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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우 떨어지면 사랑도 끝


조선의 싱어송라이터-이매창               

이화우                    

두루마기 뒷자락에 비처럼 흩날리던 배꽃을 기억합니다.     

 시조 <이화우 흩뿌릴 제> 계랑     

  고전 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입에 착 달라붙는 우아한 단어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칭하는 ‘정인(情人)’이란 한자어와 남편 또는 연인을 조금 낮추어 부르는 고유어 ‘이녁’같은 말이다. “이녁을 은애합니다.”이렇게 말하면 “당신을 사랑합니다.‘보다 진정성이 있게 느껴진다. ‘좋아한다’나 ‘사랑한다’와  같은 의미다. 

  오는 남정네 못 막고, 가는 정인 못 잡은 여자들이 있다. 말하는 꽃이라해서 ’해어화‘라 불리는 관청 소속 노비, 기생 또는 기녀라고 여성이다. 그녀들의 정인은 임기를 마치면 떠나야 하고 그렇게 예정된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 

 꽃비 내리는 봄날 정인과 이별한 기녀가 있다. 안 가면 안 되냐고 이녁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 거 같다고 울고 불고 매달리던 계랑을 떼어내고 떠나던 남자도 그날 울며 떠났다. 가을이 되도록 소식이 없는 전쟁터에 나간 남자를 그리며 부른 노래가 바로 ’매창‘이란 별호를 쓰던 계랑의 <이화우 흝뿌릴 때>란 시조다.

 임진왜란 당시 그녀는 전북 무안에는 시도 잘 짓고 노래도 잘 하는 관기라 사대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하는 기적에 오른 그녀의 이름은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이다. 그녀의 정인은 천민 출신의 천재 시인 촌음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이다. 유희경은 천민이었으나 효성이 지극하여 소문이 났고, 그 결과 서경덕의 제자인 남언경에 발탁되어 예학을 배우게 된다. 상례(喪禮)의 전문가가 된 그는 국상이나 사대부가의 많은 상(喪)에 초빙되었다. 예학에 밝은 유희경은 기생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부안 기생 이매창을 만나 선을 넘는다. 이 때 매창은 18세, 유희경은 46세다.

 첫눈에 반해 깊은 정을 나누고 헤어진 유희경이  매창에 대한 그리움을 '오동우(梧桐雨)'란 시로 남긴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오동나무 비 뿌릴 제 창자 끊기네.”

 여기서 ‘오동나무’는 이매창의 상징으로서 ‘거문고’를 의미한다. 어디에서든 거문고 소리만 들으면 매창이 생각나고 창자가 끊어질 듯 그리움이 사무친다는 유희경의 고백이다.  하늘이 잠시 허락은 너무 늦은 그네들의 만남을 시기한 듯, 유희경은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으로 의병이 되어 그녀의 곁을 떠난다. 


배꽃 위로 쏟아지는 봄비를 맞으며 님을 보낸 매창이나 이화우를 온 몸으로 맞으며 말 등에 올라 도포 자락으로 눈물을 가리는 중년의 남정네의 이별을 폭풍 눈물을 몰아온다. 그로부너 서너 달 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시조를 짓는다.          

이화우 흣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난 오락가락 하노매     

   -<이화우 흩뿌릴 제> 계랑—출전 <수능특강>-     

3장 6구 45자 내외에 정형시에 녹여낸 매창의 애끓는 심회를 현대 시인 조용미는 <꽃 핀 오동나무 아래> 시로 풀어낸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이녁’이란 호칭이 나온다.     

어젯밤 꿈을 꾸었어요

이녁은 술 한 병 손에 쥐고 한 손에는 매화 가지를 들고 계셨지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웃으시며 제게 다가오셨어요

---중략---     

임진년 왜구가

새까맣게 밀려오고

이듬해 봄 의병을 모아

서애 선생(유성룡)을 돕겠다며

떠나실 적,     

이녁의 두루마기 뒷자락에 비처럼 흩날리던

배꽃을 기억합니다

그 한순간이 억겁마냥 까마득하고

아련하여

간 심장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흰 배꽃이 마치 눈처럼 떨어지는 ‘이화우(梨花雨)’을 맞으며 떠난 정인에게 보내는 그녀의 시조 <이화우 흩뿌릴 제>에 유희경이 매창에게 보낸 <오동우(梧桐雨)>를 적당히 믹스한 <꽃 핀 오동나무 아래>는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를 연주하며 시심을 나누던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을 살픗히 전해준다. 

 신분의 벽이 높았던 조선시대, 비록 미천한 신분의 기생이었지만 음악과 시문을 벗 삼아 '문학적 삶'을 살다 간 여인 이매창과 유희경과의 슬픈 러브 스토리에는 ‘이화우’란 시어를 통해 비장미를 더한다.  전쟁터로 떠나는 정인을 보낸 매창이 꿈 속에서 유희경을 만난다는 가상의 스토리텔리에 클라이막스는  “이녁의 두루마기 뒷자락에 비처럼 흩날리던 배꽃을 기억합니다.”가 아닐까? 

  봄 가고 가을되어 낙엽 지는 오늘 이녁도 날 생각하나요. 묻고 싶었던 그녀는 37세를 일기로 전북 부안읍 봉덕리에 동고동락하던 거문고와 함께 잠들어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매창이 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배꽃     

  봄을 알리며 하얗게 피는 배꽃은 그 아름다움이 예로부터 많은 시와 노래로 다뤄졌다. 

가지마다 팝콘처럼 터지는 흰 배꽃은 배나무에 피는 꽃이다. 배 농사는 사람 손으로 수만 송이 배꽃에 일일이 꽃가루를 사람 손으로 묻혀서 수정을 시켜야 한다. 이렇게 짧은 수정 작업 중에 비라도 내리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저절로 지는 꽃도 슬픈데, 봄비 맞아 강제로 꽃잎을 덜군 배나무는 억장이 무너질 거 같다. 매창이 지은 시조 <이화우 흩뿌릴 제>가 더 서글픈 것은 배꽃이 수정을 하기도 전에 꽃잎을 떨궜다는 사실이다. 

 매창이 부른 <이화우 흩뿌릴 제>는 현대에 와서 가곡으로 편곡되어 동서약 악기의 콜라보인 <이화우>라는 제목의 가곡으로 리바이벌되었다. 사랑과 그리움의 언어로 수놓아진 새로운 한국가곡 앨범 <이화우, 배꽃이 떨어진다...>는 한양대에서 학사와 석사 모두 서양음악 작곡한 이원주(1979- )의 창작곡이다. 전공은 서양음악이지만 한국전통음악에 애정이 깊은 그녀는 해금으로 구성된 실내악 팀 <트리오 향(Trio Hyang)>을 만들어 동서양을 아우르는 클래식 공연을 하며 고전시가를 가곡으로 편곡해서 부르다 있다.  

  매창의 지조에 음률을 얹은 가곡 <이화우, 배꽃이 떨어진다...>는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룻등 서양악기에 해금, 아쟁등 국악기 연주까지 더해져 풍부하고 조화로운 음악으로 완성된다. 세대를 초월한 두 예인, 매창과 이원주의 만남에서 전해지는 특별한 감동의 노랫말은 45자 내외의 시조로 담아내지 못한 서글픈 이별 정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젖은 배꽃이 흩날리 제

눈물 비 되어 떨어지네

배꽃이 떨어진다 비가 되어

그대가 멀어진다

사랑에 눈이 멀어진다     

     

그리움 때문일까

가을바람에 흩어지는 잎을 보며

그대 날 생각할까

멀리 저 멀리 외로운 그대만이

꿈에 꿈엔들 보일까

비가 눈물이 되고 한숨 꽃바람 되어

내 맘에 그대가 지네

꽃비 속에서 우리 다시 만날까 꿈에     

     

젖은 배꽃은 비 되어 흩날리고

바람 속에 흩어진다

그대 꽃이 되어     

 이원주 가곡 <이화우, 배꽃이 떨어진다> 출처 수성아트피아 블로그     

 유희경은 천민이란 신분을 딛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면서 천인의 굴레를 벗어나 벼슬을 하고 양반 대열에 합류한다. 어쩌면 그에게 기녀 신분인 매창과의 인연은 자신의 과거의 아픈 기억을 마주하는 일인데다. 천민 출신 시인과 관노비 기녀의 사랑이 뒤늦게 찾아온 출세에 발목을 잡을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배꽃비를 맞으며 헤어진지 16년만에 재회는 어색하고 참담했다. 기다림에 지쳐 버린 매창의 사랑은 다시 만난 유희경 앞에서 어색한 몸짓으로 거리를 만든다. 그 뒤,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고, 3년 뒤인 어느 여름 날 매창은 거문고를 껴안고 죽었다.

  매창과 유희경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것을 나는 <이화우>라는 시어를 통해 짐작했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면 좋은데 배꽃잎을 세차게 떨구며 비가 내린다. 배꽃잎은 비바람에 흩어지고, 꽃가루를 씻어 낸 배나무에 열매가 열릴 까닭이 없다. 열매 맺지 못한, 그리고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매창의 러브 스토리는 새드 앤딩이다. 

  봄비가 내린다. 보슬보슬 햇살에 빛나는 눈부신 배꽃의 자태도 아름답지만 빗방울 품에 안은 촉촉한 배꽃의 얼굴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어디선가 거문고 눈물을 떨구며 “이녁의 두루마기 뒷자락에 비처럼 흩날리던 배꽃을 기억합니다. 잘 지내시는지요?”하고 묻는 매창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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