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끝내고 첫 번째 근무 날이다. 다행히 일주일 동안 날아온 메신저보다 처리할 일은 많지 않았다. 한데 갑자기 번외로 처리할 일이 생겼다. 그것도 당장 내일이라니….. 하기 싫은데 싫다고 대놓고 불평하기엔 내 연차가 부끄러워 그냥 말없이 할까 하다가는 배정한 직원한테 굳. 이. 물어봤다. 왜 내 순번이 되었냐고. 이래저래 설명을 하지만 내가 납득하기엔 충분하지가 않다. 그래 그렇다고 내가 안 하겠다고 작정하고 덤빈 건 아니었다. 그냥 휴가 끝내고 둘째 날부터 하기가 싫었다는 게지…..
그냥 포기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해버리지 하고 마음먹었는데, 회사 후배가 화장실에서 일을 바꿔줄 수 없냐고 묻는다. 나보다 살짝 더 어렵고 귀찮은 일을……… 어린아이를 키우는 후배, 하나 슬쩍 ‘어…. 그거 힘든데….’ 하고 말았다. 끝에 ‘미안해’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자리 돌아와 본래 업무를 하다 보니 문뜩 떠오른다. 그까짓 거 뭐 힘들다고 저 힘들어하는 후배 부탁하나 못 들어주나 싶어서….. 다시 전화를 해본다.
‘내가 내일 오전에 약속이 있었는데, 일정 조율하고 너와 바꿔 줄게…..’ 했으나, 이미 늦었다.
‘해결할 방법 찾아 놨어요. 괜찮아요’ 하는데, 그 친구의 마음이 어쨌건 간에, 어째…. 내 마음이 무겁다. 그렇게 말하는데 강하게 해 준다고 말도 못 했다.
예전에 ‘지붕 뚫고 하이킥’이란 시트콤이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그 제목만큼은 어느 작품의 제목보다 훌륭하다고 느낀다. 어쩜 그리도 내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지…. 그래도, 한동안 그런 일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내 마음이 허해진 건지, 노파심인지, 좁아진 건지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한다. 퇴근해서 5시간이 지났는데도. 아까 거절했던 그 상황이 몹시 후회되어 자꾸 떠올리다 못해 이렇게 글을 쓴다.
‘너는 나의 봄’ 대사 중에 ‘후회도 정신병인가?’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난 항상 후회하니까 후회도 하지만, 걱정도 많이 하는 나는 정신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해왔던 터이다. 근데 거기서 정신과 의사는 말한다. ‘후회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오히려 건강한 쪽에 가깝다고 보기는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건강한 거라고 위안을 삼아 보려고 한다.
나이가 들면 마음이 넓어져야 하는데, 나는 그 반대가 되는 거 같아. 오늘 같은 날이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저녁 먹을 때, 우울해하는 나를 보며 아들이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엄마가 점점 더 소심해져서'라고 했더니 둘째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엄마가 모든일을 다하려고 하지 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욕심이 많았나 보다. 항상 친절하고, 일 잘하고, 착하고, 말 잘하고. 그 무엇보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이런 욕심 덕에 점점 더 지붕까지 뚫지는 못해도. 이불을 걷어차고. 혼자 괴성을 질러대는 횟수가 잦아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