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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 <착빙행>


 조선의 싱어송라이터--김창협          

한시  <착빙행> 김창협     

얼음 창고               

 여고 시절 후암동에 위치한 수도여고에 다녔다. 그 때 내 짝이 사는 동네인 서빙고가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쓰는 귀한 얼음을 보관하기 위해  지하에 만든 대형 냉장고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서빙고란 지명은 관청 이름으로 나라에서 쓰는 얼음의 채취와 보관, 출납을 맡아 보던 곳이라고 했다. 얼음을 먹는 것에도 갑과 을이 분명했다. 서빙고의 얼음은 왕실 종친, 높은 벼슬아치,그리고 사대부에게 나랏님이 베푸는 은총이다. 복날이면 왕은 빙표(憑票)라는 얼음 쿠폰을 맘에 차는 신하에게 하사했다. 그러다 보니 빙표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특권 중에 특권이다. 

 내 기억에도 얼음은 부잣집 주방에서나 볼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냉장고가 있는 집이 드물었다. 푹푹 찌는 삼복 더위에 수박 화채를 만들어 먹는다고 얼음을 사러간 기억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그때는 큰 길가로 나가면 나무로 만든 가건물에 “어름 팝니다”하고 써 있는 얼음집이 동네마다 있었다. 주로 연탄을 파는 곳에서 여름에는 얼음을 판 거 같다. 나는 얼음 사오라는 심부름을 좋아했다.  50원이나 백원어치 얼음을 사러 가, 차례를 기다라다 보면 나는 남극에 펭귄이 된 거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저씨의 톱질에 날리는 빙수같은 얼음조각을 주어 한입 물면서 즐기는 뒤골이 쩡하고 울리는 고통과 어금니로 아그작 아그작 씹던 얼음가루는 세상에서 제일 맛난 빙수였다. 내가 얼마나 얼음을 좋아했냐 하면

 중학교 때 냉장고를 산 날, 얼음에 밥을 말아 먹다가 배탈이 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아저씨가 자를 잰 듯 정확하게 톱으로 썰어준 네모란 얼음덩이를 빨간 나일론 줄로 묶어 주면 한달음에 달려오면 엄마는 엄청 큰 다라이에 수저로 듬성듬성 뜬 수박 조각에 쿨피스와 우유섞어 놓고 기다리셨다. 가는 바늘을 얼음에 꽂고 망치로 탁탁 칠 때마다. 얼음은 쩍쩍 갈라지고 자잘하게 부서져 여름 한철 별미 수박 화채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얼음가게 아저씨는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큼직한 얼음덩이를 가져 오나 엄청 궁금했는데, 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에 배운 조선 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김창협이 지은 한시 <착빙행(鑿氷行)>을 읽고 이 또한 해소됐다.

 ‘얼음캐는 노래’라고도 부르는 이 한시는 극한직업의 현장을 보여준다. 늦겨울  한강에 얼음이 꽁꽁 얼면 백성들은 맨발에 짚신을 신고 얼음을 캤다고 한다. 혹시 터럭이라도 날려 붙을까봐 얇은 무명옷 조까리를 걸치고 밤에는 얼음을 캐고, 낮에는 석빙고로 옮기다. 보냉이 잘 되게 지어진 8칸의 얼음 창고에 여름내내 양반들의 더위를 식힐 얼음을 차곡차곡 쌓는다. 칸칸이 쌓인 얼음의 키가 높아질수록  짧은 옷 맨발로 한강 위에서 얼음을 뜨던 백성들의 손과발은 동상으로 문드러져 드문 드문 끊어져 나간다.

 김창협의 <착빙행>의 한시 앞부분에는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 캐는 백성의 모습을, 그리고 뒷부분에는 여름철 그 얼음을 즐기는 양반과 정작 얼음을 제 손으로 캐고도 더위에 죽어가는 백성을 대비시킨다. 비극의 극대화다. 한겨울 얼음을 캐고 옮기는 ‘장빙역(藏氷役)’은 부역 중 최악이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를 피해 도망치는 이가 속출해 ‘장빙과부’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중략----

 정강이가 드러난 짧은 옷, 발에는 짚신도 없는데 (短衣至骭足無屝 단의지한족무비)

매서운 강바람에 손가락은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江上嚴風欲墮指 강상엄풍욕타지)

화려한 집에선 유월이라 뜨겁고 찌는 날에        (高堂六月盛炎蒸 고당육월성염증)

미인의 흰 손에 맑은 얼음 전해주고              (美人素手傳淸氷 미인소수전청빙)   

귀한 칼로 치고 부숴 온 좌석에 나눠주니         (鸞刀擊碎四座徧 난도격쇄사좌편)   

대낮 허공 속엔 흰 싸락눈 흩날린다.              (空裏白日流素霰 공리백일류소산)   

집안 가득 채워 앉아 더운 줄 모르고 즐기는 이들  (滿堂歡樂不知暑 만당환락부지서) 

얼음 깨는 이 괴로움 그 누가 말하겠나.           (誰言鑿氷此勞苦 수언착빙차로고) 

그대 보지 못했는가. 길가에 더위 먹어 죽은 백성들 (君不見道傍暍死民 군불견도방갈사민)

대부분 이 강에서 얼음 깨던 사람들이었다는 걸.    (多是江中鑿氷人 다시강중착빙인 )            

김창협 1651-1708, 鑿氷行 착빙행, 얼음 깨는 노래, <농암집> 권 1     

 <착빙행>은 한시다 악보가 없이 현대시처럼 낭송하는 시가다.  중국에서 전해진 이 시가는 ‘한시(漢詩)’라고 한다.  시(poem)를 악보가 없이도 부르는 노래라고 하는 거처럼 한시 역시 압운에 맞춰 운율을 타고 읽는 노래다. 그래서 한시를 노래로 부른다고 하지 않고 읇조린다고 한다. 

 까막눈인 백성들이 김창협의 <착빙행>을 입에 올려 읇조려 봤을 리 없다. 김창협이란 싱어송라이터는 이 노래를 통해, “지난 겨울 한강에서 얼음을 캐던 백성이 삼복 더위에 쪄 죽었는데 니들은 얼음이 목구멍에 넘어가냐?” 하고 되묻는다. 탐관오리의 수탈과 줏대없는 왕의 폭정에 시달려 죽어간 가여운 백성들의 리얼 스토리를 작가가 옛 노래에 한 자락 얹어 놓은 이 한시를 읽으며 마음 한켠이 싸하다. 

 아리따운 연인의 난도질에 오뉴월 허공에 흰 싸락눈처럼 흩날리는 얼음 조각이란 김창협의 <착빙행> 한 구절을 읽고 나는 정말 조선은 비루한 양반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민초의 난          

 김창협의 <착빙행>을 읽다 보면 <추노>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있다. 이 드라마는 노비를 사람임에도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인식하던 조선시대의 신분 제도를 비판한다. 현대적 감성과 옛것을 버무린 퓨전 사극 추노는 달아난 노비를 잡는 추포꾼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언년이가 노비로 있는 대감님 댁에 놀러온 양반들이 한겨울 혹한의 날씨에 털옷을 걸치고 시냇가에서 술판을 벌이는 장면이다. 기생을 끼고 낮술을 마시는 그들의 안주 중 별미는 노비들이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잡은 민물고기다. 

 꽁꽁 언 손을 녹이지도 못하고 여종들은 나무 꼬챙이에 꿔 생선을 구워 안주상에 올린다. 눈까지 펄펄 내리는 바람 찬 냇가에 누더기같은 무명처고리만 걸친 채, 그네들은 연이어 얼음장을 헤치고 민물고기를 잡으러 첨벙거리고 다녔다. 

 양반들의 여름 한철 풍미를 위해 한강 위에서 맨발로 얼음을 캐던 백성들이나, 고된 노역에 목숨을 걸고 달아나다 노비 사냥꾼에게 잡혀 행액을 당하는 도망 노비들에게 21세기의 래퍼 mc  스나이퍼는 <민초의 난>라는 ‘추노’ 드라마 ost로 드라마 속 노비들을 위로하고 달랜다. 민초여 자라라 더 높이 날아라서 이승에서 못 이룬 꿈 저승길에 올리고 흙이 되어 다시 피는 꽃이 되라고      

--중략--               

철새도 둥지가 있을진대 짐승에게 굴 또한 있을 텐데

연좌의 굴레 낙인과 족쇄 난 홀로 집 없이 떠도는 개

구멍 난 하늘엔 비가 또 새 굳은 내 신세는 두발 묶인 채

사냥터에 풀어 놓은 산양과 같애 버려진 주검은 거름이 돼     

민초여 자라라 더 높이 날아라

이승에서 못 이룬 꿈 저승 길에 올라라

흙이 되어 다시 피는 꽃이 되거라     

--중략--     

사람답게 살고파 인간답게 살고파

한 자가 남짓한 지팡이를 유산으로 남긴 자는 나 뿐이오

사람답게 살고파 인간답게 살고파

빌어먹던 쌀 한 줌은 나의 넋이요 

빌려쓰던 몸뚱이는 내가 아니오     

쫓고 쫓기는 게 우리 인생 개만도 못한 것이 노비의 생

사는 것이 전쟁 민초의 희생 내 삶은 날개가 부러진 새

쫓고 쫓기는 게 우리 인생 개만도 못한 것이 노비의 생

사는 것이 전쟁 민초의 희생 내 삶은 날개가 부러진 새     

오 오오오오오 오     

--민초의 난—MC 스나이퍼          

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던 드라마 속 노비들의 난은 악랄한 정승이 심어 놓은 노비 코스프레 악당에 의해 실패한다. 사람답게 살고파 인간답게 살고파 쟁기 들고 호미들은 노비들의 혁명은 역사 속 어느 문헌에도 기록되지 않고, 삭풍 눈보라에 얼음을 캐던 백성들이 더위 먹어 시체로 뒹구는 담장 너머엔 살얼음 동동 뜬 수정과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는 양반네들의 한낮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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