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룩 Jul 08. 2019

그림을 갖고 싶어서

매일 한 편씩은 써 보기로 결심했다

    소중한 친구와 종일 놀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모두 돌고 맛있는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내내 마음에 하나가 걸린다. 이번 전시에서 박서보라는 화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다양한 작품을 그렸지만, 커다란 캔버스에 수직선이 가득하고, 거의 단색으로 채워진 추상화들은 나를 거의 빨아들였다.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들에 빨려들어갔을 때와 얼핏 비슷한 느낌, 그때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황홀했다. 같이 간 친구도 그 작품들이 괜찮다고 얘기했지만, 아주 섬세하고 예쁜 그림을 좋아하는 그와 색, 패턴, 배열에서 매력을 느끼는 나의 차이는 어디서 왔을지 내내 궁금했다.


    오늘처럼 나를 황홀하게 하는 그림을 본 날에는 어김없이 '화방'을 검색해서 화구 아이 쇼핑에 열중한다. 진짜로 산 건 한 번뿐이고, 그때 산 아크릴 물감마저 몇 년째 남아 있다. 아주 어릴 때, 너무 어려서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도 않은 때에 내가 그렇게 그림을 잘 그렸다더라. 네 살인지, 그때 내가 그렸다는 꽃 그림을 보고는 지금의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께 타블렛을 선물받아 컴퓨터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맘에 드는 그림도 몇 개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 그림은 학창시절에 잠깐씩, 그리고 대학에 올라와서 몇 번만 그려 보고는 접었다. 타블렛도 많이 낡았다. 


    그런 다음에는 학교 수업 때문에 사 두었던 남은 물감과 붓을 찾아서 그걸로 이것저것 그려 보려고 시도하곤 했다. 대체로 처참하게 실패했다. 구석에 있던 스케치북도 다 써서 남은 게 없고, 종이를 중요시하지 않아서 A4 용지, 이면지, 심지어는 누런 화일에까지 붓을 대기 시작했다. 역시 아주 조금이나마 맘에 드는 몇 개를 빼면 이제 어디에 보관 중인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스케치북도 새로 사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생각보다 아주 약했던 거겠지. 그리고 한 동안 나는 그림이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가 오늘이 온 거지.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은 사실 사고 싶은 액자가 너무 비싸다는 아주 간사한 이유에서 생겼다. 98,000원이라니. 박서보 작가의 그림이 나를 아무리 황홀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저만한 돈을 지불할 여유는 없었다. 도록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항상 보이게, 내 방에 두고 싶었다. 그 그림이 계속 내 눈에 들어와서, 계속 내 손에 치여서, 계속 내 책상 위에서 나를 노려봐서 급기야는 나의 일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수직선들이 가득히 캔버스를 채우고, 빈틈 없이 빨간 그 거친 그림이 나의 일부가 되길 바랐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98,000원은 나의 성장에 쓰기에 너무 비쌌다. 그거면 한 달 교통비를 다 내고도 남으니까. 


    그래서 아예 직접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캔버스를 사서 그려도 그 비싼 액자 안에 담긴 그림보다는 클 테니까. 입체감도 있을 것이고. 비록 박서보가 아닌 벼룩이 그린 그림일 뿐이겠지만. 그러나 아무리 벼룩이라도 뭔가를 그리려면 최소한 물감과 붓, 종이는 있어야 할 텐데 방에는 용량이 매우 큰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흰색의 아크릴 물감과 장식용 돌, 망가지기 직전의 붓밖에 없으니 화구를 사야지. 그리고 쇼핑은 즐거운 일이니까. 행복한 소비자본주의 만세


    다 담아 놓고 보니 5만 원이라 결제는 못했고, 아마 주문하더라도 많이 빼고 주문할 것 같고, 사실 자고 일어나면 잊을 것 같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게 아니라 그림을 갖고 싶은 거니까. 내 방에 멋진 추상화를 하나 두고 싶다는 생각뿐이고, 장식용으로 만들어지는 말레비치 그림을 사려고 해도 몇 만 원이 드니까 나는 싼 값에 그런 그림을 많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아마 깨닫겠지,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붓을 들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걸. 화구를 다 주문하더라도 나는 붓을 들면서 깨달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망할 것이라고. 최소한 내가 글을 쓸 때 쏟는 마음만큼은 써야 쓰레기를 겨우 면할 수 있을 거라고. 


    다음에는 그림을 갖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절박했으면 좋겠다. 그 절박함이 내가 정말로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의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