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매화사랑 임군을 위한 충절 아니다

조선에 싱어송라이터-안민영           

연시조 <매화사> 안민영            

 시대착오적 해석으로 과소 평가된 가객이 있다. 시류가 바뀌면 사물을 대하는 감상도 달리해야 한다. 선비들의 즐겨 그리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일러 사군자라 하고, 이를 소재로 부른 노래나 글에 군자가 좋아하는 4가지 식물이니, 왕을 향한 충성과 절개라 배우고 가르쳤다. 

  연시조 <매화사(梅花詞)> 

8

수로

 유명한 안민영은 벼슬자리에 연연할 수 없는 서얼 출신 싱어송라이터다

그러니깐 그가 매화란 꽃에 실은 내밀한 정서는 

연군지정

,

이나 

,“

역군은이샷다

.”

가 아니라

자신에 매화 사랑을 노래한 연시조다

.

  안민영이 지어 부른 <매화사>는 퇴직 시니어들에 방구석 풍류로 읽는 게 적절한 듯하다. 고등학교 때 배운 매화사의 소재 매화는 눈서리도 얼우지 못하는 봄뜻, 즉 임금님을 향한 변함없는 충성심의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배웠다. 과거 시험에 뜻이 없는 싱어송라이터 안민영에게 충군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이 시조를 순수한 매화 사랑과 찬양에 노래로 읽는다. 


 매화사의 첫수는 이렇게 시작한다.     

매영(梅影)이 부드친 창(窓)예 옥인금차(玉人金釵) 비겨신져

이삼(二三) 백두옹(白髮翁)은 거문고와 노로다

이윽고 잔드러 권(勸)하랼 제 달이 한 오르더라.      

   출전 안민영 <금옥총부     


 매영(매화 그림자) 비친 창에 금비녀를 꽂고 가야금을 타는 미인은 아마도 그의 스승인 박효관의 <운애산방>에 흥을 돋우는 해어화(기녀)일 것이고, 여기서 두어 명의 노인은 매화를 완상하는 자신과 다른 매화 덕후일 것이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기녀와 절대 가객 시니어와의 거문고 콜라보와 매화에 촛불을 비춰 즐기는 꽃그림자가 연상된다. 한지에 비친 꽃그림자에 두손으로 나비도 만들고, 독수리도 띄우는 그림자극이 어울어진 음주 파티다. 가히 상류층 선비들의 고품격의 풍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연시조다. 

 게다가 금상첨화로 황혼에 보름달이 슈퍼문처럼 떠서 하늘을 다 가릴 듯한 몽환족 분위기에 감동한 안민영은 “달과 매화 니들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려고 미리 약조를 한 거니?‘라고 뜬금없이 묻는다. 매화와 달을 묶어 매월이라하고 부드럽지만 매혹적인 매화향기를 암향이라 부는다. 청향은 잔에 지고 달빛은 창가에 가득한데, 촛불에 춤추는 꽃그림자가 늙은 풍류객들의 흥을 돋군다. 

 나는 매화 향기를 맡아 본 적이 없어 그 향기를 짐작할 수 없다. 달 밝은 밤에 보는 매화를 ‘월매(月梅)’라 하고, 눈 속에 핀 하얀 매화를 일러 얼음같이 말고 깨끗한 살결과 구슬처럼 아름답다해서 ‘빙자옥질(氷姿玉質)’이라 부른다. 어두운 방 안에 그윽한 향으로 떠다니는 매화향을 일러 ‘암향부동’이라 한다. 꽃잎이 꽃을 떠나도 향기는 꽃 주위를 맴돈다.      

18세기부터 사대부가에서는 분매를 완상하는 취미가 성행했다고 한다. 혹한에 추위를 견디고 봄을 알리는 매화는 중산층 이상의 사대부들에 명품 놀이다. 선비들이 하고 많은 꽃 중에 매화를 사랑하는 것은 매화에 매(梅)는 ‘어머니가 되는 것을 알리는 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선비들이 매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함 때문이고, 매화 나무는 늙어가는 모습이 기품있고 아름다워서 우아한 풍치와 높은 절개를 떠오르게 한다고 ‘아치고절’이라 부른다. 

 모든 매화가 눈 속에 꽃을 피우고 얼어죽지는 않듯이 모든 매화가 눈 속에서 꽃을 피우진 않는다. 선배들은 어린 매화를 화분에 담아, 온돌방에 진열하고 겨울 속에 봄날을 인공으로 꾸민 매실에서 매화를 키웠다고 한다. 

 안도현 시인은 <겨울 편지>란 시에서 

흰눈을 뒤집어 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 부르르 몸을 흔드는 것을 보고 눈물겹다고 쓴다. 머지않아 꽃을 피우기 위해 무거운 눈덩이를 털어내는 모습이 짜안하다. 눈 속에 새빨갛게 피는 홍매화는 겨울이 보내는 사랑의 메신저라고 생각한 시인의 발상이 <겨울 편지>란 제목으로 전해진다. 

  매화 그림자가 비치는 창 안에서 일렁이는 촛불 아래서 매화 향기를 즐기는 나이든 가객들의 꽃놀이은 조선 시대 양반들에 소박한 풍류를 보여준다.  안민영의 연시조 <매화사>는 임금님을 향한 신하의 충성스러운 헌정사가 아니다. <매화사>는 혹한의 겨울을 견디며 살아 꽃을 피우는 매화를 엄청 사랑하는 가객옹들의 즐기는 꽃그림자 놀이를 10편의 연시조에 살짝 아주 살짝 맛배기로 보여 준거 같다.  

작가의 이전글 조선의 금수저들의 꽃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