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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 노옹의 연심

조선의 싱어송라이터-견우 노옹          

향가 <헌화가>     

철쭉은 진달래과의 꽃이다. 철쭉꽃의 꽃말은 ‘자제, ’사랑의 즐거움‘이라 한다. 꽃말과 달리

신라 노래인 향가 <헌화가>의 견우 노옹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아름다운 수로부인에게 반해서 ‘자제’하지 않은 팬심으로 꽃을 갖다 바치며, 연령을 초월한 ‘사랑의 즐거움’을 몸으로 실천한다. <헌화가>에서 수로부인의 욕망은 위험천만한 미션을 하인들에게 강요하나. 그녀가 욕망한 철쭉은 높고 서늘한 지대에 서식하는 산철쭉인 듯하다. 그녀가 따다 달라고 칭얼거린 철쭉 꽃은 험난한 절벽 틈에 자라는 꽃이다. 게다가 철쭉의 뿌리는 매우 강하고 가지와 가지 사이에 얽김이 쫌쫌하다고 한다. 진달래는 먹을 수라도 있지만 철쭉은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가 없는 개 없는 개꽃이다. 

 삼국유사에는 철쭉꽃과 관련된 수로부인의 이야기인 <헌화가>의 배경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에 이르러 점심을 먹게 되었다. 곁의 돌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를 두르고 있어 높이가 천길이나 되는 험난한 바위 위에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철딱서니 없는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 이것을 보고 하인들에게 말한다. “저 꽃을 내게 꺽어다 줄 사람이 없는가?” 그러나 바닷가 모래 사장을 수로부인을 태운 가마를 이고 죽을둥 살둥 지고 온 하인들은 수로부인과 눈이 마주칠까 외면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말한다. “송구하오나, 거기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들에겐 태수 부인의 부탁을 거절하면 안 되는 적절한 핑계가 있다. 그냥 꽃이 아닌 철쭉꽃이라 자기들은 그 꽃을 꺽어 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깟 개꽃을 꺽어 달라는 수로부인의 청을 들어주는 건 그들에겐 목숨을 거는 일인 것이다. 

 그깟 산철쭉 몇 다발을 꺾어 오는 게 왜 위험한 일인가 납득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철쭉꽃의 생태를 알면 누구나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며 공감할 것이다. 철쭉을 한자로 쓰면  척촉(躑躅)이라고 적는다. 여기서 '躑躅'은 '躑(머뭇거릴 척)'과 '躅(머뭇거릴 촉)'으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철쭉꽃은 절세의 미인처럼 너무나 아름다워 산길 나그네(山客)들의 눈길을 사로 잡지만,  독성이 강한데다 너무 험난한 절벽 위에서 자라기에 가까이서 즐기기를 머뭇거리게 된다해서 척촉(躑躅)이란 이름을 붙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철쭉은 뿌리는 절벽 바위 틈에 내리기 때문에 줄기도 질기다. 옛날에는 척촉장(躑躅杖)이라고 하여 철쭉으로 지팡이를 만들어 썼다고 하니, 얼마나 질긴 줄기인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철쭉꽃은 정원사용 전지가위가 아니면 맨 손으로 꺾는 게 번거로운 꽃이다. 게다가 발디딜 공간도 협소한 절벽 위에 매달려 힘을 주고 꽃을 꺽어 보았자 꽃잎만 흩는 일이 될 것이다. 

암소를 끌고 가던 노인은 그 지역 현지인이니 로커 플라워(flowe)인 철쭉을 꺽으러 절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노래에서 우리의 주목할 것은 수로 부인의 탁월한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노인이 목숨을 걸고 천 길 벼랑을 기어올라갔을 것이다.   <헌화가>의 견우노옹은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치면서 '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따다 드리겠다고 양해를 구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내용은 아름답고 젊은 상류층의 부인이 꽃을 갖고 싶어하는 것과 초라하고 늙은 노인이 암소를 끌고 간다는 것이 서로 대조를 이룬다. 

 향가 <헌화가>를 혹자는 노인이 기냥 '노인'이 아니라 불교의 선승인 거 같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해석에선 암소를  끌고 가던 견우 노옹이란 호칭을 들어 농경 의례에 등장하는 농신인 것 같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노인은 젊은 하인들도 오르기를 거려하는 험한 바위산을 가볍게 올라 바위 틈에 질기게 뿌리내린 철쭉꽃을 한아름 꺽어 수로부인에게 바친다.

당대 최고 미인을 위한 뜨거운 팬심은 목숨을 건 암벽타기를 가능케 한 것이다. 늙은이도 뽀빠이 아저씨처럼 괴력을 발휘하게 하는 강릉 태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의 미모가 얼마나 뛰어났을지 궁금해지는 <헌화가>다. 

견우 노옹이 수로부인의 부탁으로 꺽어 바친 철쭉꽃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구애할 때 선물하는 꽃이라 보는 <헌화가>의 해석이 좀 불편하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를 통해 그정도로 수로부인의 미모가 역대급이란 것 인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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