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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별곡의 직녀 이별 교란 작전


조선의 싱어송라이터-고려 여자 ‘직녀’     


죽어도 님을 못 보내겠다는 평양의 전문직 여성  ‘직녀’ 

고려가요 <서경별곡> 작자미상


연령 미상, 주소지 신흥 신도시 평양, 이 노래의 여인은 대동강 건너 떠나는 연인과 조만간 이별을 해야 하는 처지다. 사랑하는 님은 볼일(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관리나 장사꾼)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다는 헛소리를 하며 그녀를 달랜다. 기약없는 님의 허언을 믿고 님을 보내자니 불안하고, 무작정 기다리기엔 혼기가 꽉 찬 베짜는 여인은 자신에 대한 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없다. 

 작자 미상에 고려가요 ‘서경별곡’의 노랫말로 추론한 시적 화자인  고려 여성의 정황을  고등학교 문학 수업에선 적극적으로 이별을 거부하는 근대적 여성상이라고 지도한다. 

이 작품의 여성의 이별 대응 방식은 대개의 고전 시가 작품의 화자(여주인공)들과 다르다. 고려가요 <가시리>나 김소월의 현대시 <진달래꽃>의 화자처럼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온몸에 두르고 “잘 가세요. 부디 나를 잊지 말고 돌아 오세요.”라고 손수건을 흔들 수가 없다.  전자의 여성들은 떠나는 님을 마지못해 보내며 마음속으로 눈물을 감추는 희생적 캐릭터다. 그런데 서경에서 돈 잘 버는 직녀인 그녀는 님이 자신을 ‘괴다’, 즉 진정성있게 사랑한다는 믿음을 준다면, 잘 나가는 삼베 짜는 일자리나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신도시 평양의 재산을 급매하고라도 울며 울며 따라가겠다고 한다. 여기서 울며 울며 따라가는 이유는 포기한 것들이 아까워서일 거 같다.               

서경이 서경이 서울 이지마는

중수(重修)한 곳인 소성경(小城京:서경)을 사랑합니다만, 

임을 이별하기보다는 차라리 

길쌈하던 베를 버리고서라도

저를 사랑해 주신다면 울면서 따라가겠습니다.      

     작자 미상 <서경별곡> 

1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 줘요. 집 떠난 외로움을 달래려 나를 데리고 놀았던 게 아니라면, 우리가 사실혼 관계라는 증명서라도 만들어 주라고요.” 하는 그녀에게 남자는 고려 가요 <정석가>를 부르며 그녀를 그냥 서경에 주저 앉히려 한다. 남자는 <정석가>를 부르며 자신을 믿고 기다리라고 달달하게 그녀를 품고 믿음을 주려고 한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 년을 외따로이 살아간들

천 년을 외따로이 살아간들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고려가요 <정석가> 

6

 작자미상

  얼핏 들으면 불멸의 사랑을 노래하는 듯한 <정석가>는 사실 박살난 유리 구슬의 잔해인 가죽끈에 지나지 않는다. 깨어지고 흩어진 구슬을 주워 엮어도 목걸이는 더 이상 반짝이는 보석이 아니다. 장신구의 역할을 못하는 가죽끈을 부여 잡고, 천년을 기다린다. 이건 허언이다. 

죽어도 님을 보낼 수 없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길을 묶으려는  여성의 불같은 분노를 남자가 “천년을 외로이 살아간 들 끈(님을 향한 사랑)이야 끊어지겠냐는 설의적 표현으로 바꿔 부른들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여인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래서 그녀는 님을 보내지 않기로 한다. 배가 안 떠나면 된다. 님을 싣고 대동강을 건너게 할 배가 한 척도 뜨지 않는다면, 님을 자신 곁에 묶어 둘 수가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다음 날 대동가가에 나가 뱃사공들을 불러 모은다. 

그녀는  대동강에 님을 실어 보낼 뱃사공에게 대동강 넓은 줄 몰라 배를 띄웠냐고 악을 쓴다.                                         

대동강이 넓은 줄을 몰라서

배를 내어 놓았느냐? 사공아.

네 아내가 음탕한 짓을 하는 줄도 모르고

떠나는 배에 내 임을 태웠느냐? 사공아.

(나의 임은) 대동강 건너편 꽃을

배를 타면 꺾을 것입니다.               

 작자 미상 <서경별곡> 

3


3연에서 그녀는 뱃사공 더러 ”대동강이 넓은지 몰라서 배를 띄웠냐 이 눈치 없는 사공아, 니 아내가 음탕한 여자라고 하던데 내 잘난 님을 니 배에 태워 보내면 바람난 니 아내를 꼬실 거야 “라고 하며 악담을 퍼붓는다. 일면식도 없는 뱃사공들의 아내를 발정난 암캐처럼 음해하는 고려 여자의 처절한 몸부림은 웃긴데 슬프다.

 <서경별곡>은 풍자나 해학의 수법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인간상을 그리는 골계미가 드러나는 걸작이다.  천재지변 같은 극한 상황이 벌어져 님이 배를 못 탔으면 하는 이 여자의 안타까운 노력이 엄청 짜안하다. 그녀는 울며 울며 이별을 저지하는데 이 노래를 듣는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행동에 웃프니 미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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