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북킹라이프 6    유년의 스크래치
소설 '홍당무'

어린 시절 도둑질을 한 경험은 일부 아이들 사이에선 부끄럽고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고 한다.국어 시간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일화는 남의 물건을 훔친 아이에게 강력한 처벌을 하지 않으면 미래를 망친다는 교훈을 준다.

나는 어린 시절 바늘을 훔쳤다. 하지만 소를 훔치진 않았고 매우 도덕적인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마도 완전 범죄로 끝난 유년의 절도 행각을 나 말고는 누구도 모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누군가는 나의 일탈을 알고도 묵인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묻어 둔 기억으로 봉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절친 H의 아버지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설마 우리 딸 친구가 그랬을 리가 없다고 믿어 버린, 아니면 어린 시절 한때의 일탈이라고 지켜 본 배려가 있었던 건 아닐지.

난 고마운 친구 아버지를 떠올리며,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어두운 유년의 스크래치를 품고 살아갈까 두려워 아이가 군것질을 재미를 들일 시기에 싱크대 서랍에 동전들을 모아 놓고, 언제든 아이가 가져다 쓸 수 있게 예비해 두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정직하게 손버릇이 나쁘지 않은 아이로 자랄 수 있었고, 난 아이의 도덕성을 단 한순간도 저울질해 본 일이 없었던 거 같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도둑질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거 같다.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 집에 모여 김장을 하던 날, 돼지고기 수육을 삶고 겉저리를 무쳐 달디단 김장속에 돌돌 말아 만찬을 즐긴 후, 아줌마들은 돌아갔다. 

 이상하게 김장하는 날은 추웠던 거 같다. 황새기젓국 달인 냄새를 날린다고 마루 문을 활짝 열고 김장을 하는 걸 구경하던 나는 큼직한 꽃무늬가 그려진 캐시미어 이불이 덮인 아랫목에 발을 넣어 녹였다. 

온몸이 노골노골 녹아나는 온기에 잠이 스르르 와 발을 뻗고 누우려는데, 무언가 말랑한 게 발에 닿았다.

샛빨간 레자로 만든 싸구려 동전 지갑, 엄마 꺼는 분명 아니니 그날 온 아줌마 중에 한 분이 두고 간 거 같았다. 십원짜리 동전과 백원짜리 백동전이 가득 차 있고, 천원짜리 십여 장이 돌돌 말려 반으로 접혀 들어 간 지갑은 배부른 오재미처럼 딴딴했다.

순간 뭔 생각인지 난 그 지갑을 문갑 옆 장판 아래 묻어 두었다. 

저녁 밥 짓기 전 지갑의 주인인 미숙이 아줌마가 두 번 왔다 가고, 손전등을 들고 아빠가 마당 구석구석 찾았지만, 지갑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습한 곰팡내 나는 비닐 장판을 들춰 빨간 동전 지갑에서 십원짜리 동전부터 야곰야곰 꺼내 만화방에 가기 시작했다. 쫀드기도 사먹고, 떡복기도 사 먹고.

그렇게 주웠다가 훔친 지갑의 돈을 5달 가까이 다 쓰도록 나의 절도 행각은 들키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불편하던 나의 감정은 무디어 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동네도 가깝고, 친구 엄마가 화장품 방문 판매로 부업을 하기에 학교가 끝난 후 나는 늘 그 친구네 집에 가서 숙제도 하고 놀다가, 공군 중령인 친구 아빠가 퇴근하시면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또렷히 떠오르는 연한 카키색 공군 잠바. 친구의 아빠가 우리가 노는 방에 옷걸이로 단정하게 잠바를 걸어 놓고 발을 닦으러 가시며 나는 그 잠바 주머니에서 50원 혹은 십원짜리 동전을 몇 개 슬그머니 꺼내 양말 속에 숨겼다.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잔돈 푼을 훔칠 정도로 가난하지 않았고, 원하면 엄마에게 푼돈을 받았는데.

그 돈을 가지고 만화방에 가서 만화를 봤다. 일일 연속극처럼 1권 ...6권, 이렇게 기다리다 보는 만화는 요즘 아이들이 게임 중독으로 엄마 몰래 pc방을 가는 것처럼 강력한 유혹이자 일탈이었던 거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은 쥘 르나르의  ‘홍당무’에서 얼떨결에 도둑질을 하는 홍당무 이야기가 나온다.

홍당무가 은화 하나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서랍에서 훔치는 부분이다. 그 부분에서 홍당무는 그의 대부가 준 은화 하나를 잃어버렸다. 르픽부인은 그것을 다시 찾으라고 하고 홍당무는 그것을 정원에서 찾았지만 은화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장롱 안에서 은화 하나를 훔친 뒤 르픽 부인에게 가서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은화를 찾았다고 그때  르피크 부인은 은화를 홍당무의 양복저고리에서 찾아 가지고 있던 은화를 내민다. 

두 개의 은화. 홍당무가 한 짓을 짐작한 르픽 부인은 장롱 안을 살펴봐야겠다고 위협을 하고양심에 찔린 홍당무가 르피크 부인의 앞으로 뛰어가 뺨을 내민다. 그리고 싸늘하게 웃으며

르픽 부인은 심한 거짓말을 한 홍당무의 뺨을 세게 때렸다.    

~~~~~~~~~~~~~~~~~~
쥘 르나르의 ‘홍당무’는 189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사춘기 소년의 일상을 재미있는 삽화와 함께스케치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으로서, 작가의 유년시절을 소재로 삼은 일종의성장소설이다.     
르피크가(家)의 막내아들인 주인공은 붉은 머리칼에 얼굴은 온통 주근깨 투성이인탓에 '홍당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형과 누나에게 따돌림당하고 쌀쌀맞은엄마에게 온갖 구박을 당하며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이와 같은 홍당무의 어려움을아버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 때문에홍당무는 가출을 시도하기도 하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상황을극복하며 가족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이 작품은 성장기 소년이 겪는 일을 간결한 문체로 유머러스하게 묘사했다. 특히자신을 '홍당무'라고 부르는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밝은 웃음으로처리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평범한 가정의 일상을 통해 '어린이 학대'라는 주제를 짤막한 단편들 속에 자연스럽게 그려낸 작품으로평가받는다. 1900년에는 이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홍당무 (두산백과)    
~~~~~~~~~    




르픽부인이 홍당무가 잃어버린 동전을 손에 쥐고 시험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홍당무를 궁지로 몰아 은화를 훔치세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실수가 도둑질로 연결되는 은화 사건을  읽으며 르픽주인의 어른스헙지 않은 계책이 소름끼치게 싫었다.    

어린 시절 난 홍당무같은 아이였던 거 같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았던 기억이 없다. 잔머리가 뛰어났고, 매사에 성실하진 않았던 거 같다. 학교 국어 숙제로 낱말뜻 찾아 쓰고 짧은 글짓기 20개를 공책에 적어 오는 숙제가 있었는데, 매일 H의 집에 놀러 가면 친구가 성실하게 적은 국어 공책을 베껴 단어 몇 개 바꿔 써서 숙제를 겨우 겨우 해갔다. 방학 숙제로 내준 매일 매일 일기 쓰기도 방학 내내 빈둥거리다가 H가 하루도 밀리지 않고 쓴 일기에 날씨를 찾아 옮기고 30일이 넘는 겨울 방학 일기를 하루만에 다 썼다. 그때부터 나의 글짓기 실력은 소설 짓기에 가까울 정도의 엄청난 스토리텔링 능력이 돋보였던 거 같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난 단 한번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일이 없다. 친구 아버지가 나의 행동에 대해 지적을 하고, 엄마에게 일렀다면, 만화방에 드나들기 위해 친구 아버지의 주머니를 턴 나는 도둑년으로 낙인 찍혀 오래도록 고통받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H를 다시 만난다면, 혹시라도 친구 아버님이 살아계신다면, 무릎을 끓고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감사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모른 척해 주셨기에 내 부끄러움은 더 컸고 평생 동안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반성하고 살아 왔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북킹라이프 2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