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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미안!

        

<내가 엄마를 골랐어!> 글/그림 노부미/스콜라      

                                                              이서     

<내가 엄마를 골랐어!>를 만든 노부미작가는 대학 시절 그림책을 좋아하던 여자 친구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고 300권이 넘는 그림책을 혼자 만들어 프로포즈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책 구애는 성공했고 지금은 결혼을 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그는 지금 일본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그림책작가가 되어 노부미작가의 특유의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그림책 속에 아기천사는 매사에 얼렁뚱땅이고 어른스럽지 않은 엄마의 꽃무늬 치마가 예뻐서 그녀를 엄마로 선택한다.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서툴고 부족한 엄마, 그런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고 태어났다는 아이는 가끔씩 철부지 같은 엄마를 고른 자신에 선택을 후회한다.  

  <내가 엄마를 골랐어!>는 그림 속에 숨어 놓은 숨은 그림찾기로 스토리텔링을 돕는다. 임신 중에 엄마의 방엔 <아기가 태어나면>이란 잡지 표지가 보이고, 잘 생긴 남자 모델의 사진도 있다. 글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 엄마는 나름 태교를 한 거 같다. 그런데도 편의점 인스턴트 음식 매니아인 엄마의 방은 항상 지저분하다. 이 그림책의 잔 재미는 방안에 뒹구는 <12시에는 청소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품은 엄마의 메모와 지붕 위에 고양이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아기들 그림 옆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힌 “아기가 몇 명일까요?”라는 메모에 미션을 따라 숨은 그림을 찾아 읽는 재미가 유쾌하다.


  어린 시절 무지하게 고집불통인 나를 키우며 엄마가 한 말 중에 “너도 이 담에 너 은꼭 닮은 애 낳아 키워 봐라 그래야 내 맘을 알지!”와 “내가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다니.”라는 엄마에 덕담(?) 그 때나 지금이나 나에 뼈를 때린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는 참 별로다.

 이 그림책의 엄마는 임신 중에도 한심하다. 어쩌다 산모가 된 듯한 이 엄마는 임신 중독증을 피하려면 초코렛같은 단 것을 피하고 패스트푸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데, 아무 거나 막 먹는다. 정말 대책없는 엄마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나 역시 엄마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함량 미달에 엄마다. 

 자궁암 정기 검진을 받으로 간 날 나는 의외에 비보를 듣는다. “임신입니다.” 당시로선 “자궁암입니다”라는 말보다 더 당황스런 진단이다. 3대 독자를 남편으로 얻은 나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숙제를 완수하기 위해 노령에 나이에 출산을 감행한다.  산부인과에도 보기 드문 42살 최고령 산모인 나는 뭐든 먹으면 토하는 ‘먹토덧’으로 10달을 보냈다. 니글니글 입덧에 잦은 구토로 식도염까지 달고 살게 된 나는 태교는 꿈도 못 꿨다.

 첫 애는 서로 사랑해 결혼하고 얼떨결에 엄마가 되었고, 둘째는 니글니글 미식거리는 입덧으로 인해 고통스런 열달을 견뎌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임신은 아이가 내 배를 박차고 세상

밖으로 하루라도 빨리 나와 주기를 손꼽아 기다린 인고의 시간이었다.  

 누구나 엄마라는 이름이 처음이라 서투르고 어설프다지만 나만큼 이기적이고 한심할까 하는 사건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일이다. 산모의 신체 특성상 모유 수유가 불가능한 경우 착유기로 모유를 짜서 아이에게 먹인다. 리얼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에 비해 나는 저염식에 안 매운 산후조리원 식단이 늘 밍밍하고 니글거렸다.

 아이를 낳은 지 이주일이 지나 나는 결심을 했다. 매콤한 떡라면에 얼음 동동 띄운 사이다를 마셔야겠다고, 그날 밤 10시쯤 사복으로 갈아 입고, 단골 이모네 분식집에 갔다. 양은 냄비에 바닥을 수저로 싹싹 긁으며 떡라면 2인분을 먹고, 사이다를 원 샷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고 난 만족하고 흡족하고 배불 배불했다.

 난 인간이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엄마는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날 새벽 착유기로 짠 모유를 먹은 아기는 새벽부터 폭풍 설사를 해댔다. 남편이 기저귀를 갈 때 아빠 얼굴에 녹색 설사똥을 연거푸 발사한 뒤에도 배가 아픈지 하루 종일 울었다. 의사 선생님이 청진기를 아기 배에 대다가 깜짝 놀라시며 “애기 뱃속이 왜 이렇게 부글부글 쾅쾅거려요, 가스가 가득 찼나 봐요. 혹시 산모 탄산 음료 마셨어요?”하는데 심장이 오골거려서 죽는 줄 알았다. 다음날 아기의 핑크빛 똥꼬는 새빨갛게 부어올랐다. 설사를 할 때 묻어 나온 고춧가루를 남편은 설마 미친 산모가 외부에서 뭘 먹고 왔으리라 의심하진 않았다. 다만 산모의 식단에 문제가 있는 거 같다며 죄없는 영양사 욕만 엄청했다. 

  노부미 작가의 <내가 엄마를 골랐어!>란 그림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아이가 머리가 찌그러질 같은 고통을 견디며 엄마를 만나기 위해 나오는 장면이다. 아기는 머리가 찌그러질 것 같은 고통과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머리로 자궁 입구를 밀며 태어난다.

 엄마를 만나로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하며 아이는 서러워한다. “거봐 내가 얼마나 힘들게 엄마를 만나러 이 세상에 왔는데, 막 혼내고 미워하고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한다. 

 난 그림책 속 아이가 울먹이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태어나지 말 걸 그랬나 싶네요. 뭘해도 얼렁뚱땅인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내가 태어났는데, 엄마는 내가 태어난 게 기쁘지 않나 봐요? ”하고 말할 때 마음이 뜨끔했다. 나 역시 아이가 출산을 앞두고 머리를 자궁 입구로 두지 않아 조산에 위험부담을 가진 적이 있다. 8개월에 접어들어도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지 않고 머리를 자궁 입구로 돌리지 않았다. 의사는 이 상태론 제왕절개를 겸한 유도 출산도 어렵다고 했다.  

  8개월에서 9개월로 접어들 때,  간헐적인 진통에 미세한 하혈을 했다. 유산 가능성이 더 높아졌고 의사는 조산 확률이 높으니 미숙아 상태에서 유도 분만을 하자고 했다. 

 수술 날짜를 이틀 앞두고 온몸의 뼈가 해체됐다가 다시 오므라드는 진통이 왔다. 터질 것처럼 부푼 내 배에 파아란 정맥이 도드라져 올랐다 가라앉기를 48시간을 하는 동안 태아는 시계 바늘 방향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뱃속에서 회전을 했다. 

 10분 돌고 3시간 쉬고 5분 돌고 30분 쉬기를 반복하며 머리를 자궁 입구로 바로 잡았다. 3킬로그램도 안 되는 어린 핏덩이가 살겠다고 자기에겐 우주 공간 같은 자궁 무중력의 공간 안에서 360도 회전을 한 것이다. 덕분에 아이는 3,3킬로그램의 건강한 공주로 우리 곁에 와 주었다. 이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나는 너가 태아일 때 엄마 뱃속에서 360도 공중 부양을 해서 세상에 무사히 태어났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러면 아이는 내 옷 속으로 기어 들어가 뱅그르 도는 흉내를 내면서 “이렇게 이렇게 내가 엄마 뱃 속에서 돌았지?”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가 엄마를 골랐어!>를 읽으며 어릴 때 아이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가>로 바꿔 자장가를 불러 준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면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따라 불렀다. 나의 사랑 소중한 아가도 가끔씩 엄마가 미울 때가 있을 거고 젊고 예쁜 엄마가 자기 엄마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할 텐데....

 아이가 자라면서 제 아무리 말썽을 피운다 해도 변하지 않는 엄마의 사랑을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데, 늘 마음만 앞선다. 이 그림책은  부족한 엄마를 엄마라 믿고 이 거친 세상을 살아낼 내는 이 세상에 모든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한다. 나 역시 아이에게  “너가 엄마의 아이인 것이 엄마는 참 힘이 되고 기뻐.”라는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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