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울타리 Feb 22. 2021

단독주택으로 이사할까 말까 고민하는 분 계시나요?

신혼 전셋집 구하러 다닐 때였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들고서 싸고 좋은 집을 찾으러 여기저기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지쳐 갈 때쯤, 부동산 미닫이 문을 열고 “전셋집 구하러 왔어요” 하면서 들어가는데, 거기 주인 되시는 분이 우릴 뚫어져라 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5년 안에 집 사겠네!” 하는 거였다. 거기에는 우리가 찾는 마땅한 집이 없다고 해 바로 그냥 나왔지만, 그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아 우리는 계속 웃으며 돌아다녔다. 그때는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원하는 집을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소리를 듣고 보니 너무 터무니없고 어이없어서였다. 저분이 눈이 안 좋으신 모양이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줌마 말대로 우린 5년 안에 집을 샀다. 그분이 관상을 좀 볼 줄 아는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그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데, 그때 하도 이집저집 돌아다니기도 했고, 재건축된 지역이었기에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돈이 없이 시작했다. 누구는 이런 집에 산다고 부자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다. 물론 재테크를 잘해서 목돈을 잘 굴린 경우도 아니다. 그때 집을 지을 수 있는 원동력이라면 빠른 판단력이 아녔을까?

지금이야 이 근처 아파트가 우리 집보다 더 비싼 곳이 많아졌지만, 그때 만해도 우리 동네는 이 지역 아파트보다 훨씬 비쌌다. 감히 어떻게 저런 집을 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한 것이 내가 땅 사기 채 1년 전도 안되었을 때니까. 그렇다고 1년 안에 돈이 어디서 뚝 떨어지지도 않았다. 단지 생각만 바뀐 것이었다.

그 당시, 살고 있는 동네에는 재건축 조합이 설립되어 재건축인가를 받았다고 현수막이 걸렸었다. 둘째 아이가 세네 살 무렵이었고, 이제 두 아들들이 그 좁은 집에서 막 휘젓고 다니기 시작할 때였다. 집이 턱없이 좁았다. 그렇다고 재건축이 쉽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돈이 없는 우리는 재건축할 때까지 기다리며 집 한 채를 더 살 수가 없었기에, 없는 와중에 산 좁은 집을 놔두고 또 대출을 더 받아 전세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만 남았었다. 그래 봐야 좀 더 넓은 아파트 전세인데, 두 아들들을 데리고 이사 다녀야 한다는 것, 정말 그것만은 싫었다. 그냥 답답했던 나날이었다. 그 와중에 보게 된 한 인터넷 기사, 좁은 땅에 집을 지어 사는 사람의 내용이었다. 생각을 해보니, 재건축 아파트 들어갈 때 더 많은 대출받아야 하고, 7~8년 뒤쯤 아이들 커서 새 아파트 들어가느니, 무리를 해도 지금 당장 땅을 사서 집을 지어 그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는 ‘그래, 땅 50평만 있으면 되겠어’라는 생각만 가득 찼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땅을 보러 다녔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여기 우리 집을 찾게 된 것이었다.

물론 돈이 많지 않았다. 그때 당시 친정 엄마, 동생 돈까지 해서 10군데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돈을 빌려 집을 지어야 했으니까.(물론 맞벌이라 가능했으리라...) 그렇다고 여기서 그 방법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니까. 지금에 와 보면 그때 나는 미쳤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젊기도 했지만 그렇게 생각대로 행동하기까지 미쳤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그렇게 작은 생각 하나 가 그런 커다란 일을 하게 했으니, 그 생각의 큰 힘을 나는 안다.

지금에 와서, 그때 미쳤었던 나를 난 참 고맙게 생각한다. 지금이라면 전혀 생각만 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거다. 그 이후로 난 힘든 때도 있었지만 이 집을 지으면서 행복했던 경우가 더 많았었던 거 같다. 대지 등기부등본을 보고 가슴 벅참을 느끼고, 갑자기 빚이 많이 늘었어도 집 지을 생각에 마냥 들떠 있는 것은 보너스였다.

집 짓는 시공사가 공사기한을 못 맞춰서 친정집에 엊혀 살기 한 달 반을 채우고, 이사 전날 준공 청소하다가 준공 허가가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고는 혼자 머리에 꽃 꽂은 여자처럼 소리 지르며 거실을 방방 뛰었었다.

 이사 후 집들이만 3개월을 했어도 누가 뭐라 하는 이가 없었고, 아이들 대여섯 명이 위아래층을 뛰어다니며 총싸움, 술래잡기 등을 해도 누구 눈치 보지 않아도 돼서 더없이 좋았다. 여름이면 풀장이 되고, 봄가을이면 캠핑장이 되는 집에 사는 우리 아들들이 절대 이사를 가지 않겠다고 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아이들의 집에 대한 만족도는 굉장히 높다. 만족도가 높으니 행복 지수도 올라간다. 그 사이 아이들이 많이 커서 더 이상은 예전만큼 그렇게 뛰어 놀지는 않지만, 우리 아이들마음추억가득 채워 마음 부자가 되게 한 것은 아파트 시세 상승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우린 이 집에 오면서 시간과 자유를 샀다. 무엇을 해도 누구의 제약을 받지 않은 자유와, 아이들의 유년기를 맘껏 즐기는 시간을… 지금은 점점 노후화되고 있는 집이지만, 마음은 점점 풍요로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파트값이 점점 치솟고 있는 지금, 나의 집값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지 못해도 마음이 불안하지만은 않다.

더더욱이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내 아이에게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 잔소리 안 하고 마음껏 뛰어놀라고 할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들은 정말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큰다. 계절이 그리 바뀌었어도 위에 언급한 놀이들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애들이 훌쩍 커 버린 것이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아파트 값에 연연하며, 아이들 뛰지 말라 하지 말고 생각을 바꿔 이사했으면 좋겠다….

이것저것 많은 제약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 이 집에서 내가 몸소 겪어보니 꼭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망설이고 있다면 아이들의 행복과 나의 자유를 위해 빠른 결정부터 하길 바란다. 정말 생각의 힘은 크다. 그 생각대로 되어가는 그 기쁨을 꼭 누려보길 바란다.


이전 15화 단독주택 10년(가을) - 가을 타는 아줌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