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대 자산가들을 분석해 보면,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한 부류는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대박 난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자신에게 투자를 해서 가치를 높인 경우라는 것이다. 그들과 달리 많은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은 소비만 하며 산다고 한다.
100억대 자산가들 얘기를 할 때는 귀에 딱히 들어오지 않았는데, 대다수 사람들이 소비를 한다는 말에, 박수를 치고 말았다. '그래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많이 해서 그들과 달리 100억대 자산가가 못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주 어릴 적, 수도권 외곽부 아파트에서 전세로 2년 정도만 살아보고, 나머지는 주로 연립에서 살았다. 심지어, 다세대 방 2칸짜리 반지하에서 6 식구가 살기도 했으니 부자는 아니었다. 양가 집에서 한 푼의 도움 없이 결혼하고 집 장만해 사느라, 남들처럼 번듯한 메이커 있는 옷을 사 입지 않고, 시집올 때 산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전자레인지는 그대로 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소비습관으로 인해 그나마 이런 집에서 사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계절에 한 두벌 옷을 사긴 한다, 남들처럼 정상 매장에서 사기보다는 주로, 백화점의 가판대를 눈여겨보다 이거다 싶은 것을 사 온다. 한때 인터넷으로 싼 맛에 옷을 사 보기는 했으나, 사서 반품을 하거나, 사놓고 입지 않은 옷이 생기다 보니, 바로 폰에서 눈을 뗐다. 갑갑증이 있어 백화점에 잘 가지 않지만, 정 필요할 때는 필요한 옷만 사고 나오는데 채 30분이 안 걸린다. 주요 동선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가판대의 할인 품목을 눈으로 보고 사다 보니, 쇼핑 실패율이 낮아진다. 어제도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터틀넥 티를 사 왔는데, 얼추 나의 체형을 알고, 취향이 확실하니, 남자 옷이어도 주저 않고 구입했다. 그렇게 또 30분 안에 해결했다.
유독, 나의 옷 사는데 인색한 편이다. 머릿속에 적절한 가격대를 정해놓고, 그 예산 안의 옷을 구매한다. 가격이 생각해둔 것 이상이면 디자인이 좋은 옷이어도 구매 욕구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학교 이후부터부모님께서 옷을 사주신 기억이 거의 없고, 한정된 예산에서 옷을 구매한 지 30년 정도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식으로 고정되지 않았나 싶다. 나에게 옷은 적정한 금액에 그 역할을 수행하며, 색상과 디자인이 무난한 것이면 된다. 체형도 크게 바뀌지 않으니 내가 입어서 날씬하게 보이는 옷인지 아닌지 판단도 쉬워 거의 같은 옷을 구매한다. 그렇다 보니 입을 만큼 입고, 버리면 그때 사면 된다. 그렇게 구매가 단조로워진다.
옷도 그렇고, 가전제품도 마찬가지이다. 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적은 예산에 맞추다 보니, 가전제품을 새 거로 구입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냉장고 두 개와 전자레인지는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다. 모든 물건들이 우리 집에서 수명을 다해야 나갈 수 있다.
이런 습관들이 쌓이다 보니, 다소 색이 바랜 쟁반, 흠이 있는 컵이나접시, 손잡이가 헐렁이는 냄비 등이 부엌에 있다. 남들이 오면 좀 궁색해 보일 수 있으나, 그럴 때는 다른 그릇들을 꺼내면 된다. 정말 부엌살림에 욕심이 없긴 하다. 그래도 맛있는 요리 해서 먹다 보면 그런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우리만 좋으면 그만... 오늘도 어김없이 살짝 부족한 부엌살림들로 밥을 먹는다. 그래도 먹는 것은 아끼지 않는다. 잘 먹어야 아이들이 키도 크고 건강해지니 먹는 것만큼은 제대로 좋은 것을 먹이려고 노력한다. 부엌용기들의 디자인보다, 아이들의 영양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습관들이 쌓여 돈이 모인다. 어느 누구는 티끌모아 티끌 아니냐 반문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은 못돼도, 티끌모아 동산은 된다. 재벌집이 아니고서야 태산을 바라는 것은 너무 무리이지 않나 싶다. 욕심 없이 사는 것도 어느덧 나에게 익숙해진 태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무엇을 더 샀다 해도, 별로 부럽지가 않다. 명품백은 있지도 않고, 로봇청소기나 세탁건조기가 없어도 사는 이유다. 물건이란 없으면 없는 데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없는 대신 몸을 움직이는 부지런함이 더 요구되긴 하지만, 게을러지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어느 날 물건을 정리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쓰지도 않고 버리는 것을 내가 왜 이리 사 모았을까....... 그런 물건들로 집을 좁게 쓰고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는 아니지만, 그렇게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딱히 남들보다 물건이 없지만 부럽거나, 아쉽지 않은 이유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고 '지. 지. 리. 궁. 상.'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런 습관들을 굳이 고치고 싶지 않다. 앞으로 10여 년 후면 자연히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고, 수입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내가 현재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그것에 의존하여 편히 살아서는 돈도 모으지 못할 뿐 아니라, 연금의 적은 돈으로 유지조차 힘들 테니까 말이다.
난 퇴직 후에 철저하게 놀 계획이다. 없는 집에서 부모한테 한 푼도 받지 않고 결혼해, 집 사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남들처럼 남편 벌어오는 돈으로 살림하는 형편도 못되어, 늙어서 까지 일하는데 더 이상 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퇴직 후부터 65세 연금 개시일까지 놀아도 되는 돈을 적금해야 하고, 그 후로는 연금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적은 돈으로 사는 방법을 고수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런 소비습관으로 노후를 준비한다.
사는 게 그리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만은 아니다. 단, 욕심을 좀 줄이고, 좀 더 부지런히 살면 된다. 그렇게 물건은 없어도 되는 삶이 익숙해지면, 노후가 그리 두렵고 걱정되는 일만은 아니다. 난, 퇴직 후의 삶을 기대한다. 얼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놀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웬만한 물건이 없이 잘 살고, 잘 먹고, 때때로 적은 돈으로 여행도 다니며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