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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킹라이프 4    
내 인생의 책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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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시간 후 옥상    

고1 때 헤르만 헤세의소설을 '유리알 유희", 를 빼고 다 읽었다. 고1 초기에 나는 '수레바퀴 아래서'의 멘탈 약한 한스와 닮았고, 고2 들어서 나는 '데미안'의 주인공 데미안이고 싶은 

자존감 만땅의 여고생 '히키코모리'였다.

 담임 선생님이나 학과 선생님들도 어느 정도 성적도 유지하면서 글 잘 쓰고 책 많이 읽는 나에게 간섭을 하진 않았다. 특히 미술 선생님인 엄청 부자집 딸이라는 담임은 한달에 한번씩 글짓기 쓰기 교내 대회에 나가 상을 타서 우리 반의 면을 세워주는 나를 이뻐하셨다. 어떤 때는 책을 사 주시고 독후감을 써 오라고 하기도 했다. 어차피 글짓기 숙제를 반 아이들 모두에게 써 오라해도 상 탈 깜냥이 못되니 나에게 몰아 주기를 하셨다.

 평생을 강의를 하고 살아온 내가 그 당시 별명이 ‘말없는 아이’로 칩거한 걸 보면, 학교는 나에게 끔찍히 곤혹스럽고 부조리한 공간이었던 거같다.

 나는 왼쪽 담장 마주하고 코카콜라 공장에 뒤쪽에 삼립빵 공장을 거느린 강서여중을 졸업하고, 그닥 잘 살지도, 학구열이 남다르지도 않은 여중 동창 8명과 함께 남영동에 위치한 s여고에 입학하는 행운을 거머쥔다. 이름하여 도심지 전 명문여고에 입학한 우리는 공동학군 세대.

 강남 8학군을 노리고 위장 전입을 하다, 청문회에서 자식들 신상 털리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치인도 아닌데, 암튼 우리들은 위장 전입 안하고도 일제 시대부터 상위권 대학 진학을 허벌나게 많이 한 s여고에 무혈 입성했다.

후암동, 갈월동, 남영동, 청파동 이름만 들어도 최소 5평 정원 비스무레한 마당을 가진 여고 동창들 사이에서 공영주택에 무허가 판자집에 사는 8명의 구로 공단 가까이에서 온 우리 친구들은 이방인이다. 

구로동 하면 공순이, 공돌이만 떠올리는 그녀들에게 우리들이 친구라고 다가가기엔 뭔지 석연치 않은 거리감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같은 동네에서 자란 그들은 우리를 공동학군으로 던져진 짱돌처럼 대했다.    

오늘도 미자가 울면서 우리 반으로 왔다.

게다가 중학교 동창들을 향한 텃세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불평등한 시선과 닮아 있었다.

 샤프나 지우개를 허락도 없이 가져 가서 돌려 주지 않는 같은 반 일진들 땜에 속상하다는 미자는 명색이 반장인데도 실세는 아빠가 외교관이라는 같은 반 성숙이에 밀리는 상황이다.

미자는 나에게 크로머같은 악당 친구들에게 당하는 ‘싱클레어’였고, 난 미자에겐 우리 학교 일진 대빵이자 투포환 선수 oo의 절친으로 아무도 못 건드리는 안전지대였다.

 “어떤 년이 내 친구를!” 큰 소리 빵 치고, 미자네 반에 가서 내 친구를 괴롭히는 성숙이랑, 현정이 나무 책상 위에 하얀 백묵으로 이렇게 썼다.    

“나 미자 친구 2학년 6반 38번 이미경이야, 니 앞으로 내 친구 한번만 더 괴롭히면 내 가만 안둔다. 각오해!”

“너 어쩌려고?”

걱정스레 묻는 미자에게 나만 믿으라고 달래며 고맙다고 미자가 사준 즉석떡복기 곱빼기로 배 따땃하게 채우고 집에 오니, 저녁 9시였다. 교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다가 순간 뭔가 싸아하니

정체불명의 공포가 느껴졌다.

집에 오는 길에 미자가 “걔들 지난번 금성극장 앞에서 모 공고 남학생들하고 집단으로 싸웠는데, 우리반 성숙이가 면도칼 씹어서 상대방 남학생 코잔등 거덜냈다고 하더라, 그냥 카더라 통신이긴 하지만 니 안 무섭니?”

순간 떡복기 속에 쫄면이 탱탱하게 또아리를 틀고 위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저금통을 털어 택시를 타고 남영동에 있는 s여고로 갔다. 잠긴 쇠창살 교문을 타고 올라가 준비해 간 랜턴으로 4층 미자네 교실 창을 열고 들어가 물걸레로 성숙이와 현정이의 책상 위의 백묵 글씨를 열심히 빡빡 소리나게 닦았다.    

다음 날 교실 앞에서 초조하게 발을 구르며 서성이는 미자를 만났다. 내가 지난 밤에 완벽하게 지운 백묵 글씨가 여전히 또렷하게 도전장처럼 살아 있는 책상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까지 난 꿈이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낡은 나무 책상의 커터칼 자국과 나무 옹이 구멍 사이로 침투한 하안 분필 가루 흔적이 지난밤의 나를 비웃듯 또렷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각오해!’란 세 글자와 38번 이미경은 더욱 두드러지게 보였다.

5교시 청소 시간이 시작되자 성숙이 패거리 6명이 우리 반으로 와서 두 명이 나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끼고 옥상으로 끌고 갔다. 교실 뒷문을 지나는데, 나는 문고리를 잡고 버티고 싶었다. 그때, 복도 귀퉁이에서 울고 있는 미자가 보였다.

옥상 위에 먼저 올라 와 있던 성숙이가 오른쪽 다리로 내 무릎 안쪽을 탁 치자 나는 멕아리없이 풀썩 주저 앉혀졌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무릎을 꿇고 죄인처럼 앉게 됐다.

“니들이 깡패야! 뭐하자는 거야 지금,”

나름 떨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근데 성숙이가 침을 탁하고 내 얼굴에 뱉었고, 걸쭉한 가래침이 이마에서 콧잔등으로 흘러내렸다. 순간 난 완전 돌은 거처럼 벌떡 일어나 “이런 쌍x이 더럽게 침을!‘하며 벌떡 일어나 성숙이 머리채를 잡으려는데, 성숙이 옆에 선 현정이의 발길질에 붕하고(진짜 날았다) 날아 푸시시 바닥에서 밀리며 한 바퀴 돌다, 쿵하니 떨어졌다.

다시 일어나 성숙이 다리를 잡고 깨물었다. 살이 패이도록 죽을 힘을 다해, 성숙이 친구 중에 한명이 뒤쪽에서 내 머리채를 잡으려는 순간 ‘쿵’ 소리가 나더니 초록색 철문으로 된 옥상 비상구가 열리고 나의 소올메이트 우리 학교 쌈짱이자 투포환 전국고교 체전 은메달  몸무게 혜숙이가 나타났다.    

내가 보는 앞에서 성숙이와 현정이 그리고 이름이 기억 안나는 4명의 나쁜 년들이 뒷짐을 하고 서서 쇠공을 던지느라 굳은 살이 박인 혜숙이의 큰 손으로 싸대기를 연거푸 맞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왼쪽으로 한벙 오른쪽으로 한번 일정한 간격에 맞춰 타악기 연주하듯 성숙이을 포함 패거리의 뺨대기를 혜숙이가 쉬지 않고 때렸다.

지켜 보는 나도 살짝 겁이 날 만큼 자기 친구를 건드린 성숙이 패거리를 향한 혜숙이의 분노는 쉬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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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그가 나직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눈으로 그의 말을 아아 듣고 있다는 표시를 했다. 그가 다시 동정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꼬마!”
그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의 입이 이제 내 입의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나직이 그가 게속 이야기했다. 
“프란츠 크로머 아직도 기억해?”
나는 그에게 눈을 깜박여 보였다. 미소를 지을 수도 있었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크로머에게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진 못해. 그럴 때면 넌 너 자신 안으로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 수 있을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략----



   

 나의 데미안 혜숙이는 그날 사건으로 1주일 동안 정학을 먹고 그해 전국체전에 참가 자격을 잃게 된 사실을 졸업하고 10년이 지나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내 객기로 인해 혜숙이를 곤란하게 했다는 생각에 오래도록 마음이 불편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다 보면 이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맺힌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난 스스로 싱클레어이길 버렸다. 데미안으로 살아가는 삶이 외롭고 낯설었지만, 혜숙이처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아껴주는 누군가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나의 소올메이트 혜숙이를 언젠가 만난다면.....그냥 혹시라도 만날 수 있다면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다. 그리웠다고....    

청소 시간 후 옥상 사건 이후, 미자는 더 이상 우리 반에 찾아 와 울지 않았고, 성숙이 패거리는 나를 피해 다녔다. 미자는 내가 옥상에 끌려 가자 대성 통곡을 하며 혜숙이를 찾아 다니다, 체육실 창고에서 끽연 중이던 혜숙이를 만났다고 한다.

 돗대는 아버지도 안 준다는데, 마지막 한 대 맛나게 피우다 선생님한테 들킨 줄 알고 가래침 타악 뱉어 밟아버린 한 개피 담배에 대한 아쉬움이 그날 성숙이 패거리의 싸대기의 독기의 근원이라며 키득키득 웃던 나의 수호천사 혜숙이는 고3 어느 날 자퇴를 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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