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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익숙함으로 즐기자

        

<어느 조용한 일요일> 글/그림 이선미/글로연                

                  이서(이미경)     


오늘 소개할 이선미작가의 글 없는 그림책 <어느 조용한 일요일>은 감정과 관점의 다양함을 간결하고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이 그림책의 압권은 제목이다. ‘어느 조용한 일요일’이란 제목과 달리 이 책의 일상은 엄청나게 부산스럽고 충격적인 일요일 풍경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그때의 감정과 느낌을 보물창고처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이선미작가는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어린 시절을 보낸 어른들에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낸다. 공감은 하는데 즐거운 추억이 아니라 이선미작가의 그림책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큰 아이가 5살 때 집에서 엄마와 함께 하고 오감 놀이를 하고 완성된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 유치원 숙제가 있었다. 먼저 거실에 김장할 때 바닥에 까는 비닐을 청테이프로 고정해 붙였다. 그 위에 커다란 전지를 양면테이프로 붙이고 아이에게 흰색 박스티를 입혔다. 아이는 색색 물감을 짜 놓은 전지 위에서 나비처럼 나풀나풀 발바닥 도장을 찍으며 춤을 췄다. 

 조그맣고 귀여운 아이의 파란 발바닥, 분홍 발바닥, 노오란 발바닥 도장이 그림 그림이 R==멋진 액션 페인팅 작품으로 완성됐다 싶은 순간, 아이가 갑자기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고 까르르 웃더니 나를 보고 “씨익” 웃고 후다닥 비닐을 깔을 거실 마루로 달렸다. 

나는 안돼!하고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잡으러 가고 아이는 자기 방 침대에 올랐다가 다시 거실 전지 위의 물감을 잔뜩 묻히고 주방으로 달아나고 나는 아이를 잡으려고 달리다가 미끄러운 비닐 위로 벌러덩 자빠졌다. 아이와 나의 옷은 물감으로 뒤범벅되었다.

나는 골반이 나간 듯한 고통을 참으며 아이를 참아 더 이상 못 움직이게 품에 안았는데, 아이가 나를 보고 해맑게 웃으며  아이는 파란 물감을 자기 얼굴과 내 얼굴에 발랐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그날 사건의 절정은 파란 물감을 해병대원 위장 진흙처럼 새하얗게 웃던 아이의 유독 새하얀 앞니다 이갈이를 해서 두 개가 비어 있는 젖니가 아픈 기억으로 떠오는다. 

 거실 바닥에 원목 마루 촘촘히 박힌 파란 물감과 핑크 물감을 닦는다고 아세톤을 묻힌 면봉으로 비비던 그날의 기억이 이 그림책과 맞물려 무지 불편했다. 그 때의 아이가 이제 27살 직장인이 되고 남자 친구도 생겼다. 나는 이 그림책을 보고 만약에 딸이 손녀를 낳는다면 핑크색 물감을 뒤집어쓰는 오감 놀이를 손녀딸과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 감짝 놀랐다.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고 물감이야 씻으면 되는데, 무슨 걱정. 이선미작가의 <어느 조용한 일요일>은 글이 없는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의 서사는 지붕을 칠하려고 올려놓은 페인트가 저절로 콰당하고 떨어지는 어느 일요일 사건으로 시작된다.

강아지 멍뭉이가 달려  분홍색 페인트로   '철퍼덕 철퍼덕'  이걸 본  아이도 '풍덩'  몸을 던져 '찐덕찐덕'한 요상한 불쾌함과 해방감을 즐기는 그림에 어디선가 데구르르 굴러온 축구공도 페인트에 풍덩하고 빠진다. 

 순식간에  분홍색 페인트를 온몸에 두른 축구공은 아이의 닉킥으로   "슈유웅" 날아가서 어딘가에 분홍색 페인트 도장을 찍는다. 오감 놀이를 한답시고 온 집안을 물감 천지로 만들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인상을 쓴 거 같은데, 이제 중학교 2학년 딸은 재미있다고 말한다. 자기도 물감을 온몸에 칠하고 놀고 싶다고 한다. 

다시 그림책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물감을 뒤집어 쓴 축구공이 날아가  아빠 차에 도장을 찍는다. 철퍼덕 물감 웅덩이에 몸을 담군 참새가 엄마 앞치마도 날아가  분홍꽃물을 들인다. 나중에 눈동자만 남기고 그림책의 펼침 화면이 이쁜 핑크 천지다.

 그림과 그림의 역동적 흐름을 독자가 채우는 서사 공란 메우기가 절대적인 글없는 그림책은  환타지 상상하는 이의 몫만큼 재미지고 흥미롭다.    

 이 그림책의 놀라운 건  글자 한 개 없는 그림을 보면서 내가 페인트 통이 지붕에서 떨어질  때는 “쿵!”   분홍색 페인트를 “떼구르르” 축구공을 아이가 공중으로 차 올릴 때는 “쑤우웅!” 이런 식으로 마음속에서 소리내어 읽게 된다는 사실이다. 

 새초롬한 고양이나 이 광경을 바라보던 참새들이  분홍새 페인트를 향해 날아드는 그림을 보며 내 머리 속엔 아이와 고양이가 페인트를 밟는 '찰파닥 찰파닥' 소리와 참새들이 날개를 적시며 날아드는 “팔락 팔락 팔락”도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린다.

  완전 신기하고 요상한 그림책인 거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붕 위에 페인트가 굴러 떨어지지 않는 시점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 그림책은 글없는 그림책이면서 글도 있는 그림책이다. 그 비밀은 에필로그 격인 부록에 있다.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등장 인물들의 각기 다른 정서와 생각을 글로 옮긴 4가지 작가 버전

 "어느 조용한 일요일 엄마는..

"어느 조용한 일요일 아빠는..

"어느 조용한 일요일 아이는..

"어느 조용한 일요일 이웃집 할머니는.. 

으로 설정된 글로 된 그림책은 동일한 상황에 다른 생각을 유쾌, 상쾌, 신선하게 그리고 있다.

이성미작가의 <어느 조용한 일요일>은 1권 값으로 4권을 읽는 가성비 최고의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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