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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울타리 Jul 08. 2021

단독주택 10년(여름) - 짬짬이 피크닉

내가 마당을 즐기는 방법

델타 변이 바이러스 유입으로 4차 대유행이 올 거라는 뉴스를 접했다. 코로나 유행 중에 장래희망이 세계여행가로 바뀐 중3 큰아들이 해외여행 가고 싶다고 연신 투덜댄다. 난 조심스럽게 충고했다.

"아들아, 니 꿈을 이룰 수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꿈도 생각해봐”라고…..

아들 꿈이 좌절되는 건 싫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말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미래가 올까?


점점 북적이던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주말이면 이곳저곳 놀러 갔었고, 어디 가지 않으면 우리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곤 했었다. 집들이만 3개월을 했어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리 집에 왔었다. 식탁 위 달력에는 겨울 한철을 제외하고 토요일마다 사람들의 이름이나, 지명 등을 한주도 빠짐없이 적어 놨었다. 허나 현재 우리 집 달력은  텅~~~ 비어 있다. 코로나로 인한 여파가 우리 집에도 찾아온 것이다.


큰아들 초1 학년 때였다. 아들 친구들이 대략 10명에 그 엄마들까지 열댓 명이 몇 번 놀러 왔었다. 그때는 우리 집에 게임기도 없고, 오로지 장난감뿐일 때라 아이들은 3층 다락의 놀이방을 오르내리며 엄청 시끄러웠을 뿐 아니라 난장을 피우고 갔었다. 여름에는 커다란 수영장을 펼쳐 놓아 물놀이를 실컷 하고 나면, 수영복을 세탁기로 빨아서 보내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힘이 남아돌았나 보다.


주변 지인들이 올 때면 대부분 삼겹살 파티를 했다. 그때 대부분이 식구 단위로 오다 보니 보통 10명이 넘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도와주더라도 그 많은 식구들 젓가락 놓는 일도 쉽지 않았다. 초반 메뉴는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샐러드, 고기, 밑반찬, 숯불에 구운 고구마가 다였다. 고기는 주로 삼겹살이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남편의 실력이 진화해서 바비큐도 하고, 훈제 닭도 하다 베이컨까지 만들어 먹었다.



뜬금없이 찾아오는 친척들은 일도 아니었다. 그래 봐야 10명 미만이었으니까. 그럼 있는 반찬을 대충 식판과 일회용 용기에 담아서, 상추도 없이 삼겹살만 구워 먹기도 했다. 그래도 마당에서 먹는 고기는 항상 진리였다.


작년 어느 날 올케한테 전화가 왔다.

 "형님! 우리 애가 이번 여름에 수영장을 못 가서 그러는데, 수영장 해주실 수 있어요?"

동생 부부가 결혼 10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고 나에겐 첫 번째이자 하나뿐인 친조카이다. 말할 필요 없이 당장 오라 해서 그날 하루 종일 즐겁게 놀다 갔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코로나가 심각해져 어쩌다 오는 친척 외에는 지인들의 발이 끊겼다.



그렇게 북적이던 마당이었는데 요즘은 고요하다. 코로나 이후 마당은 잡초를 뽑거나, 가지치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동안 그냥 그렇게 바라만 보는 존재였다.


하루는 회사 동료가 근처 바닷가에 해안 정비를 잘해놔서 참 좋아졌다고 해, 주말에 큰 맘먹고 그곳을 갔다. 한가하게 캠핑 때의 감성을 느껴보고 싶었다. 가서는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세상에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정말 많아도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 코로나가 무서워 곧장 집으로 오고 싶었으나, 우리를 내려 두고 낚시하러 간 남편 생각해서 두 시간 겨우 참고 집으로 왔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왜 먼 곳에 위험을 무릅쓰고 갔지? 그냥 여기 이곳에서 멍하니 캠핑의자 펼쳐 놓고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을….’

그때서야 아들들이 마당에서 놀던 시대는 진작 갔으니, 나라도 이곳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 짐 정리하지도 않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감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았을 때 그 기분은 어느 휴양지 못지않게 좋았던 날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마당에는 항상 캠핑의자를 펼쳐놓고 있다. 주로 남편이 파이프 담배 피우며 앉아 있지만, 나도 가능한 단 몇 분이라도 앉아서 명상(좋게 말해 명상이지 그냥 멍하니 있는다.)을 즐긴다.



그렇게 한두 달 보내다 보니, 문득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 있던 식당가가 떠올랐다. 식당마다 야외 테이블에는 테이블보를 똑같이 깔아 놓는데, 그게 그렇게 분위기 있어 보였다. 그때까지 우리 집은 테이블보 없이 커다란 비닐봉지를 반으로 갈라 쓰고 있었다. 우리도 식탁보를 해볼까 하고 집을 뒤져봤더니,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쓰던 원단이 있어 깔아 봤다. 내 눈에는 좋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마침 온 동생이 비웃었다. 너무 구리다나 뭐라나…. 내가 그 후에도 그냥 그 식탁보를 쓸 것이라 예상을 했는지, 동생이 부탁을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쁜 식탁보를 만들어줬다. 식탁보 하나만 추가했을 뿐인데 마당 분위기가 살아났다. 아! 이래서 유럽 사람들이 식탁보를 그렇게 깔았나 보다 깨달으면서….. 똑같은 메뉴를 먹어도, 더 맛있게 느껴지는 진기한 경험도 했다. 그 뒤로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마당 테이블에 식탁보를 깐다. 아직도 음식을 질질 흘리는 아들들 덕분에 식탁보에 얼룩이 묻어 바로 빨아야 하지만, 욕조에 넣어 발로 지근지근 밟아 빨면 금방 깨끗해진다.



식탁보로 피크닉 기분을 맛보고 있다. 덕분에 일회용과 식판을 쓰기보다는 제대로 된 그릇도 나온다. 나름 여유가 생겨 그릇들도 제대로 나오나 보다. 얼른 지인들을 초대 해, 예쁜 식탁보 있는 마당에서 피크닉을 하고 싶다.  좋은 경험 하나 추가되다 보니 이참에 몇 가지 식탁보를 더 들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한적한 교외 어느 식당에서 회식을 하고 있었다. 작은 식당인지라 외부인은 거의 모른다.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밖이 시끌시끌하다. 나가 보니 이게 웬일인가? 나의 대학시절 동아리 선배들이었다. 어떻게 그곳을 알았는지 이제 막 삼삼오오 모이는 듯했다. 그중  선배가 안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하면서, 이 지역에 사는 나보고 좋은 대상지를 추천하라고 했다. 인원은 대략 10명 정도에 한두 명이 더 올 예정인 듯했다. 너무 하지 않은가… 한두 명도 아니고 이 코로나 시대에 이 인원을 수용하면서 소소하게 맥주를 걸칠 곳을 찾으라니….. 스마트폰 지도로 이 주위를 아무리 뒤져봐도 적절한 장소가 없다. 코로나인 상황, 이 인원을 조용히 수용할 식당, 주차할 공간, 곧 있으면 문을 닫는 시간적인 제약 등, 생각할게 너무 많았다. 결국 내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우리 집에 가요~!’


순간… 이상했다. 사방이 조용했다. 반사적으로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젠장 5시 55분. 꿈이었다. 그렇지…. 애초에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이 그렇게 모인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위의 글을 쓰고 잠을 잤더니 이런 꿈을 꿨다. 참 사람의 욕망이란…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그 욕구를 채우고 싶어 안달인가 보다. 그래, 꿈속에서처럼 우리 집 마당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맘껏 먹고 놀고 싶다.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으나… 예쁜 원단 사다가 동생한테 박음질해달라고나 해야겠다.


그 식탁보를 테이블에 깔아 놓고 주말에 나 혼자라도 실컷 피크닉을 즐겨야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맞다, 장마지~! ^^;;;


현실에는 항상 제약이 따른다. 그래도 굴하지 말고 짬짬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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