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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Sep 08. 2020

<난치의 상상력> 소개

서평, 추천사, 책 소개.

링크를 모아서 올리려면 블로그가 제일 편해 보여서 브런치에 링크 모음 글을 올립니다. 매체에 업로드된 것들을 위주로 올리되, 블로거 분들이 써 주신 것 중에서도 몇 개를 골라서 링크를 걸어 보려 해요. 계속 업데이트할 예정이며, 링크트리 링크를 사용하여 다른 링크들과 한데 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글들만 링크를 가져오고 있지만, 지워 달라는 연락을 받을 경우 바로 반영하려 합니다. 댓글이나 이메일로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8월 초에 출간되어서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브런치에도 이렇게 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올립니다. <난치의 상상력> 많이 읽어 주세요! 구매는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반디앤루니스 등의 서점에서 가능합니다.


* 레드 어워드 <주목할 만한 담론> 수상

* 문화일보 2020 올해의 책 후보

* 알라딘, 대한적십자사 2021 올해의 인도주의 도서 후보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년도 3차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수필 분야> 선정 



서평


- [서평] 경계에 선 몸이 미끄러지는 순간, 우리는 춤을 추겠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배우로 함께한 홍수영의 서평입니다. 그가 연극을 연습하는 과정에 대해 일다에 기고한 글, 그리고 제가 그의 연극의 배역을 연습하며 쓴 글을 함께 읽으면 더 몰입하며 읽을 수 있는 서평이에요.

- 질병·장애를 둘러싼 사회를 깊이 바라보길

장애인 언론 에이블뉴스에서도 제 책을 다루어 주셨습니다. '아임뚜렛'을 통해 본 장애에 대한 동정의 시선, 이동권의 확장, 질병의 정치적 활용을 중심으로 깊이 써 주신 감사한 서평입니다.

- 무쇠 같던 몸이 골골, 세상은 엄살이라고…‘아픈 20대’의 삶
경향신문 토요판에서 커버스토리로 저와 <천장의 무늬> 저자 이다울 작가님의 대담을 기획해 주셨습니다. 젊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와 질병권 담론을 다루어 주신 감사한 기사입니다.

- 안희제 “아픈 청춘입니다만, 살아 있습니다”

채널예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 더 많은 ‘아픈 몸’의 언어가 필요하다

한겨레에서 지면을 크게 할애해서 써 주신 서평입니다.

- 정상과 비정상이 교차하는 전쟁터…한국 사회에서 장애란

경향신문에서 <'장판'에서 푸코 읽기>와 <난치의 상상력>을 묶어서 소개해 주신 기사입니다.

- 장애·비장애 사이 ‘아픈 청춘’이 따져본 세상

국민일보에서 써 주신 서평입니다.

-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런 청춘'은 없습니다

한국일보에서 써 주신 서평입니다.

- 질병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게 불행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민준 기자님의 서평입니다.

- 알라디너TV 라이브

2020년 11월 4일, 알라디너TV와 라이브로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으로 접근성을 보장하고자 했는데, 문자통역에 다소 에러가 있었습니다. 위 링크를 들어가시면 전체 문자통역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요.

- [이진송의 아니 근데]‘건강한 몸’이 기본값이라는 환상, 그런 몸은 사실 아주 드물다

계간홀로 발행인 이진송님이 제가 배우로 참여한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보고 써 주신 관람평입니다. 서평은 아니지만, 중간에 <난치의 상상력>을 언급하시면서 연극과 책의 맥락을 엮어서 소개하고 계십니다.

- 장애인 현실과 동떨어진 광고 만든 SK텔레콤

서평은 아니지만, AP신문에서 저와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최근 SK텔레콤의 광고에 관해 써 주신 기사입니다. <난치의 상상력>에서는 KT와 삼성의 '장애 마케팅'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것의 연장선에서 함께 읽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련하여 유튜브 채널 <취재대행소 웽>에서도 영상을 만들 때 인터뷰에 참여하였습니다.

- 난치의 상상력 &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월간 윤종신에서 제 책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제가 크론병 진단을 받았을 때 크론병을 검색하다가 윤종신 씨가 크론병 환자라는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반갑고, 제 글이 힘이 될 수 있으면 합니다.

- 0827(목) 코로나 위기 속 의협 파업, 갈등 해결은? – 송문희, 전예현, 박진아, 박은지

KBS라디오 <정용실의 뉴스 브런치>에서는 성북구의 책방 '부비프(@buvif.bookshop)'의 박은지 대표님이 10분 정도로 길게 책의 내용을 다루어 주셨습니다. 38분 30초부터 시작합니다.

- [돌멩생각#3] 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사회문제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알 Studio R>에서 <난치의 상상력>을 읽고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 『난치의 상상력』 안희제 ‘난치의 균열 속에서 세상을 보는 방법’

서점 반디앤루니스의 <책과 사람> 코너에 저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인스타그램에도 있어요.

- 난치의 상상력, 질병과 장애 그 사이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서점 반디앤루니스의 네이버 블로그에서 서평을 실어 주셨습니다. 서평을 써서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 등에 업로드하는 Schwester(@han_d_2020)님이 블로그에 써 주신 글이 원본입니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X [난치의 상상력]

서평을 써서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 등에 업로드하는 히삐엘(@hipiele_books)님의 서평입니다. 책의 감상에서 나아가 왜 김초엽 작가님이 <난치의 상상력>의 추천사를 써주셨는지도 고민해 주신 사려 깊은 글이라 더욱 감사했습니다.

- 어린 시절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청년 이야기

YES24에 올라온 '히읗'님의 서평입니다. 이 서평은 인스타그램의 #난치의상상력 해시태그에서 먼저 읽었는데, 업로드할 때 사용한 사진의 설명으로 시작하는 글입니다. 자신과 가족의 아픈 이야기, 그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 [사회] 난치의 상상력

'두목'님의 브런치, 네이버 블로그 및 온라인 서점들에 올라온 서평입니다. 책을 쓰면서 독자들이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꺼내게 되길 바랐는데, 이런 글 하나만으로도 책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소중한 글입니다.

- 담롱의 인터뷰 영상

유튜브 채널 <담롱>에서 자연스러운 대화 형식의 인터뷰, 그리고 통상적인 형태의 인터뷰를 하나씩 준비해서 영상을 제작해 주셨습니다. 주로 한국 사회의 건강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봄날, 제주의 서재 큐레이션

제주시의 동네책방들이 각자 책을 한 권씩 골라서 소개하는 큐레이션 프로젝트 중 '아무튼책방'이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난치의 상상력>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 시사인 '죽음의 미래' 기획

기사 "[특집]‘죽음의 미래’- ②‘아픈 몸’을 거부하는 사회에게"와 영상 "유방암·크론병·근육병 환자가 말하는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 | 죽음의 미래 ep.2"에 인터뷰이로 참여하여 책의 메시지를 공유했습니다. 본 기획은 책으로도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 KBS 다큐 인사이트 <마이크로바이옴>

크론병 환자로서 장내 미생물과 자가면역질환을 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짧게 출연하였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다소 아픈 사람에 대한 편견이 많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번쯤  만합니다.

- 서울문화재단 <2021 같이 잇는 가치> 

‘기술과 장애의 불안한 동행’을 주제로 하는 이번 라운드테이블에 “텍무새가 떴다” 챕터에서 언급한 ‘감각 통역(번역)’을 키워드로 함께하였습니다. 관련한 문제의식은 최근에 배리어프리 웹툰에 관해 쓴 칼럼으로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본 영상의 요약본리뷰도 있으니 접근성과 관련하여 고민을 나누고자 하는 분들은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추천사


세상은 수많은 구분선을 긋고 우리 대부분은 그 어딘가에 속하기를 욕망한다. 그러나 어떤 존재들은 그 구분 자체를 무너뜨린다. 자신을 만성질환을 가진 ‘아픈 청춘’으로 소개한 안희제가 바로 그 경계인이다. 그는 장애와 비장애 사이, 평범한 청춘에서 비켜선 몸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의 글은 복잡한 것을 오직 복잡하게 사유할 때만 이 명료함의 폭력이 끝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의 첫 책을 늘 기다려왔다. 이 사려 깊은 이야기들이 필요한 곳까지 더 멀리 가닿기를 바란다. - 김초엽 (소설가)   


만성질환자 혹은 장애인임을 인정하는 일은 신체 기능에 제약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낮은) ‘신분’에 소속되는 일이다. 허나 저자는 기꺼이 그 신분 공동체로 뛰어들어 언어를 찾고, 나아가 이 ‘신분 공동체’를 확장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 책은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건강이라는 사회적 담론으로부터 구체적인 질병의 경험을 지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반갑고, 아름답다. - 김원영 (변호사)


한국 사회에서 청년의 몸과 장애인의 몸은 상극의 이미지다. 청년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자유로운 주체의 몸이며 장애인은 설령 돈이 많더라도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주체가 될 수 없는 몸이다. 청년이며 만성 희귀 질환을 가진 저자의 몸에서 이 모순들이 충돌한다. 그는 우리에게 타인과의 협력을 도모하며 자신의 몸을 배려하는 존재가 될 것을 요청한다. 코로나로 모두가 부자유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우리에게 자유와 주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엄기호 (사회학자, 『단속사회』『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저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그의 첫 책을 늘 기다려왔다.
이 사려 깊은 이야기들이 필요한 곳까지 더 멀리 가닿기를 바란다.”
김원영, 김초엽, 엄기호 추천!


크론병으로 투병 중인 20대 청년이 써내려간 ‘청춘 고발기’이자 아픈 몸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날카로운 보고서다. 저자의 몸은 청춘과 나이듦, 질병과 장애, 정상과 비정상이 교차하는 전쟁터다. 사람들은 아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자를 의심하며 장애인 옆에서는 ‘비장애인’으로, 비장애인 옆에서는 ‘장애인’으로 대했다. 겉으론 건강한 20대 청춘이지만 정작 저자의 몸은 늙고 나이든 노인의 몸을 닮았다. 청춘이지만 청춘이 아니고, 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몸, 멀쩡한 면역 수치를 억지로 낮춰야 하는 비정상의 몸. 이 책은 사회가 정의한 어느 곳에도 들어맞지 않는 바로 그 몸에서 비롯했다. 저자는 “아파도 청춘이다”라는 윗세대의 게으른 충고를 일갈하는 것을 넘어 “그런 청년은 없다”고 말하며 경계 자체를 부숴버린다. 질병과 장애를 없애야 할 것, 어서 빨리 교정해야 할 것으로 다루는 한국 사회의 폭력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이 책은 사회가 규정한 청춘에 맞춰 자신을 무장하는 청년들에게는 가슴 벅찬 해방감을, 아픈 몸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감각을, 건강한 이에게는 아픔과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스물여섯, 첫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밀도 높은 성찰과 막힘없는 사유를 보여주는 완성형 작가의 탄생! 저자만의 사유의 파동, 성찰의 맥박을 함께 뛰는 일은 우리가 청춘이라 부르는 것보다 더 격동적인 읽기가 될 것이다.


질병과 장애, 청춘과 나이듦, 정상과 비정상
이분법의 폭력을 깨부수는 새로운 경계인의 탄생!

가장 찬란해야 할 스무 살의 여름, 저자는 발음조차 낯선 크론병을 진단받는다. 면역계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과잉 면역 반응을 일으켜 소화기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염증이 생기는 희귀병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늘었고 수시로 몰려오는 통증에 조퇴와 결석을 반복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수술, 지리멸렬한 요양, 그리고 외로움이 스무 살의 전부였다.


그러나 아픔은 자주 묵살되었다. 사람들은 휠체어 같은 보장구를 하지도,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 저자의 몸을 비장애인의 몸과 동일시했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저자에게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시기를 강요하거나 군 면제를 받은 저자를 건강한데 군대까지 안 가는 ‘신의 아들’이라며 비아냥댔다.


정체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저자가 오래 일했던 장애인권동아리의 회장으로 출마한 날, 저자는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료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사람들은 저자를 장애인 옆에서는 ‘비장애인’으로, 비장애인 옆에서는 ‘장애인’으로 변덕스럽게 취급했다. 한 노인으로부터 ‘젊으니 금방 나을 것’이라는 무례한 훈수를 듣거나 상대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자신이 사실은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걸 설득해야 했다. 청춘이지만 청춘이 아니고, 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몸, 멀쩡한 면역 수치를 억지로 낮춰야 하는 비정상의 몸.


이 책은 사회가 정의한 어느 곳에도 들어맞지 않는 그 몸에서 비롯했다. 저자는 명확한 소속이 없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말한다. 질병과 장애, 청춘을 응시하는 저자만의 독특한 사유는 사회가 휘두르는 이분법의 횡포 사이, 그 좁은 틈을 비집고 태어났다.


1장은 질병이 저자에게 불행이었던 이유를 추적한다. 이를 위해 건강했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사람들은 아프면 불행할 것이라고 쉽게 치부하지만 질병이 불행인 데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저자는 편견의 바닥에 있는 그 무엇을 집요하게 쫓아간다.


2장은 사회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정말 정의로운지 묻는다. “아파도 청춘이다”라는 윗세대의 게으른 충고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그런 청년은 없다”고 말하며 경계 자체를 부숴버린다. ‘청년’이란 단어로 간편하게 뭉개지는 문제들을 낱낱이 들춰내고 나아가 ‘청춘’이라는 단어의 순수성을 의심한다.


3장과 4장은 타인의 몸을 함부로 의심하는 사회와 약자에게 질병과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를 아픈 사람의 위치에서 해석하고 비판한다. ‘질병’과 ‘장애’가 세상을 인식하는 새로운 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저자의 시도는 우리에게 인식의 도구로서 ‘몸’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5장은 저자가 질병을 고백하게 된 계기와 그치지 않고 아픔을 외치는 이유를 썼다. 저자는 염증과 고통의 기록을 남기고 신음을 내뱉길 주저하지 않는다. 글과 말로 아픔을 이야기하는 자신의 행동이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을 돌아보고, 이를 표현하는 시작이 되길 바랐다. 저자의 말처럼 “몸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가 모인다면, 세상은 흔들릴 것이다.”


스물여섯, 첫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이 바짝 선 성찰과 예민한 감각이 책 곳곳에 녹아있다.


2019년의 겨울부터 올 여름의 초입까지, 짧은 시간 내 이 정도로 밀도 있는 글을 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저자가 이미 자신만의 사유와 이야기로 중무장한 완성형 작가임을 증명한다. 경계와 차별, 배제가 난무하는 사회, 그 모든 구분과 분할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저자가 우리 곁에 도착했다. 저자만의 사유의 파동, 성찰의 맥박을 함께 뛰는 일은 우리가 청춘이라 부르는 것보다 더 격동적인 읽기가 될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도둑맞은 청춘’을 이야기하다!

밀레니얼 세대, 힙스터, 포노사피엔스... 이름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건 단 하나, ‘청춘’이다. 청춘은 시대에 따라 얼굴만 바꾼 채 청년들을 테두리 안에 가둔다. ‘건강’, ‘젊음’, ‘열정’ 등 청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은 그 좁은 원에서마저 추방된다. 스무 살의 여름, 크론병이라는 희귀 질환을 진단받은 저자는 청춘의 첫 번째 기준인 ‘건강’에서 탈락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청춘에 합격하고 싶어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열정’ 넘치는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아픈 몸으로는 계속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장애학을 만났다. 영영 낙오되었다고 생각한 저자에게 장애학은 몸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가 되었다. 그제서야 보였다. 청춘의 폭력이 말이다.

최근 청년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열쇳말은 ‘헬조선’이었다.(...)‘3포’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는 연애, 결혼, 출산에서 이득을 얻는 이를 청년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데이트 폭력과 경력 단절의 위험에 놓인 한국 여성들은 그런 의미에서 청년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p. 24-25

우리가 무책임하게 ‘청춘’을 말할 때 그림자처럼 가려지고 아예 자리조차 없던 존재들이 있다. ‘여성’과 ‘아픈 몸’이다. 자신을 괴롭히던 압박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간 저자가 맞닥뜨린 청춘의 얼굴은 ‘건강한 남성의 것’이었다.


청춘은 또한 기만이었다. 인턴 자리조차 구하지 못한 친구들은 취업에 성공한 친구를 초조한 표정으로 부러워했다. 휴학을 앞둔 친구는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두려워했다. 건강했다면 저자 역시 취업 준비에 매진하거나 유예된 시간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아픈 몸은 청춘이란 화려한 포장에 가려진 진짜 청년들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청춘의 낭만 뒤에는 값싼 노동력으로 청년들을 사용하려는 시장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저자는 소속 없는 삶, 돈을 벌지 못하는 기간을 두려워하는 청년들의 불안에서 그들을 착취하는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를 정확히 간파해낸다. 한 번도 오롯이 청년들의 것인 적 없던 ‘청춘.’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몸, 소속 없는 이들이 말끔히 청소된 자리에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무장하는 청년들만이 남았다. 그래서 그 구조에 들어가길 당당히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의 속도로 살겠다는 저자의 외침은 착취 사회의 힘줄을 끊는 날선 칼처럼 번뜩인다.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에는 ‘삶의 속도’라는 개념이 나온다. 사회는 정상적인 삶의 속도를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그 속도에 맞지 않는 사람은 경주에서처럼 뒤처지게 된다.(...)‘비정상’과 ‘정상’이 공존하고 둘이 잘 구분되지 않는 애매한 인간인 나는 ‘청춘’이 아닌 ‘아픈 청춘’으로 살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생존하기 위해 좀 느리고 아파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아프지만 살아있고, 아프게 살 것이다. p. 26

묘한 희열과 가슴 벅찬 해방감. 저자의 글이 파도처럼 몰고 오는 감정들은 이 글을 읽는 청년들로 하여금 청춘이라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스스로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건강한 사람만 아픈 사람 돌볼 수 있나요?
“우리는 모자母子가 아니라 환우患友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새로운 가족의 탄생!

그동안 대부분의 돌봄은 여성의 몫이었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딸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돌보는 익숙한 지옥이 반복됐다. 그런데 책엔 아픈 아들인 저자를 간호하는 어머니가 나온다. 자녀의 건강을 엄마의 책임으로 규정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저자의 어머니는 아픈 자식을 낳았다는 추궁까지 받아야 했다.

어머니에게는 죄책감이 먼저 엄습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아프면 어머니는 그것을 본인의 잘못으로 느꼈다.(...)어머니는 본인이 아프고 바빠도, 내가 아프지는 않을지, 죽지는 않을지 끝도 없이 걱정했다.(...)어머니는 성차별로부터 죄책감만이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트라우마도 함께 받았다. p. 19

그러나 어머니도 아픈 사람이었다. 크론병을 가진 아들과 메니에르병을 가진 어머니라는 기묘한 관계는 가족을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게 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종기를 달고 살았다. 크론병 진단 후 종기로 고생하던 저자에게 어머니는 그간 쌓아온 자신만의 지식을 나눠주었다. 반대로 어머니가 농양 수술로 힘들어하자 먼저 치료를 받은 저자가 어머니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가족으로서의 걱정을 넘어 아픈 사람들끼리의 공감과 이해가 반짝이던 순간, 저자는 서로의 눈을 맞추며 질병을 이야기하던 어머니와 자신을 ‘모자母子’가 아닌 ‘환우患友’였다고 회상한다.


저자가 상상하는 ‘환우 가족’은 새로운 종류의 돌봄이다. 건강하고 젊은 사람만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몸을 돌볼 수 있다는 편견을 전면으로 반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되던 아픈 이야기가 유용한 지식으로 거듭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메니에르병을 가진 저자의 친구들은 어머니에게 먹어선 안 될 것과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건강한 친구들은 배가 아프면 저자에게 연락해 조언을 구한다. 저자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는 뜻의 ‘식구’가 가족의 유의어가 될 수 있다면 아픔을 나누고 서로 돌보는 ‘환우’ 역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저자가 모자가 아닌 환우끼리의 즐거운 질병 수다를 나누고 있을 때, 뻘쭘한 얼굴로 둘의 대화를 엿듣는 아버지의 모습은 건강 중심 사회에 ‘환우 가족’이 몰고 올 유쾌한 반격처럼 보인다.


“너 정말 아픈 거 맞아?”
건강이 권력인 세상의 기울어진 운동장!
‘헬스 플레인’은 단호하게 사양합니다

저자는 스물여섯의 청년이고 그의 희귀병은 겉으로 봐선 티가 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어딜 가나 아픔을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자주 의심받았고 고통은 사소한 것으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질병을 노화와 연결 짓는 빈곤한 상상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을 꾀병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낳은 비극이었다. 젊으니 금방 이겨낼 수 있다는 말, “안 아파보이는 데 왜 그래?” 같은 친구의 물음 등은 공감이나 응원이 아닌 비하에 가깝다. 저자는 이렇게 타인의 아픔을 존중하지 않거나 쉽게 넘겨짚는 행위를 이른바 ‘헬스플레인’이라고 말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르는 ‘맨스플레인’처럼 ‘헬스플레인’은 건강이 권력인 세상에서 아픈 이들이 수시로 당해야 하는 횡포다.


“안 아파 보여서 미안해.” 평범하게 살기 위해 애써 건강한 척 해야 했던 저자의 심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한 만성 희귀 질환자가 쓴 일기에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프단 걸 믿지 않을까 봐 두려워 더 강한 척을 했고 자신 때문에 눈치를 볼 이들에게 미안해 일부러 아픔을 농담거리 삼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처럼 가시화되지 않는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꾸며내야만 하는 이런 행위를 주류에 부합하도록 억지로 연기하는 ‘커버링’과 연결 짓는다. “충분히 아파 보이는 것은 어떤 것인가.” 저자의 질문은 ‘건강 권력’을 가진 자와 아픈 몸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아픔이 과하게 대접받기도 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구속 수사 중 지병이 있다는 게 알려지자 여론은 그를 동정하며 검찰을 비난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연민 역시 질병과 장애는 불행하고 약한 것이라는 편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픈 사람을 주체가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만 축소하기 때문이다. 엑스트라와 다름없는 ‘깍두기’와 마찬가지다. 아픈 사람에게 쏟아지는 지나친 배려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성원권조차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저자는 비질환자, 비장애인이 아픔에 대한 편견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바탕에는 그들이 언제든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는 점도 날카롭게 일갈한다. 사람들은 신체가 불편한 지체 장애인, 극적인 증상의 환자 앞에서 ‘취급 주의’라고 써진 택배를 다루는 것처럼 자주 조심스러워 한다. 발 벗고 도와주는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픈 사람을 대하는 우리들의 의심과 보호 사이, 그 미묘한 간극에 있는 감정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위선을 벗겨낸다. “타인의 몸을 의심할 권리는 없다.” 글의 마지막 문장이 얼굴을 부끄럽게 한다.


내 ‘징징거림’이 누군가의 첫 마디가 될 수 있게
우리에겐 더 많은 ‘질병 언어’가 필요하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개설한 모든 SNS에 아픈 이야기를 쓴다. 대화 주제로 질병을 꺼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크론병은 소화기 질환인 탓에 소재는 주로 피와 땀, 배설 같은, 사람들이 더욱 꺼리는 것들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고통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건강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던 시절, 저자 역시 페이스북 친구가 끈질기게 올려대는 투병기가 괴로워 관계를 끊어버린 적 있다. 그러나 곧바로 후회했다. 아픈 이야기를 차단하는 그 행위가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건강 중심 주의의 재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가 왜, 어떻게,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종종 포스팅할 생각이다. 단순히 고통의 전시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내 징징거림이 주변의 아픈 누군가가 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 p. 276

화장실에 몇 번 갔는지, 증상이 어땠는지부터 짜증과 슬픔 같은 감정들까지 질병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최대한 진솔하게 고백했다. 성실한 기록의 뒤에는 ‘건강’만이 넘쳐나는 세상에 고통의 언어로 균열을 내고자 한 치열함이 있었다. 저자는 또한 자신의 ‘징징거림’이 아픔을 감춰야했던 누군가의 안전망이 되길 바랐다. 건강의 언어만 남기고 질병의 언어는 삭제해 버리는 건강 중심 사회에, 비질환자와 비장애인의 세상에, 염증과 상처의 기록을 남기는 이런 행위를 저자는 ‘질병 세계의 언어를 풍부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질병과 장애에 대한 침묵과 회피, 터부가 오래 이어진 탓에 질병 세계의 규모는 좁고 작았다.


아픈 이야기를 차단하는 분위기 속에서 질병과 장애의 경험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질병에 대한 지식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할수록 약하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가려졌던 존재들이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아가 비질환자, 비장애인이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 의존할수록 연결은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아프면 끝장이다”, “믿을 건 내 몸 하나”라는 구호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다른 이와 연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픈 이야기가 일상의 언어로 자리 잡은 ‘질병 세계’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싶다고, 이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더욱 안전하게 함께일 수 있다.”


이 책은 아픈 청춘이 써내려간 몸에 대한 기록이자 질병과 장애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관찰하고 비판한 보고서다. 저자는 전 세계가 코로나를 물리친 K-방역을 찬양할 때 소리 없이 죽어가던 장애인과 기저질환자들, 청각장애인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주겠다며 함부로 장애를 교정하려 든 KT,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를 둘러싼 논란, 박원순 서울시장의 휠체어 ‘체험’ 등 ‘비정상’의 몸을 없애거나 치료해야 할 것으로만 다루는 한국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저자에게 정상과 비정상이 교차하는 전쟁터인 ‘몸’은 건강 만능 사회에 맞서 싸우는 탁월한 무기였다. 이 책은 아픈 이에게는 자신의 몸이 언어로 탈바꿈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감각을, 건강한 이에게는 아픔과 함께 사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건강한 몸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건강만능사회에 저자가 힘주어 내리친 ‘난치의 균열’이 우리 사회에 낼 새로운 파열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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