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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울타리 Apr 15. 2021

단독주택 10년(봄) - 목재 외벽 오일스테인 칠하기

헌 집이 새 집 됐다

어디 여행 갈 때를 제외하고는 가장 일찍 일어난 주말 아침. 식구들을 깨워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주며, 입맛 없다는 아들들한테 먹기를 강요했다. 한번 다 칠하기 전에는 점심밥 먹을 수 없으니 억지로라도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야 부려먹을 수 있게 되어 나름 설레기도 했다. 과연 잘할까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한두 번 할 것도 아니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질러 보기로 한 것이다.

보통 2~3년에 한 번 오일스테인을 칠하는데, 애초에 작업하려고 했던 날은 지난 주였다. 주말에만 연속 2주 비가 오다 보니 당초 예상하는 날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그야말로 작업하기에는 끝내주는 날씨였다. 목, 금, 토 날씨가 좋아야 했으니, 한 달 전부터 일기예보를 매일매일 주시하면서, 일정을 잡았다. 공들여 잡은 날이었다.

칠하기 위해서 사전 작업이 필요해 남편과 나는 목요일 연가를 냈다. 예전 같으면 바로 오일스테인을 칠했을 텐데 10년쯤 되다 보니 여기저기 칠이 벗겨지거나, 곰팡이 등이 생겨 부식되는 곳이 생겨났다. 그 정도가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과 동쪽이 특히 심해 칠했던 부분 전체를 벗겨내어 새로운 상태에서 칠을 해야만 했다.
오일스테인을 칠하기만 했지 벗겨낸 적이 없었던 터라 당연히 업체에 의뢰하려고 했었다. 한데 막상 우리가 원하는 작업을 하는 업체를 찾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던 차에 남편이 인터넷에서 아주 좋은 제품을 봤는데, 그 방법이라면 우리도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했다. 같이 관련 글을 봤다. 작업이 쉬워 굳이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 용액을 발라두면 오일스테인을 녹여, 고압살수기를 뿌리면 쉽게 지워진다고 했다. 마침 그 용액을 바른 뒤 살수기를 뿌리니, 오일스테인이 녹아 물과 섞여 황토색 물로 나오면서 칠이 지워지는 동영상도 봤다. 많은 글을 확인한 후에 우리는 넉넉히 두 통을 구입했다. 안 그래도 오일 스테인 칠한 면이 거칠어져서 일일이 사포질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던 차에 그냥 약만 바르면 스르르 녹는다는 것이 있다니,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했다. 고압살수기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는데, 대여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하루 대여비가 6만 원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냥 사는 게 낫겠다 싶어 고압살수기에 릴선까지 구입했다. 그 어느 때보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오일스테인 칠을 위해 필요한 오일스테인은 기본이고, 붓, 롤러 붓, 장갑, 커버링테이프, 페인트트레이  미리미리 사두었다.

그렇게 철저히 준비를 하고, 그 용액을 1대 1 비율로 섞어서 칠했다. 칠할 때까지 좋았다. 근데 날이 너무 좋아서였을까 금방 말라 버렸다. 좀 미심쩍기는 해도 잘 지워지라고 열심히 여러 번 발랐다. 그렇게 20분쯤 지나 남편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고압살수기로 물을 뿌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맑은 물만 흘러내렸다. 분명 오일스테인이 물에 녹아 황토색 물이 나와야 했는데 말이다. 점점 나는 할 말을 잃어 갔다.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남편은 고압살수기를 연신 뿌려댔었다.
그때는 미처 우리 둘이 눈이 안 좋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담벼락 위에 있는 곳부터 하다 보니 나는 안경을 쓰지 않아 거리가 있어 못 봤고, 남편은 안경을 쓰고 물을 뿌려 댔으니 안경에 물방울이 맺혀 보지 못했다. 고압살수기가 말 그대로 고압으로 나무를 깎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기 전에는 그 용액의 도움을 받아 오일스테인이 벗겨지는 줄로만 알았다. 용액으로 녹이는 것이 아니라 그 물의 압력으로 벗겨내는 것이었다.
나무가 파이고, 거칠어지기까지 했다. 그것을 동쪽면이 다 끝나고, 남쪽을 할 때 코앞에서 내가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꼭 아들들이 아플 때처럼 아팠다고 하면 과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정말 그렇게 아팠다.
광고는 광고 일뿐 절대 과대광고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을 또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때부터 기분이 안 좋았으나, 과감히 서쪽과 북쪽은 포기하기로 했다. 한 줄 한 줄 물을 한없이 뿌려대 가며 엄청 시간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포기하지 않으면 해가 떨어질 때까지 끝을 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일을 해도, 일을 한 보람 없이 우리 둘의 노동력, 그렇게 날린 돈과 수도세 마저 아까운 하루였다.

용액의 효과는 보지못하고 고압살수기로 표면을 벗겨낸 모습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요일과 토요일 날씨가 참 좋았다. 금요일은 고압 살수기로 뿌린 물이 마르게 놔두는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안 했지만 벗겨진 상태가 속상해 계속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날씨가 좋아 그냥저냥 참을만했다. 칠은 그래도 우리가 했었던 것이니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인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했다.

토요일 아침. 밥 먹은 후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마당으로 나갔다. 나의 동생이 어김없이 와 주었다. 일당 100인 몫을 하는 나의 동생이다. 우리 식구만 했으면 처참히 벗겨진 우리 집 벽에, 우왕 좌왕 하는 아이들과 한없이 느긋한 남편으로 더 우울했을지도 모를 작업에 동생이 왔다는 것은 나에게 참 큰 힘이 되어 줬다.

나름 고난도인 창틀 및 기타 벽에 붙은 것들을 커버링테이프로 싸는 작업은 동생이 했다. 커버링테이프가 너무 좁거나 넓으면 비닐이 작업하는데 방해되어 깔끔한 마무리가 필요한데 그건 동생이 해야 했다. 동생이 해야 작업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항상 모든 작업 시작은 인근 식당의 주차장이 있는 동쪽부터 했다. 그래야 점심시간에 손님들이 이용하는데  방해가 안되니까. 오늘은 그 시작을 아들 둘이 했다. 그때는 그 기분을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어서 얼른 사진 한 장으로 남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힘들게 태어났어도 잘 커서 도와주는 아들들이 고마웠던 것 같기도 하고, 옛날 농경시대 때 자식들을 많이 낳았던 이유도 알듯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아들들한테도 좋은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처음 칠할 때는 애들이 어려서 내가 손이 많이 가는 애들을 보고, 칠은 동생과 남편 둘이서만 했었다. 그 작업을 다섯이 하고 있으니, 작업 속도가 빨랐다. 단 동쪽과 남쪽은 오래 걸렸다. 100프로 벗겨내지 못한 부분 때문에 여러 번 칠해도 색깔이 얼룩소 같았기 때문이다. 칠하기 전에는 멀쩡하던 부분도 오일스테인을 머금고 난 후에는 꼭 부르튼 입술처럼 일어났고, 그것을 벗겨내면 또 일어났다. 그래도 난 목요일에 처참한 광경을 봤기에 그냥 봐줄 만해서 놔두려 했건만, 완벽주의자인 내 동생은 끌과 붓으로 꾸준히 벗겨내며 칠해 전면을 깔끔히 마무리했다.

그사이 아이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벽과 데크, 대문, 야외테이블의 초벌 작업을 애들이 다 해줬다. 잠깐 사이, 큰아들에게 아이스크림 사 오라고 시켰더니, 큰커피집에서 제일 비싼 음료를 혼자 몰래 원샷하고, 안 먹은 척 아이스크림을 사 온 것이 어이는 없었지만, 집안일을 도와주는 중학생이 둘이나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게다가 다음엔 애들에게 더 정교한 작업까지 맡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그다음은 어른들의 반복되는 덧칠이 이어진다. 색이 다른 부분은 덧칠로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다. 그동안 여러 번 덧칠을 해와서 같은 색의 오일스테인을 구입해 칠했어도 첫해는 황토색이었다가 오 년 전쯤에 갈색이 됐고, 지금은 거의 고동색에 가까워졌다. 이참에 다음엔 아예 고동색을 구입해야겠다.


집은 애들과 같다. 손도 많이 가고, 끊임없이 가꿔 줘야 한다. 조금만 소홀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나무로 외장을 했다면 꼭 명심해야 한다.
집을 드나들면서 수없이 오가며 봤을 법도 한데, 오일스테인 칠 했다고 안심했던 모양이다. 중간에 모양새가 이상해 손가락을 넣어보니 떡하니 구멍이  생겼다. 고민했던 차에 에폭시퍼티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구입해 메꿨다. 메우고 나니 좀 티가 나긴 해도 단단해서 더 이상 썩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었다. 한데 문제는 더 큰 곳에 있었다. 하부에 그것도 두세 줄이 썩어 있었다. 아무래도 불안해 실리콘으로 메웠는데 조만간 교체를 할 예정이다. 소홀하면 할수록 문제는 커지지만 문제를 아는 그 순간 보완해 나가면 그리 늦은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애들 키우는 마음으로 집을 가꾼다. 물론 집이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이 아플 때처럼 마음이 아프지만 이 집이 주는 즐거움 또한 애들이 주는 즐거움과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자들이 둘째, 셋째 나아서 키우는 것과 같을 거란 생각도 든다. 나 또한 다음 집도 단독주택에서 살 예정이니 말이다. 단, 다음번에는 꼭 벽돌집에서 살고 싶다. 작업하는 내내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를 떠올렸다. '괜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었어' 라면서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또 다른 동생 부부가 응원한다고 고기를 사 왔다. 힘든 일 끝에는 항상 삼겹살에 맥주가 최고인 것은 진리다. 다른 날보다 일찍 끝내고 마당에서 숯불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이야기하는 그 시간으로 인해, 하루 종일 힘들게 작업한 것을 잊고, 종전보다 새집 맞은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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