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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울타리 Aug 12. 2021

단독주택  10년(여름) - 잡초 천국

초록색으로 치자면 가장 어두운 초록색. 그러니까 검푸른색 아니면 진초록색이다. 요즘이야 말로 이 두 색이 가장 어울리는 시기인 듯하다. 우리 집도 그렇다. 어느덧 가득 찬 초록색을 띄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집 마당은 잔디밭이 70퍼센트가량인데, 잔디밭뿐만 아니라 잔디밭 주변이 온갖 잡초들로 풍성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보다 남편이 잡초를 견디지 못하고 잔디를 깎는다는 것이다. 잔디와 잡초가 어우러져 발목 위로 올라오기 전에 못 견디고 자른다.  난 잡초에 관대한 편인지라, 많이 자라도 좀 자랐나 보다 한다. 남편은 귀신 나올 거 같다느니, 미친 사람 머리 같다느니 해서, 그전에 밀어버린다. 집은 어질러지건 말건 신경 안 쓰는 양반이, 마당 풀에 정성인 거 보면, 우리 부부는 어쩔 수 없는 천생연분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 밀어 버린다는 것이다. 잡초는 뿌리가 강해서 뽑아 줘야 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 그냥 잔디 깎기 기계로 밀어버린다. 밀고 난 다음의 잔디밭은 양탄자와 같이 이쁘게 보이는 듯하나, 그 사이사이 살아있는 잡초의 뿌리는 또다시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엔 큰 토끼풀, 크로바는 없고, 잎이 손톱의 2분의 1 정도 되는 크로바 종류만 서식한다. 종류가 두 가지 정도인데, 한 놈은 여느 크로바 같지만, 종이 작고, 또 다른 것은 땅에 붙어서 기어 다닌다. 그 놈들도 아는 모양이다. 어차피 길게 자라지 못하니, 아예 작은 아이들만 들어와 서식하는 것이다.


남편이 잔디 깎기로 드르륵 밀기 시작하면, 나는 집안일을 하던 것을 멈추고 마당으로 달려 나간다. 매번 뽑고 나서 밀라고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으니 큰 잡초들은 나라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큰 놈들의 소굴이 되어 버리니 부리나케, 장갑도 안 낀 채로 눈에 띄는 잡초들을 뽑아댄다. 남편이 다른 일은 느릿하면서, 내가 큰 잡초 뽑는 것은 보기 싫은지, 아니면 같이 뽑으라고 할까 봐 무서워서인지, 잔디 깎을 때는 더 속도를 내어 밀어버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미 잘린 잡초도, 밑동 두께만 봐도 아는 터라 한 개 두 개 뽑다 보면, 여지없이 마당에 나 혼자 남을 때가 많다. 여기 이사 온 초기에는 그렇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혼자 뽑았었는데, 이젠 나의 무릎이 성치 않다. 이나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고 적당한 선에 마무리를 한다. 그래…. 남을 놈은 남아서 잘살아라. 게 중에 이쁘면 키우면 되지 뭐… 하는 심정으로…



아니나 다를까 하루는 잡초를 제거하다가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아기 홍단풍 2주를 발견했다. 씨앗이 날아와, 판석 사이에 자리 잡았던 모양이다. 분명 재활용 쓰레기 밑에서 잘 자라지 못할 것이 뻔해서 화분 2개에 옮겨 심었다. 그때부터 그 아이들은 잡초에서 홍단풍이 되었다. 잡초라 해도 모두에게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그 홍단풍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우리 집안에서는 물 주기 귀찮아서 스킨답서스를 수경재배(물이 말라 닥쯤 있을 때 한 번만 주면 된다)로 키우는데, 마당에 있는 홍단풍은 죽을까 봐 종종 물을 주고는 했다. 하나, 그중 한주는 이번 폭염에 며칠 못 챙겨 줬더니, 말라죽어버렸다. 흠, 그냥 땅에서 잘 자라는 것을 괜히 화분에 심었나 후회를 했다. 다시 땅에 옮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잠시 고민을 했지만, 꼭 분재로 키워보고 싶은 욕심에 그냥 화분에 두기로 했다. 확실히 화분에 키우는 것은 더 어렵다.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집안 곳곳에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곤 한다. 요즘 포털 서비스에서 사진만 찍으면, 무슨 꽃인지 바로 알려주지만, 난 굳이 그런 노력은 안 한다. 어차피 이름이란 게 금방 잊힐 뻔하기도 하고, 그냥 바라보고 좋으면 그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많고도 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 여름이다.


하루는 웬일로 남편이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았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들어오길래, 웬일인가 싶어 물었. 잡초 사이에 멜란포디움 새싹이 가득이란다. 알고 보니, 잡초를 처음부터 뽑으려 했던 것은 아, 담배를 피우다 우연찮게 그것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새싹이 잘 자라라고 잡초를 뽑아 주었단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 자기, 봄에 종이 달걀판에 심은 씨앗들, 비 맞아서, 다 부서져 없어졌잖아… 근데 웬 새싹?”

했더니, 남편 왈

“작년에 저절로 떨어진 씨앗이 큰 거더라고, 앞으로는 굳이 씨 받아서 따로 심지 않아도 돼. 내가 그  모양 알아”

하며 밝은 얼굴로 대답을 한다. 간 남편의 노력은 참 가상했더랬다. 그 작은 씨앗들을 꽃에서 따 모아서, 말려 포장을 해, 냉장고에서 변하지 말라고 보관 한 뒤, 그다음 해 씨를 모종판에 심고, 자란 새싹을 옮겨 심었더랬다. 그 정성 들인 것을 봄에 모종판을 못 구해, 달걀판에 심었다가 비 몇 번 맞고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하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식물들이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작은 씨앗도 살아가는 방법이 다 있는 것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단독주택 하면 잡초 제거가 힘들지 않은지, 왜 그냥 보도블록 같은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그 잡초로 인해 힘들 때도 있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잔뜩 받고 돌아온 날이었다. 밥 할 생각은 안 하고, 가방을 데크에 던져놓고, 하염없이 잡초를 뽑았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뽑고 또 뽑다 보면, 커다란 스트레스도 작은 공 만해지니 종종 그랬었다. 남편이 뒤늦게 퇴근해 와서 분위기 이상한 나의 뒷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밥을 한 적도 있었으니, 그럴 때는 나에겐 일석이조였던 셈.

요즘은 좀 살만해서 밥도 안 하고 잡초 뽑은 적은 드물지만, 오늘처럼 오후에 소나기라도 잔뜩 퍼부은 날이면 어김없이 한 손에 가방 든 채로, 맨손으로 눈에 보이는 데로 잡초를 뽑는다. 그래야 좀 쉬우니까. 살면서 요령은 생기기 마련이다.


잡초는 그렇게 뽑아도 뽑아도 생긴다. 내가 그것들을 제거한다고 해서 안 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에 너무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다. 필요한 만큼 움직이고 그러다가 이쁜 놈들은 그 놈들 데로 바라봐 주면 된다. 잡초도 다 태어난 이유가 있다. 보는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잔디밭에 민들레 한 송이가 폈다고 가정해 보자. 잡초일까 화초일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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