테니
잘 가라 돌아보지 말아라
여기서 난 안녕 멀리 안 나갈 테니

울지 마라
알잖아 내가 깔끔한 게 좋아서
혹시나 하는 맘에 하는 얘기인 거야
비라도 부슬부슬 오는 늦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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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는 밤
혀 꼬인 말투로 전화하지 마라
--<GOOD BYE(잘가라)>-- 홍진영 노래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란 영화 대사가 있다. ‘임’ 중에서 왕을 향한 충성심은 절대 변하지 않지만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의 여성화자들의 님은 ‘왕’ 절대 하니고 이성이다. 작자가 남자라면 대상은 당연히 여자일테고, 위의 노랫말처럼 “이까짓 거 사랑 몇 번을 더 할 테니 질척대지 말고 그냥 떠나라” 할 수 있는 게 신토불이 사설시조 속의 여성이다. 비라도 부슬부슬 오는 늦은 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는 밤, 혀 꼬인 말투로 전화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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