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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킹라이프 5
'고교 얄개' 여고 얄개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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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아들 꾸러기로 자란 나는 어릴 때 어머님이 <얄개>라고 불렀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나의 어린 시절을 그린 자서전의 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나 때문에 그렇게도 애를 태우시고 속을 태우시던 어머님도 이제 세상을 떠난지 오래됩니다. 비 내리는 무주 공산, 바람 부는 수풀 속에 영원히 잠드신 어머님을 위로하는 뜻에서 어머님 영전에 뉘우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얄개전>은 나의 참회의 구실을 하리라 믿습니다.     
----중략---조흔파 씀ㅡㅡㅡㅡㅡㅡ    
조흔파 작가는 위와 같이 책 서문에 쓰고 있다.     
"나 두수란 얄개의 본명이다. kk중학교의 천 여명 학생 중에 두수를 모르는 학생은 거의 없을 지경이니, kk중학교 교표를 달고 다니는 가짜 학생을 잡아낼 양이면, 그들이 가진 신분 증명서를 조사하기보다는 얄개를 아냐고 물어보면 진짜 학생인지 아닌지 알 만큼 유명한 말썽꾸러기다."  





  

작가는 이와 같이 '고교 얄개' 집필 의도를 밝힌다. 1954년 작가 조흔파가 <학원>이란 학생 잡지에 연재해 공전에 히트를 친 소설 '얄개전'은  1956년 석래명감독이 '고교 얄개'란 영화로 제작해  당시 26만이 넘는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기죽지 않는 아이, 부잣집 아들로 품행이 바르지는 않지만 그늘없고 낙천적인 민폐 중딩의 나두수와 흡사한 여고 얄개를 s여고 시절에 친구로 만났다. 

생각이란 게 도대체 있기나 한지 의아스런 고등학교 2학년 5반 미자는 중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중2 때 두발 자유화가 시행되자, 미장원 시다인 자기 언니의 미용 가위를 가져와 같은 반 친구들의 머리를 커트 스타일로 자라 준다고 설레발을 치던 4차원 여학생.

 고등학생인 사춘 오빠와 소개팅을 시켜 준다는 미끼에 교실에 걸린 커텐을 온몸에 두르고  미용 실습 1호가 나였으니, 어찌 그날의 참담함을 잊을 수 있겠는가?

아침에 엄마한테 받은 커트 머리 값은 미자와 점심 시간에 학교 담장 개구멍으로 기어나가 즉석 떡볶이에 떡라면 곱빼기로 날린 나는 출가를 앞둔 비구니처럼 시청각실에 감금된 상태로 삼단같은 갈래머리를 끊었다. 

가위가 녹이 슬어 거의 썰다시피 진행된 내 헤어스타일은 앞머리는 삐뚤삐뚤 일자에 귀를 파서 뒷머리는 대각선으로 비스듬하니 그냥 탈바가지 스타일이 되었다. 

하교 후 엄마한테 프라스틱 바가지로 대굴박이 깨지도록 무지 맞고 <황후미용실> 아주머니이 긴급 보수로 얼추 모양새만 갖추었다.    

얄개 나두수의 악행이 선생님 별명 짓기, 복도에 양초질하기, 분필 서랍에 개구리 넣기 등 악의 없는 골탕 먹이기가 당하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을 통해 대리 만족의 유괘함을 독자들에게 줬다면, 미자의 여고 얄개짓은 친구들을 난처하게 하는 돌발 행동의 행진곡이다.    

고3 9월 교장 선생님 월요일 방송 조회 시간에 

“믿기지 않겠지만, 지난 밤 체육실 입구 감나무에 교양있고 준법정신 투철한 본교 학생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감 서리를 한 흔적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아직 익지도 않은 감을 7개나 따서 한 입씩 물고 집어 던진 참혹한 광경을 본 교직원 일동은 오늘 안에 감을 따 씹어 뱉은 학생이 자발적으로 교장실에 찾아와 용서를 구하기를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

교장 선생님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끝을 잇지 못하고 숨을 고르느라 훈화(?, 협박) 말씀이 끊긴 사이 늘 그렇듯 삐빅거리는 스피커 소음이 정적과 어우러져 공포를 자아 냈다.

s여고 교정의 자랑거리는 100년 됐다는 은행나무와 감나무 십여 그루다. 역대 교장선생님들이 장학사가 오면 늘 내세우는 s여고 학생들의 정직한 학교 생활의 표상인 탐스럽게 익은 감들이 홍시가 되도록 단 한 개의 감도 스스로 낙화한 감들을 제외하고 학생들의 손을 안 타고 있다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도독년도 없는 본교 도덕성을 강조했는데, 겁대가리 없이 그 감을 따 먹고 뱉은 학생은 바로 여고 얄개 정미자란 걸 쉬는 시간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가운데 긴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고 토악질을 하던 내 짝 미자의 토사물을 확인하고 나는 알았다. 

“참고로 본교의 감나무에 감을 따 먹은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졸업년도에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삼수를 하고도 대학을 못 간 선배들의 이름을 년도 별로 줄줄 읽어 주던, 1교실 개시 전 교장선생님의 메시지를 담임선생님을 통해 통보받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미자.

다행히 교장선생님의 저주와 달리 그해 미자는 재수를 하지 않고 고교 졸업 후, 사대문 안에 있는 4년제 대학 영문과에 간신히 합격을 했다.    

손가락이 굽어서 미안한 여고 얄개 정미자    

초등학교 5학년 때 마로니인형이란 쭉쭉빵빵 금발머리 인형을 미자가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품 마로니인형은 프라스틱 뼈대에 고무다리로 접히기도 하고 휘어지는 지금으로 치면 3D 방식의 고퀼리티 인형이라면, 당시 미자가 소장한 마로니인형은 철사를 넣어 접으면 납작하게 짜브러지는 가품 마로니인형이다.

어느 날 철사가 부러져 셀프 수선을 감행한 미자가 커터칼로 살짝, 구멍을 내 철사를 이어 붙이려다 오른손 둘째 손가락인 검지 첫 번째 마디를 베고 말았다. 당시에 이런 종류의 자상은 병원에 가지 않고, 대충 집에서 빨간 약 바르고 말았는데, 상처가 깊어 힘줄까지 베인 줄도 모리고

미자 아버지는 응급처치로 하드 막대기로 검지를 받치고 붕대를 꽁꽁 동여맸다고 한다. 성나게 하지 말라고 담배가루를 듬뿍 뿌리고.....

 일주일만에 상처는 아물었는데, 아뿔싸 검지 한마디가 접힌 채로 상처가 붙어 미자의 검지 첫마디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 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공대말'을 찾아라 고전선생의 번짝 대머리    

고2 고전문학 시간 고전 선생님은 40대 초반에 대머리로 열 살은 더 들어 보이는데, 키가 155센티 정도 작고 마르고, 뒤태를 보면 초등학교 6학년처럼 young해 보였다. 영화 ‘양철북’의 주인공과 비슷한 외모에 말도 무지 빨라, 선생님 수업 중에 조는 학생들이 많았다. 반 아이들이 붙인 별명은 ‘공포의 대머리’인데, 수업 중에 질문을 해서 대답을 못하는 학생들을 들고 다니던 회초리로 머리를 딱딱 연거푸 때려서 붙인 앙심성 별명이다.    

영어샘이 출장을 가서 자습을 하고 있던 어느 날 3층 교실에서 창밖을 내려다 보던 친구가

“반짝 와우 진짜 뻔쩍이네 공대가.”하고 말하자 친구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 가니 가을날 정오의 햇빛이 고전선생님의 대머리 정중앙에 꽂히며, 정말로 쟁하니 햇빛이 반사되 눈부시게 번들거렸다.

왁자지껄 웃는 소리에 우리반 창가쪽을 올려다 보단 고전선생님과 몇몇 친구들이 눈이 마주쳤다. “망했다, 눈 마주쳤어 공대랑” 여기서 공대는 공포의 대머리의 줄임말이자 고전선생님의 별명을 말한다.    

공대다! 소리를 들은 듯 선생님이 교무실로 향하던 발길을 돌리고 우리반으로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올라 오셨다.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열심히 자습을 하는 척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교실 앞 문이 드르륵 열리고 선생님이 거친 숨을 몰아 쉬고, “누구....누구야! 아까 창문에 몰려 있던 미친 년들!”

우리들은 세상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선생님은 순간 “반장 나와, 너가 말해 어떤 년이 공대라고 지껄였는지.”

그 때 반장이 바로 여고 얄개 정미자, 미자는 겁에 질려 일어나 “저는 못 봤어요..”라고 했는데, 은근 터프해진 고전선생님은 얼굴은 물론이고 머리터럭 한올 안 보이는 정수리까지 얼굴인지 벌겋게 달아 올라 들고 있던 출석부로 미자의 턱을 날렸다 헝클어진 머리를 들고 훌쩍이던 미자, 우리의 반장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아까 고전선생님의 별명을 큰소리로 외치던 은영이를 가리켰는데, 선생님의 분노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자습 시간 내내 영어 단어장에 발음 기호를 옮겨 쓰며, 열공 중이던 성록이한테 향하고....

앉은 채로 머리채를 휘어잡고 벽에 찧고 뺨을 때리고 의자가 뒤로 넘어가 쓰러진 성록이의 배를 발로 차는 고전선생님의 등뒤에 서서 비명을 지르며 울던 미자가 선생님의 팔에 매달려 소리를 지렀다. “아닙니다, 얘가 아니고 재라요!”

정신을 차린 선생님이 미자를 보자 미자가 구부러진 검지 손가락을 왼손 검지로 받쳐 일자로 세워 은영이를 가리켰다. 힘주어 겨냥한 미자의 검지 손가락 끝에 겁에 질린 은영이가 흐느껴 울고, 그날 은영이는 엄청 맞고 도서실에 남아 일주일 동안 반성문을 썼다.    

귀 얇고 샤머니즘에 약한 우리 반 반장 정미자, 고3 9월 교내엔 그해 대학에 제대로 들어 가려면 은반지를 껴야 재수가 좋다는 근거 없는 괴담이 돌았다. 가는 실버반지를 사서 끼고 다니는 친구들이 허벌나게 부러웠던 미자가, 어느 날 일을 냈다. 두툼한 은반지 아닌 백금 반지를 끼고 학교에 온 것이다. 

자세히 보니 보라색 자수정 알반지였다. 아마도 엄마의 알반지를 훔쳐 끼고 반대로 돌려 겉으로 보기엔 은반지를 낀 거 같은 대리 효과를 누리고 싶었던 듯.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니, 은반지건 백금 반지건, 보기에 실버 링이니, 마음은 솔찬히 든든한 거처럼 보였는데, 4교시 체육 시간에 체력장 연습을 하려고 철봉에 매달린 미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돌려 낀 알반지를 깜박 잊고 철봉에 매달린 것이다. 그 순간 보라색 자수정 알이 철봉 아래 모래밭에 떨어지고, 입 안에 모래가 씹히도록 함께 찾아 주었는데, 종례 시간까지도 새끼 손톱 크기의 보석을 찾지 못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해지는 운동장 철봉 모래밭에 삭사기 삭삭 소리가 애잔하게 퍼져 나갔다. 미자가 체육관 보수 공사하다 버리고 간 네모란 철사 체로 모래밭의 모래를 삽으로 퍼서 체질을 하는 소리다. 가는 모래를 거르려고 만든 체로 모래밭의 모래를 한 삽 한 삽 떠서 엄마의 잃어버린 보석(?)을 찾는 정미자.

내 기억엔 교문을 닫아야 한다는 수위 아저씨에게 등이 떠밀려 나올 때까지 자수정 알은 찾지 못했고, 그 해 들어 가장 고운 모래밭에서 넓이 뛰기 연습을 하며 미자가 자주 훌쩍이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얄개전> 서문에 조흔파 작가는 이렇게 쓴다.     

 “젊은 얄개 여러분! 저 푸르른 하늘에 찬란하게 뜬 무지개를 바라 보셔요. 가슴 뛰는 젊음의 희망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삶을 달려 가세요.”    

 라고 서문에 쓴 조흔파 작가는 1955년 3월호에 소설의 마지막회 맨 끝에 <빠이 빠이 얄개 끝>이라는 글을 쓰며, 연재 소설을 마친다. 젊은 얄개들은 여고나 남고 어디서나 한두 명쯤은 있었으리라. 

내 여고 시절의 한 컷을 장식한 <얄개전>과 영화 <고교 얄개>는 악의없는 장난으로 당한 어른이나 선생님들의 내면의 악의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

여고 시절 엉뚱한 행동으로 우리들에게 웃음과 페이소스를 안겨준 정미자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5월의 멋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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