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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와 진달래꽃

투화     

 천수백 년 전 어느 견우(牽牛) 노인(고유명사가 아니라 그저 '소 끄는 늙은이'라는 뜻이다)이 수로(水路) 부인에게 바쳤다는 꽃에 얽힌 향가 <헌화가>는 수로부인의 미모에 반한 노옹의 프로포즈 노래로 읽힌다. 

‘꽃’은 사랑 고백의 대표적 상징물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을 꺾어 던지는 풍속은 동. 서양이 동일하다. 동양에선 구애한다는 말보다 꽃을 던지는 <투화(投花)>라는 표현을 흔하게 사용한다. 

 이처럼  사랑하는 연인에게 프로포즈를 하며 꽃을 꺾어 바치는 풍속은 꽃이 일반적인 구애 도구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식물이란 걸 알려 준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 만든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담보 짐을 쌌다네”  


---한복남 작곡 ‘앵두나무 처녀’  1절---          

앵두꽃을 꺾어 자신이 좋아하는 처녀의 집 담장 안에 던진다는 프러포즈 풍습을 ‘투화’라고 한다고 한다. 나는 그런데 하필 왜 앵두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실제 하얀 앵두꽃이 피면 처녀들은 곧 열매로 빨간 앵두를 기다리며 남자를 맞이하기 위한 치장을 시작한다. 앵두는 하얀 꽃이 지면 두 달 후 열린다. 놀라울 정도로 탐스럽고 예쁘게, 빨간 앵두색 입술처럼 남성을 매료하는 강력한 비주얼은 없을 것이다.   

처녀들이 앵두색 입술연지를 바르고 봄바람처럼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대문 밖을 나서기라도 하면 동네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이고도 남았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은 봄바람이 불면 처녀뿐 아니라 여염집 아낙들에게도 조심하라는 뜻에서 “봄바람이 품으로 기어들게 하지 마라”라고 당부했는지 모른다. 가을 타는 남자보다 봄 타는 여자가 더 무서운 법이라며 

말이다


“'꽃'의 15세기 형태는 '곶'이다,  아내나 여자를 뜻했던 '갓'과 형태가 닮았다”. 고 한다. 이를 통해 보면  옛 한국인들의 상상력은 아내나 여자를 그냥 꽃이라고 부른 거 같다.

꽃은 여성을 향한(생각해 보니, 남성을 아울러도 되겠다) 사랑의 세레나데다.  조의나 축의를 드러내는 꽃들도 있으나, 꽃의 쓰임새는 주로 사랑의 드러냄이다. 이 행성의 수많은 남자들이(때로는 여자들이) 여자들에게(때로는 남자들에게) 사랑의 표시로 꽃(다발)을 건넨다. 소박한 연애에 드는 돈의 적잖은 부분은 꽃값(해웃값 말고 꽃 사는 데 드는 돈)이다.     

현대시 중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여성을 지목해 이별을 주어진 숙명으로 받아 들이며 떠나가는 남자의 앞날의 축복을 전한다는 말도 안되는 해석을 단다. 시는 시인의 정서를 압축과 비유로 전하는 악보가 없이도 부르는 노래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꽃> 김소월 –수능특강-     

락 발라드 <진달래꽃>에서 마야라는 여가수는 김소월의 시에 생략된 스토리텔링으로 <진달래꽃>이란 노래를 부른다.   "날 떠나 행복한지 이젠 그대 아닌지 그댈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그녀 뒤에 가렸는지 사랑 그 아픔이 너무 커 눈을 뜰 수가 없어 그대 행복하길 빌어 줄께요, 내 영혼으로 빌어 줄께요"라고 부르며 남자의 변심이 남겨진 여인에게 역겨움으로 다가 온다는 직설화법으로 심정을 전한다. 이 노래의 여성 락커가 후렴구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내가 떠나 바람되어 그대를 맴돌아도 그대 그녈 사랑하겠지>"하고 부르는 가사는 거의 절규다.                                                                            김소월의 시에서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시적 화자 여성이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냐 난  죽어도 당신을 잡지 않을뿐더러 피눈물을 흘려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노래하는 부분 역시 음소거한 절규같다.

나는 얼마 전까지 학생들에게 “싫다고 떠나는 남자가 가는 길에  자신이 뿌린 꽃을 사뿐히 짓밟고 가라는 시적 화자의 태도는  자신을 버리고 가는 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전통적 여성의 귀한 품성”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러면서 그냥 ‘싫어졌다’도 아니고 ‘역겹다’고? 이 말이 나올 정도라면 그녀에 대한 사랑은 완전히 물 건너 간 게 분명한데도 보내는 그녀에게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임"을 보여주기 위해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며 보낸다니 남성 우월주의적 발상인 거 같아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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