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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 만두 아니어요


쌍화점은 유리세공품 가게?          

이때 ‘삿기 광대’ 즉 ‘새끼 광대’의 등장이 의문이다. 최철은 이 점을 주목하여 ‘회회 아비’ 를 ‘큰 광대, 어른 광대’ 쯤으로 보고 ‘쌍화’를 광대들이 파는 물건, ‘쌍화점’을 광대들이 물건 을 파는 가게로 해석하고 있다.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는 박덕유 

교수는

 문헌 연구와 사료를 통해 

쌍화

가 

만두

가 아님을 증명한다

박덕유 교수는 중한사전

(1989)

에 

霜花

[

솽화

, shuanghua]’

란 단어가  서리 또는 성에라고 나온다는 점과 다른 뜻으론 서리 모양의 세공

(

細工

)

으로 풀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박덕규 교수의 풀이를 전제로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 고려가요 <쌍화점>에서의 ‘쌍화’는 만두가 아니라 ‘세공품’이고, 따라서 ‘쌍화점’은 ‘세공품 가게’가 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아라비아인인 ‘회회아비’는 세공품 가게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이 작품을 읽으며 쌍화점을 만두가게로 보는 게 억지스러웠다. 만두 사러 갔다가 성추행을 당한다고 연결하며 개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겉멋에 빠진 아낙네가 장신구나 유리 그릇 사러 갔다고 아라비아 상인과 눈이 맞는다. 이 상황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쌍화’를 세공품으로, ‘쌍화점’을 세공품 가게로, ‘회회아비’를 세공품을 파는 아라비아인으 로 해석해 보면, 보다 고려가요 <쌍화점>에 대해 해석이 자연스러워 진다.

박덕유 교수는 "회회인들이 광대를 두고 만두를 팔았다기 보다는 당시 부녀자들을 상대로 악세서리의 일종인 물건을 팔았다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쌍화’가 세공품이란 증 거는 다양하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시대에 회회인과 교역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고, 이때의 교역 상품은 로마형 유리기구였다고 한다.

신라고분에서도 "서역계 상인들에 의해 전래"된 각종 유리기구들이 출토되었으며, "중국에서 는 사치품 중의 하나로 여자들의 빗장식으로 사용"되는 등 다양하게 세공품들이 이용되었음을 여러 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태종실록>에는 "회회인이 수정으로 다는 구슬을 만 들어 드리니 왕이 기뻐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 당시 "무슬림들은 이러한 뛰어난 보석 세공 기술을 바탕으로 왕과 왕실에 가공된 각종 보석을 진상하고 상당한 수준의 사회, 경제적 입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새끼 광대를 고용해서 서역인들의 세공품을 판매한 ‘쌍화점’은 분명 고려 여인들의 핫플레이스임이 분명하다. 고전시가는 옛날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노래로 전하는 서사시다. 역사를 알면 노래를 쉽게 배울 수 있고, 노래를 알면 역사를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아라비아 상인들인 ‘회회 아비’가 대규모 자본을 들여와 차린 디자인샵에 쌍 화(만두)나 유리 세공품, 악세사리나 장신구 등 다양한 여성 용품이 있었다. 이런 세태 비판적 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고려가요로 ‘쌍화점’이란 노래가 불린 것이 아닐까. 당시 고려 대중문화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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