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슬슬 발동걸린 남편. 결국 모종판을 구하지 못하고 시기를 맞춘다며 달걀판에다 꽃씨를 심었다. 저 모양 그대로 집안에서 2주간 방치된 상태로 있는다. 꽃이야 나도 좋아하지만… 그 과정이라는 것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이쁘지도 않은 것이 거실 창문 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를 떡하니 차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편은 꽃을 많이 좋아한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마당에 먹을것을 심지만 남편은 마당에 꽃 가득히 있는 모습이 그렇게 좋단다.
나는 농학과를 나왔지만 농사는 나와 맞지 않는다. 상추를 키워도 희안하게 벌레가 생기고, 방울토마토라고 사온 모종은 열리라는 토마토는 안생기고 그냥 숲이 되어 잘라 버리기도 했다. 오래전에는 엄마가 오이 모종을 사와서 심으셨다. 오이 모종은 줄기가 타고 올라갈 줄이 필요한데, 오이는 보이지도 않고 그 줄만 거미줄처럼 오랜기간 있었다. 그게 또 보기 싫었던 나는 이래저래 깔끔히 포기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움직였다.
가까운 꽃시장에서 꽃 포트를 여러가지 사왔던 것이다. 그러고는 끝!그 포트를 심고 뒷마무리까지 내가 했다. 남편의 말인즉, 그 이쁜 꽃을 본인이 심었다 잘못될까봐 무서워서 못했다나 뭐라나. 그 포트를 심으면서 한계절만 볼것을 아깝게 돈주고 사와서 노동력까지 더해야한다며 엄청 투덜댔더니, 그 다음해부터 남편이 직접 모종판에 씨앗을 심어 옮기기 까지 했다. 게다가 그 씨를 받아서는 그 다음해에 또 가꾼다. 깔끔히 농사를 포기한 나는 그냥 지켜보고 사진만 찍었다. 남편은 도와주지도 않고 사진만 찍어 SNS 프로필 사진에 생색은 다 낸다며 비난을 했고,ㅡ 그 해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봄만 되면 모종판 구할 상점을 찾아다닌다.
메란포디움 씨를 심은 달걀판
우리집 마당의 멜란포디움
회사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그거 어떻게 만드는거야? 어제 먹었거든, 평가 해주라고 했지?” 며칠 전 준 베이컨을 드디어 먹었다고 연락이 왔다. 남편이 기다리던 평가를 듣더니,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여기저기 인심쓰는것도 좋아하고, 남이 맛있다고 하면 더 좋아한다. 한번 하면 5~6kg 삼겹살을 넓은 판으로 구입한다. 정육점을 오가며 한두번만 가도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다. 갈때마다 듣는 소리는 “식당하세요?” 이다. 하긴 어느 누가 그렇게 살까 싶다.
냉동 삼겹살을 사와서 냉장실에서 3일 해동 한다. 해동 후 갖은 재료를 넣고 10일동안 냉장실에 보관한다. 날 좋은날 그릴에 넣고 직접 불에 닿지 않게 셋팅 후 4시간을 훈연 한다. 하루정도 냉장실에 보관 후 육절기로 썬다. 진공팩으로 포장한 후 냉동고에 넣는다. 총 2주간을 난 지켜 본다. 그렇게 만든 베이컨을 종종 인심쓰듯 지인들에게 주기도 한다. 남편은 그것을 더 좋아하는 듯 하다.
처음 집들이 할때 요령이 없어 그릴에 삼겹살만 주구장창 3개월 먹다보니 지겨워서, 바베큐도 하고, 닭다리도 구워먹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어디선가 베이컨 레시피를 보고 와서는 해보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햄과 베이컨에는 나쁜거 잔뜩 들어가잖아, 해놓으면 애들도 좋아할거고…"
그러나, 5~6kg 삼겹살, 2주간의 작업시간, 가뜩이나 작은 냉장고. 난 허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끈질긴 설득 끝에 시작을 했는데, 처음 할때는 양념한 생고기 포장을 대충해서 냉장고에 냄새가 진동해 그 이후로 고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나의 불만 불평으로 포기할만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하나하나 자기 살림들을 늘려갔다. 갖은 노력끝에 이젠 당당히 김치냉장고 한켠을 획득하고는 베이컨이 떨어질때마다 공장을 가동한다. 공장을 가동 하더니 이제 좀 한가해진 나를 두고만 보지 않았다. 포장할때 비닐을 열어 줘야하는 나의 수고까지 더해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해주고 있는 마누라 속은 모르고 역시 온갖 생색을 내며 포장한다. 그럴때는 정말 레고 조립하는 아들들 처럼 넘 행복해 한다. 그 와중에 난 베이컨 구울 때 나는 냄새와(난 조만간 비건이 될지도 모른다. ^^) 프라이팬에서 엄청 튀는 기름을 생각한다. 남들 보기에는 같은 공간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두사람 분위기가 참 묘하다 할지 모르지만 남편은 전혀 모른다. (이젠 알겠지. ^^)
난 성격이 급한 편이다. 뭐든지 빠른것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굵고 짧게 끝나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 밥을 할때도 웬만해서는 30분이상 걸리는 요리는 잘 안한다. 그만큼 시간을 엄청 따진다. 그와는 반대인 남편은 너무 느긋하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투정하는 나를 가볍게 무시하고 본인 하는것에 집중한다.
우리집은 커피를 내려먹는다. 지금에야 보편적이지만 15년 전에는 흔하지 않더랬다. 그것도 초록색 생두를 사서, 상한 생두를 골라내고, 그것을 직접 볶아서, 갈아서, 내려먹는 사람은 정말 흔하지 않았다.
큰아들이 미숙아로 태어나 3개월 넘게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퇴원하고 집에 온지 얼마 안되었을때였다. 가뜩이나 미숙아인지라, 항균으로 키우고 있었다. 남편이 어디선가 말을 듣고 권한다.
“원두를 집에서 볶아서 먹으면 그렇게 싸고 맛있데, 너 커피 좋아하잖아. (주저리 주저리)”
그렇게 사서 커피를 볶은 첫날. 난 정말 울고 싶었다. 집에 가득한 연기. 그것도 모자라 원두의 껍질이 재가 되어 날라 다니는 그 상황이라니….. 그 당시 우리집에 화재 경보기가 없어서 망정이지 딱 화재 경보기가 울릴수 있는 상황이였다. 거기에 누워있는 우리 아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갑갑하다. 그래도 참 남편은 꿋꿋했다. 너무 꿋꿋하다 못해 재가 날리는 데도 집 청소하고 난 다음, 원두를 볶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다가 좁디좁은 베란다로 쫓겨 났고, 현재는 마당에서 볶는다. 이제는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적어지니 좋다. 그렇게 베란다로 갔어도 재가 날라다니고, 연기가 들어오는 것은 예사였으니, 아마도 계속 서로에게 좋지 않은 말이 오고 갔을게다. 그렇게 마당이 생겨 많은 시간 우리한테 평화가 생겼다.
그렇게 10여년을 커피를 볶아서 내려먹다보니 나름 맛있다. 예전 아침 출근시간, 아이들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하려고 나 혼자 동분서주 하며 10가지 정도의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사이, 남편은 원두를 갈아서, 내리는 일에만 집중했다. 새삼 그때 말없이 잘 벋혀준 내가 대견스러울 뿐이다. 남편은 모른다. 이런 마누라 덕에 자기가 바리스타가 될수 있었다는 것을.
통돌이에 생두를 넣어 볶아서 원두가 된다
이쯤되면 남편이 얼핏 자기 취미생활을 즐기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인다. 허나, 치명적인 한가지가 있다. 남편은 흡연자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하루에 한갑은 좀 못미치게 피는것 같다. 마당이 있으니 문만 열고 나가면 아무곳이나 가능하다. 아파트라면 위 아랫층 신경쓰며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건물 멀리 떨어진곳을 찾고 해야할텐데. 이건 쉬워도 너무 쉽다. 그렇다고 마누라가 금연하라고 잔소리하는 스타일도 아니니(난 잔소리 하면 내 자신이 우울해 지니까 웬만해선 안하고 싶다. ) 맘껏 즐긴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잎담배를 피우시겠다고 하더니, 한참을 잎으로 된 담배가루를 종이에 말아서 피웠다. 그게 식상해 졌는지 최근에는 파이프를 사셨다. 그것도 4개나, 흠…..
그런 남편한테 말을 했다. “참 복도 많다. 마누라가 금연하라고 잔소리를 해, 아파트라 장소를 가려가며 담배를 펴….. 마당 덕은 자기가 혼자 다 보내, 흡연하는 남자들 중에 제일 행복하겠어!”
남편은 이렇게 마당에서 많은 일을 한다. 추위를 엄청 싫어해서 겨울이면 꼼짝 안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규칙적으로 하면서 추위를 이겨낸다. 가만 보고 있으면 삐쩍 말라서 힘도 없게 생겼구만, 한번 하기 시작하면 최소 10년이다. 나처럼 딱히 취미라고 없는 사람한테는 그냥 신기할 따름이다. 어쩜 저리 하고싶은거 다 하고 살아도 나처럼 전혀 조급하지 않다. 참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그러니까 같이 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