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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Jul 05. 2019

보통의 상실, 보통의 트라우마

[넷플릭스로 쓰기] <기묘한 이야기> 시즌 1, 2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실과 트라우마의 이야기였다. 윌의 실종과 그로 인해 모두에게 생긴 트라우마, 그 원인이 된 엘과 엘의 트라우마, 엘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트라우마. 드라마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대부분 트라우마로 인식되고, 계속해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공간이 기억이고, 기억이 상처라면, 공간은 곧 상처였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의 주변인들과 트라우마를 겪은 당사자의 반응이 아주 다른 건 정말 현실적이었다. 아무리 가까이서 일을 함께 헤쳐나가도,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직접 경험한 사람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니까. 후자는 전자에게 “It’s time to move on.”이라고 말하지만, 전자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이미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까.


 사실, 대부분의 경험이 그렇듯, 경험을 가진 사람은 그저 이를 넘겨 버릴 수 없다. 그 경험으로 완전히 변해 버린 몸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 경험과 함께 살아내야 한다. “Can’t just move on, I can just move with it.” 누군가는 “돌아오길” 바라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생각은 사치에 불과하니까. 심지어 관련 있는 사람의 가족임에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평온하고 태평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정말 너무 현실적이었다.


 사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말 마음에 드는 드라마다. 음악과 패션, 동네의 분위기까지 80년대 초반 미국을 너무나 완벽하게 구현했다. 새로운 사고보다는 재밌는 소재를 몇 개 얻은 것 같다. ‘뒤집힌 곳’이라고 번역한 ‘the upside-down’의 분위기는 게임 ‘Dead by Daylight’를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그곳은 현실을 그대로 복사해 놓은 공간인데, 대신 현실이 완전히 황폐해져 있다. 아무도 없고, 모든 게 썩어 있다. 땅굴은 그 거대한 괴물의 내장 같았다.


 거대한 괴물은 두 세계에 겹쳐 있었다. 뒤집힌 곳은 악 그 자체였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선하지도 않았다. 뒤집힌 곳의 괴물은 마치 ‘Dead by Daylight’에 나오는 엔티티(the Entity) 같았다. 순수한 악 그 자체, 고통을 잡아먹고 사는 존재. 현실은 분명 그런 악에 지배당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의 권력은 수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다. 현실의 사람들은 서로를 해치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선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뒤집힌 곳과 현실의 차이는 전자가 확정적이라면 후자는 불확정적이라는 점이다. 전자는 오직 한 명의 거대한 괴물에 의해 조종되고 파괴되며 이를 양적으로 확장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세상이고, 후자에는 그런 본질이 없다. 현실에는 아무런 본질이 없다. 다만 다양한 삶이 부대끼며 소란스럽게 살아갈 뿐이다. 거기서 생기는 상처, 예측 불가능함, 치유, 변화는 하나의 본질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빗나가는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런 면에서 ‘이상한’ 존재가 이상한 그대로 존중받는 장면들이 등장한 것도 좋았다. 주인공들은 ‘freak’, ‘creep’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는 오히려 정말 자신이 괴물이라고 느낄 때 “그래, 괴물이면 뭐 어떤데?”라는 말을 하고, 듣고, 수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대단한 것도 이뤄내지 못하지. 그래, 조나단이 이야기한 것처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야말로 ‘totally freak’이었으니까.


 뒤집힌 곳으로 가려면 나도 뒤집힐 수 있어야 한다. 줄 위를 타는 곡예사는 줄을 거꾸로 타려고 하면 떨어지지만, 줄 위의 벼룩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곡예사보다는 벼룩이 더욱 다양한 세상을 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뒤집힌 곳’과 ‘곡예사와 벼룩’이라는 비유적 표현은 너무나 적절했고, 또 의미심장했다. 우연하게도, 내가 네이버에서 사용하는 블로그의 이름은 “Acrobat on Borders”, 별명은 “줄 위의 광대”다. 소개는 “곡예사가 되고 싶은 광대.”


 나는 곡예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게 같은 기준에서 실력을 키우기보다 아예 다른 관점을 바꾸는 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비유는 고수가 아닌 괴짜를 바라보게 한다. 이 뒤집힌 곳을 파악하고 마을을 구한 건 괴짜들이었다. 괴짜들의 사고방식이었다. 단지 뒤집힌 곳을 발견한 것만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생기든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게임과 소설, 과학 지식을 총동원해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보려고 하는 귀여운 괴짜들의 완벽한 승리.


 각 인물을 자세히 그려서 캐릭터를 살리면서도 중심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질질 끌지도 않는 전개가 너무 좋았다. 다음 화를 안 볼 수 없도록 에피소드를 끊어 내는 고단수의 악랄함까지! 내가 이토록 모든 인물에게 이입한 드라마가 또 있었을까. 너무 복잡하지 않으면서 감정선은 잘 그려내고, 떡밥도 적당히 뿌리고 제대로 회수하는 솜씨가 정말 탁월하다. 시즌 3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인물들이 어떻게 변할지,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이 괴짜들은 또 어떤 웃긴 일들과 기발한 일들을 해낼지 너무나 기대된다.


* 브런치 작가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시즌3이 업데이트되었다. 조만간 다 보고 그걸로도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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