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울타리 Sep 16. 2021

단독주택 10년(가을) - 깊어지는 가을에 나는....

나는 좋고, 나는 길들이고, 나는.. 기다린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요즘 들어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가 저절로 생각난다.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방에 올라오면 창밖에 풀벌레 소리가 바람과 함께 들어오는데, 동네 어디선가 '멍멍멍   멍멍멍 멍' 소리만 더해진다면 딱 그 노래 속 소리와 같기 때문이다.


집안 공기가 찜통 같던 여름이 가고 있다. 이렇게  집에 돌아와 창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점점 시원해지니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어느 계절이 좋냐고 물어보면, 난 항상 서슴없이 가을이라 말한다. 20대 때는 심하게 가을을 타 우울했던 그 계절이, 40대가 되어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바뀐 셈이다.


오래간만에 집안 먼지를 닦았다. 집주인이 시도 때도 없이 창문을 열어 놓으니, 쌓이는 먼지가 꼭 한 개의 막을 씌운 것 같다. 부지런하지 않은 탓에 거실장과 티브이를 닦는데만 물티슈 두장을 썼다. 역시 오래된 때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렇게 먼지가 쌓이는 걸 알면서도, 창문을 열어 놔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답답함을 정녕 못 참는 모양이다.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싫어하고, 창문 없는 쇼핑센터도 싫어한다. 큰 대형 마트는 웬만해서는 가지 않고, 동네 마켓 정도만 간다. 쇼핑센터를 싫어하니 온라인 쇼핑만 하고(그것도 짧게), 오프라인 쇼핑은 당연히 잘 안 한다. 꼭 옷이 필요하면, 그냥 한두 개 정해놓은 매장에서 필요한 옷만 집어오는 편이다. 이런 나의 갑갑증 때문에 내가 창문을 열어 놓는 것이라는 것도 최근 들어 알게 됐다.


창문을 열어놔야 답답한 속이 뚫리고, 집이 숨을 쉬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러다가도 정 답답하면 가을바람맞으며 마당에 앉아 있는다. 이래저래 난 아파트로 못 갈듯 하다.


늦은 시간까지 열어놓으니, 찬 공기와 풀벌레 소리가 같이 들어온다. 하루 중 이때를 난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 중3 베짱이가 이 좋은 시공간에 돌을 던졌다. 큰 아들은 열심히 기타를 튕기고 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시고 이번 가을, 그렇게 기타를 친다. 아들 꿈이 기타를 치며 세계여행을 하는 거란다. 아이고……~! 저 큰 베짱이가 기타를 칠 때마다 매달 들어가는 학원비 때문에 속이 상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기타  소리와 저 풀벌레 소리 잘 섞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짧은 시간 동안 아빠한테 배웠어도 잘 치긴 잘 친다. … 이렇게 아들한테 현혹되고 있는 나는, 점점 아들바보가 되어가나 보다.


또 가을이 좋은 이유는 나뭇잎이 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조경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뭇잎이 물들어 낙엽이 떨어지면 나의 일도 점점 줄어들어 비수기가 되니, 좋아할 수밖에.... 클라이언트 들의 까다로운 요구가 점점 적어지니 한시름 놓아지게 마련이다.


허나 이 집에서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것도 있다. 우리 집 마당의 감나무 잎은 낙엽이 지면 정말 수도 없이 떨어진다. 분명 매화나무 같이 있어도, 매화나무로 낙엽 때문에 속 썩는 일은 없는데, 그 감나무 잎은 꼭 한두 번씩 쓸어주어야 하니 피곤할 뿐이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이번 해는 감을 보고 참지만, 작년처럼 두세 개 따는 해는 억울한 생각마저 들 정도다.


잎이 떨어지지 않는 사철나무 울타리는 이때 웃자란 가지들을 가지치기해주어야 한다. 보통 일 년에 두 번 정도 자르는데, 늦은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자른다. 봄에는 살짝 삐져나온 것만 정리하고, 가을에는 정해둔 높이 이상 자란 것을 과감히 잘라서 겨울을 난다. 겨울에는 자라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봄에 살짝만 치면 되는 것이다.

사철나무 가지치기 전ㆍ후


사철나무 가지고, 늦가을 감을 수확하고 난 다음에는  감나무 가지치기를 한다. 감나무 자체가 크게 자라는 나무다 보니, 인접한 주택에 피해를 주니까 크게 자라지 않게 해야 한다. 큰 나무가 옆집 유리창에 닿아 태풍 때 깨지는 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 내 나무가 크게 자라면 여러 가지 이유로 골칫덩이가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이번 가을에도 여지없이 나무들은 나의 손을 기다린다. 해가 갈수록 나나 나무나 서로 길들이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땐 ‘어린 왕자’를 봐도 '길들이기' 뜻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나이가 들어 아내와 엄마가 되고, 또 이 집에 살다 보니 그 깊이를 알 것 같다. 길들이기에는 서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그리고 좋은 것도 있지만, 많은 인내와 포기도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앞으로도 점점 많은 것을 깨달아 갈 것이다.



이렇게 이 집은 나를 길들이고 있다. 더 부지런해지고, 더 능숙해지고, 그것들을 맘껏 즐겨 보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아직 모기있어도 마당에 앉아 있다 보면, 부러울 것 없는 그 순간을 가지게 된다.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익어가는 가을과, 그 순간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빨리 코로나 방역 4단계 끝나고, 이 가을마당에서 소소한 파티를 하고 싶다. 내년에는 되려나… 이렇게 작은 기다림이 쌓여만 간다.


이전 13화 단독주택 10년(여름) - 잡초 천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