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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울타리 May 13. 2021

단독주택 10년(봄) - 천연 빨래건조기 마당

내가 봄을 좋아하는 이유. 그건 창문을 맘대로 열어 놔도 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아직 모기들의 기세도 약할 뿐만 아니라, 이제 막 벌레가 나오기 시작할 때라 창문을 열어 놔도 힘없는 벌레만 들어올 뿐이다. 그것보다 더 좋은 이유는 이때부터 마당에 빨래를 맘~껏 널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건조기가 없다. 주변 지인들이 하나같이 신세계라고 꼭 사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 집 구조상 건조기까지 넣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는 안방이나, 거실에 설치하라고는 하는데, 난 각 공간의 역할을 중시하기에 그건 과감히 포기했다. 그냥 집이 생긴 대로 사는 것이 가장 순리라고 생각한다. 여기로 이사와 초반에는 미세먼지가 덜 할 때라 아무 때나 널어놨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미세먼지가 하도 기승을 부리다 보니, 미세먼지 알람 앱을 핸드폰 바탕화면에 설치 해 놨다. 빨래를 잘해놓고, ‘최악’인 날에 널어놓을 수는 없으니까.

 
봄이 되니 이불빨래를 해야 하는데, 게으름에 하루 이틀 미루다가 드디어 미세먼지 예보를 들여다봤다. 이번 주가 적기였는데, 벌써 목요일이다. 마음이 급했다. 아들들 이불을 목, 금에 빨고, 토, 일, 월요일 비 온 후에는 남편과 내 이불을 빨아야겠다. 건조기가 있으면 이런 걱정이 필요 없을 테지만, 없는 나는 이리 계획을 세운다. 빨래 건조대는 3개이다. 회사를 다니니 하루 종일 세탁기를 돌릴 수도 없고, 널 수도 없다. 게다가 주말에 못한 평상시 빨래도 있다. 주말에 일이 있어 못한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돌려놓는다. 아들 방에 가서 이불 홑청을 뜯고, 내친김에 침대 청소까지 했다. 거기까지 한 것만으로 이미 피곤해졌다. 그렇지만 긴장에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사이 빨래가 끝났다. 빨래를 우선 집안에 널어놓는다. 그리고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예약 빨래를 해 놓는다.

 

아침에 핸드폰 알람은 울렸으나, 또 미적거린다. 알람을 듣자마자 못 일어난 지 오래다. 점점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그럴 때는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에 무엇을 해야 하더라. 뭐였지? 뭐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 그래도 해내야 돼. 아침메뉴는 뭐해야 하더라…….’ 그렇게 긴 시간 매일 무언가를 떠 올린다. 오늘도 그렇게 사투를 한 끝에 이불빨래가 생각났다. 무언가가 떠오르면 그 무언가 때문에 몸이 벌떡 일으켜진다. 신기하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라는 말은 진짜 명언인 듯하다. 요즘 난 그 명언을 매일 아침 깨달아가며 시작한다.

 
우선 어젯밤에 널어놓은 빨래를 내놓는다. 어느 정도 말렸지만 햇빛 받은 빨래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우리 엄마는 햇빛에 내어 놓아 두는 것을 ‘튀긴다'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으나, 이 집에 오래 살면서 어렴풋이 알 듯도 하다. 햇빛에는 건조 기능뿐만 하니라, 살균 기능도 있어. 그 세균들을 튀기듯이 하여 사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그렇게 내어 놓았지만, 데크가 좁다. 과감히 마당 잔디밭에 내려놓고 이불을 꺼내온다. 건조대 두 개에 나란히 걸어 놓으니 마당 한 가득이다. 슬슬 해가 들어온다. 동쪽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남쪽, 서쪽을 지나면서 빨래를 구석구석 ‘튀겨’ 줄 것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뗘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가 드리워진다.


아침부터 무언가를 이룬 느낌. 시작이 좋다. 얼른 아침 준비하고 출근했다.

 
작년부터 미세먼지 양이 많이 줄었다. 이것도 코로나 19 여파 중에 하나라고들 한다. 코로나가 마냥 나쁘지 많은 않다. 다음 주 미세먼지 예보도 ‘보통이나 좋음’이니 말이다. 아침 먹을 때 보니 빨래 위에 햇살이 가득해졌다. 기분 좋게 먹은 아침이라 소화가 잘 된 것 같다. ^^

 

회사에 와 정신없이 일하다 말고, 염려되어 다시 미세먼지 알람 앱을 본다. 분명 정오 무렵에는 ‘보통’이었는데 ‘나쁨’으로 바뀌었다. 집에 전화를 해 아들 보고 들여놓으라고 했다. 아들들이 집에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





이쯤 되면 마당에 널어놓았다가 비 오면 어쩌나 생각하는 이가 있을까 적어본다. 한번 딱 빨래가 홀딱 젖은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아무리 예보에 비가 없다 해도, 하늘을 보게 된다. 믿거나 말거나 지금쯤 되니 하늘이 보이는데, 하늘이 불안정하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하고 집에다 널고, 외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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