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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울타리 Jun 07. 2021

단독주택 10년(여름) - 매실 따기

우리 집엔 매실나무 한 그루가 있다.

봄에 매화꽃이 만발하더니 매실이 많이 열렸다. 게다가 작년에 가지치기를 안 해 재작년보다 그 수가 더 많은 듯했다. 매실은 한해 걸러 많이 열린다.


사실 매실 수확할 날짜는 잘 몰랐다. 항상 수확시기를 부모님께 물어보는데 이번 주쯤 따야 한다고 해서 미리 마음 다잡고 있었다.

다 따고 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절기상 망종을 기준으로 20일 안에 따는 게 적기라고 하는데 우리가 딴 날이 망종이었다. 어른들은 참 신기하다. 그냥 굳이 절기를 따지지 않아도 열매만 보고도 아시니 말이다.



금요일 늦게까지 야근을 해서 토요일은 잠만 자느라 아무것도 못했다. 일요일 아침 동생과 약속한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는 욕실 청소를 했다. 운동과 욕실 청소만 했는데도 벌써 지친 데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는 의욕이 뚝 떨어졌다. 또 소파에서 누워 잠만 잤다. 아침에 시어머니께 매실 따다 드린다 말 한걸 후회하면서... 그래도 그 전화를 했기에 다시 일어나 매실나무 앞에 설 수 있었다. 항상 그렇지만 거실에서 볼 때와 그 앞에 섰을 때  나무 크기 차이는 많이 난다. 가까이 오면 왜 이리 큰 것인지... 한숨부터 나왔다.


큰아들은 빨래 개고, 청소하는 사이, 나와 남편, 막내가 매실을  땄다. 매실나무는 하나의 정글이 되어 있어 외부의 진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힘들더라도 가지치기까지 할 수밖에… 남편은 일을 또 크게 벌인다고 한소리를 했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늘어나자 결국 나와 같이 가지치기 작업을 동시에 하며 진행했다.

남편은 나무 위, 나는 담장 밖에서 따고 아들은 매실을 담는다.


난 부지런 한 편은 못된다. 하지만 일이 시작되면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오늘 하필 그 신이 찾아온 것이다. 남편은 쉬었다 하라고 잔소리 하지만 난 쉬고 싶은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뒤늦게 나온 큰아들이 나와서 걱정을 한다. "엄마 쉬었다 해! 또 쉬지도 않고 그렇게 하고서는 내일 아구 구구구  온몸이야. 할 거지?"  …… 반박을 못다. 그 소리를 들어도 손은 계속 움직다. 어머니한테 가져간다 했으니 시간도 맞춰야 하고, 동시에 가지치기도 해야 하니 마음이 조급했다.


계속 매실을 따면서 가지치기를 하며 혼자 중얼거린다. "교차지, 하지, 약지, 고사지, 평행 …"  잘라내야 하는 대상을 말하며 해당 가지를 자르는 것이다. 또한 가지의 자라는 방향을 생각해서 원하는 모양인 가지를 제외하고 잘라낸다. 정말 끝도 없이 잘라낸다. 나무 밑에서 매실 받아주고, 가지 정리하던 아들이 지쳐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난 마음이 더 급해진다. 남편도 조만간 그만둘 테니까. 내가 나무 위로 못 올라가니, 남편에게 높은 가지를 쳐달라고 요구를 했다. 남편이  점점 의욕이 떨어지면서 작업이 거칠어진다. 이쯤 되면 요구해서 할 수 있는 작업에 한계가 온 것이다.  


매실은 거의 다 땄다. 참 많기도 했다. 해가 늘어날수록 많아지는 것 같다. 남편에게 어머니께 갈 준비 하라고 하고는 나 혼자 마무리한다.



체력에 한계가 오니, 얼굴에서 열이 났다. 손도 떨렸다. 한데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인데, 나에게 가지치기 신이 그리 자주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이 오래전에 가져다 놓은 물을 한잔 원샷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사다리를 올라간다. 사다리도 남편 없을 때 올라가야 한다. 안전제일 주의자인 남편은 조심하란 말을 계속하기 때문에 그거 듣기 싫어서라도 없을 때 올라가는 것이 편하다. 힘이 드니 가지에 눈도 찌를뻔하고, 팔에 10센티미터가량 상처도 났다. 올라가서 자르고, 내려와서 전체 모양을 보고, 무한 반복 끝에 원하는 모양이 나왔다. 그래도 한 두 가지가 걸린다, 맘먹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에구 체력이 안 남았다.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 해서 떨어진 가지를 정리해서 매실나무 밑에 쌓고, (가지가 부식되어 영양분이 되기에 별도의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된다) 전정가위, 장갑 등을 창고에 넣었다. 장장 세 시간 만에 끝을 봤다. 해놓고 보니 꽤 잘했다. 역시 나는 이런 일이 적성이 맞는듯하다. 사무실에서 서류 만질 때보다. 잡초뽑기, 가지치기할 때면 세상모르게 일을 한다. 몸은 고단해도 나름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기지치기 전ㆍ후


끝내고 혼자만의 시간. 아무것도 하기 싫어 캠핑 의자에 앉아 하늘을 봤다. 정말 좋은 날씨였다. 이 날씨에 선크림도 안 바르고 일을 했다니…  후회를 해도 너무 늦었다.


그때 보이는 가지 하나. 삐죽 튀어나와 있다. 아까는 저렇게 보기 싫지 않았는데 이쪽에서 보니 너무 거슬렸다. 저걸 자를까 말까 한참 고민을 했다. 보고 있자니, 심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 누워버렸다. 캠핑의자라도 누우니 생각보다 편했다. 다시 맘이 편안해졌다.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보지 않고 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체력이 바닥난 관계로 그냥 한없이 멍 때리고 누워있다가 춥고 배고파질 때 들어왔다.




보통 잎이 넓은 큰나무(낙엽 교목)의 가지치기 적기는 이른 봄과 늦은 가을, 즉 잎이 없을 때 주로 한다. 새순이 많이 나와 나무 모양이 흐트러졌다면 약간의 여름 가지치기를 할 수 있으나, 너무 많은 가지치기는 광합성  작용을 억제해 나무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다.

우리 집은 필요에 의해 좀 많이 쳤다. 그래도 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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