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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아들아

80 평생을 봉인한 아버지에 눈물

         

<마음이 아플까 봐> 글/그림 올리버 제퍼슨                

 노오란 표지에 파란 글씨로 『마음이 아플까봐』란 제목으로 쓰인 올리버 제퍼슨의 그림책은 

영국의 유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올리버 제퍼슨에 작품이다. 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와 소재를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와 정갈한 그림으로 감동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떠올랐다고 한다. 이 그림책의 소녀는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할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도 두려워 마음을 유리병 속에 가둬둔다. 소녀가 스스로 병 속에 넣어둔 마음이 병 밖을 나와 상처를 극복하고 스스로와 화해하기까지 작가는 아주 작은 글텍스트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명화같은 그림으로 스토리를 진행한다. 31 페이지에 걸쳐 그린 그림 속에 겨우 42줄의 문장만으로 말하는 이 그림책은 이미지로 말하는 그림이다.

 표지를 넘기면 속표지에 할아버지와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아이의 추억이 드로잉으로 정겹게 

펼쳐진다 갓난아기인 소녀를 안은 할아버지, 강아지를 데리고 함께 산책하던 할아버지, 무엇이든 뚝딱 고치는 맥가이버 할아버지 곁에서 까치발을 세워 무언가를 속삭이던 어린 소녀.

  작가는 이런 기억 속의 풍경을 17컷의 드로잉 소묘로 속지 가득 그려놓았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소녀는 너무나 두려워 ‘아주 잠시 잠깐만’ 마음을 빈병에 넣어 두기로 한다. 슬픔을 받아 들리기를 거부하는 소녀는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견디며 자란다. 그런 소녀의 가슴에 걸린 유리병은 할아버지와의 소중한 기억을 봉인한 그대로 곁에 머문다. 어느덧 소녀는 아름다운 그러나 웃음을 잃은 처녀가 된다. 어느 날 그녀는 가슴에 매달린 유리병이 버거워지고 유리병 속에 상처를 직면하고 싶어 유리병을 깨뜨리려 하나, 유리병은 깨어지지도 병 속에 아픈 기억을 세상밖으로 끄집어 낼 수도 없는 절망스러운 짐이 된다. 

 이 작고 소박한 그림책 한 권을 아이와 읽어 주던 남편은 그림책 속에 소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충격을 받는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으로 자신을 힘들게 한 아버지를 미워하던 기억과 성인이 된 뒤, 가족들에게 소외된 채 등돌리고 늙어가던 아버지를 남 몰래 용서하면 연민하던 자신이 떠올랐던 거 같다. 이제는 괜찮다고 다 잊었다고 아버지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고 언젠가는 말하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은 남편은 방광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얼마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덧없이 흘러갔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지나간 시간에 잘못을 사과하지 못했고 고통을 달래는 몰핀 주사로 죽음같은 잠을 자다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2월 7일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말에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받아 들여야 하는 준비하던 남편은  장례 수속에 필요한 서류를 찾으러 들른 집에서 남편은 아버님의 낡은 수첩 속에서 누렇게 바랜 10년전 신문칼럼 조가리를 발견한다. 어린 시절부터 유리병 속에 봉인하고 외면한 아버지에 대한 미움에 감정을 스스로 꺼낼 수 없어 힘들어했던 남편과 80 평생을 미뤄온 ‘미안하다’ 한 마디를 마음이 아파서 유리병 속에 봉인해 둔 아버님에 안타까운 마음이 누렇게 찌든 신문 기사 속에 고스란히 봉인되어 있었다. 그 신문 기사엔 가정 폭력으로 상처받은 자식들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세상을 떠난 노숙자 할아버지의 편지글이 적혀 있었다. 그 다음날 아버님은 아들 손을 잡고 눈을 감으셨고, 불혹의 아들은 아버지의 차디찬 주검에 얼굴을 묻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 막막한 설움이 무엇이었는지 남편은 아버님을 보내고 난 며칠 뒤 우연히 고른 ‘마음이 아플까봐’란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 주다가 소리 죽여 울었다. 아빠가 왜 우는지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겁이 나는지 따라 울었고, 나는 우는 아이를 안고 나오면서 남편이 불편해 하지 않게 방문을 조용히 닫아 주었다.

 <마음이 아플까 봐>는 눈물로 호소하지도 않으면서 우리의 심장을 뒤흔드는 진한 여운과 감동을 주는 감동을 준다. 이 그림책은 마법처럼 독자들의 묵은 상처를 끄집어 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거나 혹은 외면하고 싶었던 우리들 내면 깊숙이 숨겨둔 아픔, 상처들과 조용히 마주하게 한다. 가슴에 봉인한 아픈 기억의 유리병을 하나씩을 숨겨 두고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마음이 아플까 봐>는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한 아픔을 일깨워 툭툭 털어내게 하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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