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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풍속화 <밀회>속에 한시


조선의 싱어송라이터--김명원            

 한시 <별리(別離)> 김명원     

별리          

 신윤복의 그림 ‘밀회’란 풍속화를 보면 그림의 왼쪽에는 기와집이 꼭 반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기와집에 이어서 담이 있는데, 흙담이 아니고 제대로 깎아서 만든 돌담 모통이에 환희 비춘 초승달이 그늘 아래 밀회를 즐기는 남녀가 그려져 있다.

 어쨌거나 초승달이 희미하게 비치는 한밤중이다. 그림 오른쪽에는 남녀가 있다. 맵시 있는 가죽신을 신은 여성은 필시 지체 있는, 부유하게 사는 집안의 여성이리라. 규방에 다소곳히 있어야 할 여인은 넓은 갓을 쓴 앳된 남자와 은밀한 만남을 진행 중이다. 

 자세히 보면 수상한 남녀의 달밤의 접속을 짐작하게 하는 글귀가 담벼락에 써 있다. 두 구절의 시귀는 조선 중기 문인 김명원의 시 '창외삼경세우시窓外三更細雨時' '양인심사양인지兩人心事兩人知'다. 그 뜻은 풀이하면 「창밖에 보슬비 내리는 한밤중,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라」 다. 실제로 김명원의 시가 담벼락에 또렷히 써졌다고 보기엔 흘려 쓴 붓글씨가 너무나 선명하다. 

 혜원 신윤복이 담벼락에 갈겨 쓴 시구절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부추긴다.  나머지 두 구절은 담벼락에 쓰여있지 않은데 그걸 글 대신 그림으로 표현한 거 같다.  생략된 나머지 2구는 연결해 보면  '환정미흡천장효歡情未洽天將曉/경파라삼문후기更把羅衫問後期' 즉 '나눈 정 미흡한데 날 먼저 새려 하니, 나삼자락 부여잡고 다음 약속 묻네'다. 혜원 신윤복은 당시 유행하던 한시를 빌어다 <월하정인>의 그림 속 남녀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에 글과 그림을 엮어 보여 준 것이다. 요즘 말로 그림과 글로 그림  풍속 그림책이다. 


깊은 밤 창 밖에는 가는 비 내리고        (窓外三更細雨時  창외삼경세우시)

두 사람 마음을 두 사람이 알겠지만       ( 兩人心事兩人知 양인심사양인지)

새벽에 옷깃 부여잡아 뒷날을 기약하네.   (歡情未洽天將曉  환정미흡천장효) 

비단 옷깃 부여잡고 아쉬운 뒷날 기약하네 (更把羅衫問後期  갱파나삼문후기)


- 別離(별리) / 주은 김명원- <대동풍아> 김교헌, 우문관 1908, 31쪽     

‘別離’란 제목을 해석하면 ‘이별을 하며’다. 주은(酒隱) 김명원(金命元:1534~1602)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팔도도원수를 지내고 좌의정에 지낸 인물이라고 한다. 명종18년 <헌부에서 예빈시 정 김경원과 홍문관 박사 김명원의 파직을 

청하다

>

라는

 기록의 의하면 김명원이 술과 여자를 좋아하여 검속함이 없었다는 지적을 받은 것으로 보아 그가 연애에 대해 개방적이라 문제가 되었던 거 같다

문헌에 따르면 

김명원은 창녀 옥복과 술을 취하도록 마시면서 그 잘못을 깨닫지 못했으니 선비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짓입니다

.”

라고 기록되었다 한다

.

 <월하정인>이란 그림에서 두 남녀가 훤한 초승달 아래서 겁 없이 밀회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에는 엄격히 지켰던 통금제도 때문이리라. 당시에는 초경(밤 8시)에 인경종을 33번 치면 성문이 닫히고 시내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하니, 인적은 완전히 끊긴 도성 으슥한 골목길은 오히려 안전지대가 아니었을까?          

 아모르 파티     

 현대의 노랫말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쓴다. 몰래한 사랑이 더 설레고, 불륜은 더 짠하다.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을 현대의 감정으로 이해하면 속 터져다.

 깊은 밤 창가에 가는 비는 내리는데, 마음을 두고 떠나야 하는 남정네의 비단 옷깃 부여잡고 아쉬운 뒷날을 기약하는 여자. 그  애틋한 이별을 노래한 김명원의 別離(별리)에 사랑이란 이름표를 부치기건 너무 구차하다.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인 운명애( 運命愛)를 강조한다.

 2013년 환갑을 바라보는 원로 여가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노래 가사에서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이라고 노래한다. 그녀의 쏘아 버린 화살처럼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눈이 부시면서도 행복했다고 노래한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 파티> 김연자     

 김명원의 <별리>란 한시에서 “두 사람 마음을 두 사람이 알겠지만”이라고 쓰며 등돌리며 이별하는 내용과 비교하면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인 <월화정인> 속 남녀가 훨씬 신세대적이다. 

 시는 노래를 품고 노래는 삶을 품는다.  1958년생  개띠인 원로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는 다시 20대 아이들 <방탄소년단>의 노래 <에피파니>의 노랫말로 완성된다. 이 노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으로, 팬데믹 등 어려운 시기에 전 세계 팬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주고 있다.     

I'm the one I should love in this world

빛나는 나를 소중한 내 영혼을

이제야 깨달아 so I love me

좀 부족해도 너무 아름다운 걸

I'm the one I should love

(흔들리고 두려워도 앞으로 걸어가)

(폭풍 속에 숨겨뒀던 진짜 너와 만나)     

-진(방탄소년단) - Epiphany(에피파니)-     

방탄소년단의 이 노랫말은  “조금은 뭉툭하고 부족할지 모르고, 수줍은 광채 따윈 안 보일지 몰라도 이대로의 내가 곧 나”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지금껏 살아온 내 팔과 다리 심장 영혼을 사랑하고 싶다고 하면서 좀 부족해도 너무 아름다운 자신에게 “I'm the one I should love”라는 셀프 위로를 한다. 끊임없는 경쟁이 굴레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샘플링이 될 한류의 대표적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청년들은 세상이 정한 완벽한 틀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코로나 팬데믹의 악재 속에 불안해하는 전세계 팬들에게 노래로 전한다. 

당신들의 인생을 사랑하라고 이제부터 “아모르 파티”하자고...

신윤복이 자신의 그림 <월하정인>에 주석처럼 옮겨 적은 당시 유행가 두 구절의 창작자 김명원은 눈물은 사랑의 거품이니 다가올 사랑 혹은 이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사랑의 과정을 지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과목인 이별을 피하지 말고 연애하라고 말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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