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쓰기] <러브, 데스, 로봇> 중 '세 로봇'
인간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로봇들은 무너져 내린 세상을 관찰하고 구경한다. 인간형 로봇 둘과 피라미드처럼 생긴 각진 로봇, 성격도 다르다. 그러나 데이터로 충분히 남아 있을 법한 인간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관찰한다는 설정은 조금 과하다. 물론 설정의 의의가 없지는 않다. 특히 식당에서 인간의 식사와 소화 원리를 설명할 때는 마치 한국 문화를 문화기술지로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드라마에 나오는 로봇의 기능 수준을 고려할 때, 인간과 문화를 그렇게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왜 그렇게 했는지 목적은 알겠으나, 설정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집중이 조금 깨진다고 해야 하나.
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것이 꼭 다른 새로운 주체를 세움으로써만 시도되는가? 그런 대부분의 상상은 이 에피소드에서처럼 처참히 실패한다. 로봇중심주의는 인간중심주의를 중심으로 상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심’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해서 어색한 바로 이 문장처럼 이상해진다. 인간을 낯설게 보기 위해서 인간이 모두 멸종된 세상 속 로봇의 관점을 상정한다는 건 한편으로 굉장히 절망적이다. 인간은 생존하는 한 자신을 낯설게 볼 수 없는가? 인간의 자기객관화 능력은 그토록 처참한가? 슬프게도 폭탄 앞에서 로봇들이 나눈 대화에는 깊이 공감된다. 인간은 자기들이 사는 세상을 말아먹을 정도로 한심하다. “남근을 연상시키는” 폭탄 몇 개에 의해 세상이 망한다는 것도, 인터넷 용어를 사용하면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그래, 솔직해지자. 인간은 자기객관화 능력이 없다.
그래도, 그래도! 최소한의 희망은 언제나 남겨두고 싶어서, 사람의 각본으로 저런 결과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로봇이 저렇게 판단하고 이야기한다면 어떨지 몰라도, 사람이 먼저 인류에 대한 희망을 놓고 이토록 무너져 내린 세상을 그리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만약에 인류가 자기객관화와 반성, 변화에 실패한다면 저런 미래가 올 것이라는 경고로 이 영화를 이해한다면, 그저 씁쓸하게 자판기에서 비타민 음료나 한 개 뽑아서 흡입구멍에 쏟아붓고 싶어진다. 그런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이라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저런 각본을 만들지는 않으련다. 인류의 멸망과 한심함을 내 손으로 선고 내리고 싶지는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