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싱어송라이터-정철
정철과 사미인곡의 그녀
가사 <사미인곡> 정철
범나비
<사미인곡>이나 <속미인곡>을 읽고 머리 속을 맴돌던 물음은 “정철이 정말 선조임금님을 사랑했을까?”다. 이 작품에 시적화자는 전직 선녀다. 그 여자에 빙의된 정철은 미인(아름다운 사람)인 선조를 괸다. 여기서 ‘괴다’는 영혼으로 사랑한다는 고유어다.만약 이 작품에서 선녀가 옥황상제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얼다’라고 한다면 정철과 임금의 관계는 동성애 버전으로 읽힐 수 있다. ‘얼다’는 육체적 사랑을 뜻하기 때문이다.
‘괴다’란 단어는 고려 의종 때 정서가 지은 <정과정>에도 나온다. 자신을 귀양 보낸 의종을 두고 ‘괴다’라고 노래했다. 의종은 정서의 처남이다. 이 표현에도 정계 복귀를 간절하게 바라는 신하의 피맺힌 절규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 옛말에는 사랑이란 어휘가 없다. 토박이말(순우리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다소니'라 하고 사랑은 명사로 ‘아띠“라고 한다. 문법적으로 맞는지 모르겠지만 정철은 선조를 “다소니 아띠”한 거다. 참말로 고운 우리말이다. 지금의 사랑하다는 ‘상대하여 생각하고 헤아리다’의 뜻인 사량(思量)이란 한자어가 변해 ‘사랑’이란 단어가 된 것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임금에게 버림받은 정철은 <사미인곡> 결사에 이렇게 노래한다.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깐이나마 님 생각 않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였으나, 마음에 맺혀 있고 뼈에 사무치니, 편작이 열이 오나 이 병을 고칠 수는 없겠구나. 아아, 내 병은 이 님의 탓이로구나. 차라리 내 죽어 호랑나비 되리라. 꽃나무 가지 그 가는 곳마다 앉았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기리라. 님께서는 나인줄 모르셔도, 나는 끝까지 내 님을 좇으려 하니.”
-정철 <사미인곡> 2021년 수능특강-
정철은 <사미인곡>에서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선녀의 처지를 빌어 억울하게 귀양 온 자신의 한을 노래했다. 이생은 망했으니 윤회를 하여 범나비(호랑나비)로 환생하리라...고 노래한다.
"차라리 싀어디어 범나비 되어스라"에 고유어 ‘싀어디어'는 '싀여지다'로 '죽어지다'라는 옛말이다. 정철은 선조의 아버지인 명종과 소꼽친구다. 정철의 누이는 인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다. 그러다 보니 그는 왕실 패밀리로 뼈속까지 귀족이었다 그는 명종이 죽고 선조가 왕위에 오른 뒤 선조와 파벌들의 당쟁에 휘말려 유배와 복직을 되풀이하는 파란만장을 삶을 산다.
자신을 내친 임금을 그리워하다. 죽어서라도 범나비가 되고 싶다는 정철. 그는 꽃나무 가지마다 앉았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겨 앉고 말리라고 선언한다. 정철의 절대 사랑의 모진 집착은 평생을 유배와 낙향, 복직으로 점철된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납득하기 힘들다.
정철 관련 문헌에 따르면 그가 범나비가 되겠다는 것을 죽어서도 임금의 곁에 있고 싶다는 극진한 충성심이라 풀이한다. 더구나 “님께서는 나인줄 모르셔도, 나는 끝까지 내 님을 좇으려 하니.”이 구절이 님의 배신을 전제로 하는 데도 그가 임금을 죽어서도 따르고 싶다는 해석은 어폐가 있다.
친구의 아들인 선조를 주군으로 모시며, 선조의 왕권을 위협하는 정여립의 잔당들을 친히 국문하며 피의 숙청을 담당한 그를 <선조실록>에서는 “정철은 성품이 편협하고 말이 망령되고 경망했기 때문에 원망을 자초했다”라고 부정적으로 적는다. 이와 달리 <선조수정실록>에서는 “정철은 충성스럽고 청렴하고 강직하고 절개가 있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근심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명종이 후사를 잇지 못하고 죽자 중종의 서자였던 덕흥군의 아들인 선조가 명종의 양자로 입적하여 왕이 되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던 절친인 명종의 대를 이은 선조를 몸과 맘을 다해 모신 정철이다 보니, 왕실 종친으로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왕실 종친으로 평생에 임금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버려져 님을 그리워하는 처지가 되었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사미인곡>의 서사를 보니 삭탈관직을 당하고 버려진 자기 처지에 망연자실했을 것같다. 이런 그의 심정을 <사미인곡>에 이렇게 쓴다.
하루도 열두 때 한달도 설흔 날, 저근덧 생각마라 이 시름 잊자 하니 마음의 맺혀 있어 골수의 맺혔으니 편작이 열명이 오나 이 병을 엇디 하라.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탓이로다 찰하리 싀여디어 범나비 되오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데 족족 앉아다가 향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으리라. 님이야 나인 줄 몰라도 내 님 좇으려 하노라,“
-정철 <사미인곡> 2021년 수능특강-
'사미인곡'에서 옥황상제에게 버림 받은 선녀로 설정된 정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뻘인 자신을 내치고서 간신들 무리에 둘러싸인 선조를 걱정하고 그리워한다. 그는 이 노래에서 임금에게 버림받은 이후, 누굴 위해 꽃단장을 하고 예뻐져야 하나 싶은 자괴감에 3년 내내 머리도 안 빗고, 연지분도 안 바르고 막 살고 있다고 푸념을 한다.
그러다 종국에는 죽어서 범나비로 환생해 자신을 알아 보지도 못하는 임금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자신을 버린 님의 곁에 서지도 잊지도 원망하지도 못한, 정철의 짝사랑이 서글프다. 그는 왜 이리도 모진 짝사랑을 이생에서 후생까지 이어가려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범나비’의 상징을 찾아 봤다.
조선시대 초기 고전시가의 중심축을 이루는 사대부들의 가창 가사는 임을 잃은 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설정하여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辭)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왜 그들은 벼슬자리에 현존해도 벼슬을 빼앗겨도, 혹은 우배를 가서도 왕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범나비의 짝짓기를 검색해 본 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미인곡>의 선녀가 정철이라 가정할 때, 봉건 사회에 주종관계에 길들은 정철의 선택은 주군인 선조의 여자다. 이 운명의 고리를 그는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수컷 범나비는 교미에 성공한 뒤 암컷이 다른 수컷과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안전장치를 만든다고 한다. 아래시나비 , 붉은점모시나비, 애호랑나비는 교미 후에 암컷 배 끝에 수태낭이 장착한다고 한다 이는 이기적 종족 번식 행위의 전형이다.
<범나비>로 환생하고 싶다는 그의 의사 표현은 다시 말해서 선조 임금님에게 ”난 죽으나 사나 너 하나만 바라 보게 생겨난 여자야. 그러니까 이 지긋지긋한 기다림을 멈춰줘!“ 같은 절규로 자신이 자살해서 범나비로 환생한다고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정철의 <사미인곡>은 실제로 죽어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이 노래를 빌어 선조가 다시 자신을 필요로 하기를 애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 지배체제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는 왕이고, 그 왕권에 순응할 때만이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노래에 왕의 시혜를 간곡하게 읍소한다.
정철의 신곡 <사미인곡>이 어떻게 선조 임금님 귓전에 닿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 보기로 하겠다. 가사가 노래인지라 구비전승은 기본이다.
정철의 <사미인곡은 > 당시 사대부들의 연회 자리에 술맛을 돋구는 권주가로 자주 불렸을 거고, 슬퍼서 술 푸고 기뻐도 술 푸는 음주가무 문화에 바람을 타고 이 사람 저 사람 입술에 옮아 구중궁궐 깊은 곳에 닿았을 것이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 오후, 왕에게 차를 올리는 즐기는 궁녀가 다기에 찻잎을 우리다 낙수물에 돋는 빗방울을 보고 무심결에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사미인곡>은 애절한 진양조 가락을 타고 여리여리한 궁녀의 낭창낭창한 음색에 실려 선조 임금님의 낮잠을 깨운다.
귀에 착착 감기는 서글픈 발라드를 듣던 선조 임금이 "이리 오너라' 하시고 “그 노래가 짜안하니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누가 만든 노래더냐? 하고 물었겠지. 그래서 궁녀는 "최근 궁보드 차트 1위인 정철대감마마의 <사미인곡>이라 하옵니다". 했겠다.
옳타구나 감동한 선조께서 그날 차 올리던 궁녀 성대 결절 생기도록 무한 반복 라이브를 시키며 정철의 충성심에 감동 감화하셔서 친히 편지를 쓰셨단다. "정철아 곧 부르마 쫌만 기다려라!"
지금까지의 스토리텔링은 미루어 '짐작컨데 내러티브'라고 이름짓는다면 펙트는 이 노래의 덕후들이 많아 '사미인곡' 시즌 2인 <속미인곡>이 창작된 것이다. 그리고 선조를 향한 정철의 애절한 충심이 먹혔는지. 그로부터 4년 뒤 1589년에 우의정에 발탁되어 조선왕조 최대 피의 숙청 사건이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악질 고문관으로 활약하게 된다.
차라리 싀여디어 범나비가 되었으면 그리 끔찍한 정쟁의 소용돌이에 중심에 서지 않았을 텐데.정철 생애에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구창모 <희나리>의 노랫말처럼 정철이 선조를 사랑함에 세심했기에 그의 잘못이라면 선조를 위한 신하의 전부를 준 것뿐인데 선조 26년 임진왜란 관련 업무에서 공문서 위조로 파직을 당한 후 강화도에 내려가 58세의 나이로 굶어 죽었다고 한다.
<사미인곡>은 봄부터 겨울에 이르는 변화를 축으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님 생각의 간절함과 짙은 외로움을 토로한다. 님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여인의 마음으로 나타내 자신의 충정을 과시하는 이 가사 작품의 평가는 애절하면서도 속되지 않은 간결한 노랫말로 현존하는 서정시가 중에 으뜸이다.
총맞은 거처럼
트로트 여제 백지영이 부른 <총맞은 거처럼>란 노래를 정철의 <사미인곡>과 연결해서 들으면 님에게 일방적으로 버림 받은 선녀의 슬픔이 오롯이 살아난다. 조선의 14대 국왕인 선조는 조선 최초의 서손(서자인 아들의 아들, 즉 서자 손자)출신 임금이다. 관상가 백경으로부터 '절대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얼굴'이라는 예언을 들으며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보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런 왕을 위해 살아 생전 충신의 몫을 다하고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선조 임금님의 여인으로 살고 싶다는 가여운 신하 정철.
선조는 신하의 이름으로 자신을 연모하는 그에게 자기만을 사랑하고 죽어 가라고 범나비처럼 정철의 발목을 꺾는다. 정철의 죄명은 ‘과유불급’ 즉 지나치면 안 한 것만도 못한 것,
충성을 다하다 보니 도를 넘었다 치자, 아무튼 역성혁명을 도모하던 역적 무리를 숙청한 것이 죄다. 쉽게 말하면 정철의 과잉 충성이 벼슬을 빼앗고 유배를 보내는 이유라고나 할까? 이런 선조의 이기적 행태를 감수하는 <사미인곡> 노랫말과 <총맞은 거처럼>에 노랫말이 비슷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 도입부 내레이션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그가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로 시작한다. <사미인곡>도 자신이 늙어서 님이 버렸다고 한다. 설마 늙어서 헤어지자 했을까마는...
준비없이 맞이한 죽음같은 실연에 절규하는 <총맞은 거처럼>의 여자를 보면 선조의 배신에 의해 궁궐밖으로 쫓겨 날 때 심정이 짐작된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초췌한 모습의 여자는 배가 고픈지 라면을 끓여 먹는다. 숨도 안 쉬고 그 뜨거운 면발을 폭풍 흡입하던 여자는 사레가 들었는지 켁켁 거리다, 양은 냄비 위에 라면을 왁 토해 내고 다시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꾸여 꾸역 입으로 밀어 넣는다.
"허탈하게 웃으며 하나만 묻자 했어. 우리 왜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구멍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잡아보려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거 같진 않아“
--중략--
--백지영 <총맞은 거처럼>----
이 노래에 하이라이트는 노래가 끝날 때, 마무리하는 여가수의 내러이션이다.
“7시가 되면 난 어김없이 일어난다.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한다. 바뀌는 건 없다. 이별은 그런 것이다. 아마도 이 노래의 여자는 총맞은 거 같은 실연의 순간에 아무 말도 못한 자신을 원망한다. 사랑하는 이의 배신엔 허탈하게 웃으며 하나만 묻자 한다.
도망치듯 일어서는 그녀의 남자는 그녀를 두고 문을 닫고 나간다. 이 뮤직 비디오의 압권은 그 남자가 입었으리라 짐작되는 큼직한 와이셔츠를 그녀가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동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슴이 죽을 만큼 아픈데 살 수가 있다는 게 이상하다며 절규하던 그녀는 프롤로그에서 말한다.
이별은 견딜만 하고 다들 죽을 만큼 아파도 살아간다고.
<사미인곡>에 선녀가 님을 못 보고 살라가는 게 죽을 만치 아파서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로 환생하겠다는 노랫말이 정철의 정쟁사에서 납득이 안 됐다. 그래서 이 가사를 읽는 내내 불편했는데 범나비의 짝짓기인 수태낭을 알고는 이해가 쉬웠다. 이 노래를 들은 선조도 정철의 자살 선언을 서렁운 농담으로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정철의 <사미인곡>의 그녀 역시 말로만 죽고 싶다고 했지 아마도 잘 살아 갈 거같다. 선조 임금만 사랑하다. 말년에 버림받고 굶어 죽은 정철만 바보다. 충성스런 신하란 족쇄에 스스로를 묶고 최악의 군주의 허수아비로 살다가 죽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