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편씩은 꼭 적어 보기로 했으니까
두 사람을 만나고 온 날, 친구이기도 동지이기도 한 이들과의 대화는 항상 절망과 희망 사이 어딘가에 옅은 행복으로 싸여 있다. 외롭지 않다는 그 위태로운 행복. 한 명은 서촌에서, 한 명은 교대에서 만났다. 이 두 장소에 가면 항상 많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유독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낸 곳들에는 그만큼의 내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 점심에 다녀온 딤섬 식당은 저번에 데이트를 하면서 처음 갔다. 조금 늦은 시간에, 배가 고프고 오래 걸어서 힘든 상태로 가느라 정말 멀게 느껴졌다. 맛있지만 양이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안락한 공간에서 함께하는 식사는 즐거웠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는 친구를 기다리며 그날의 데이트를 떠올렸다.
식사 후에 카페를 찾으러 가면서, 근처 카페들에 간 기억들을 더듬었다. 세 군데의 카페, 그중 한 곳은 건축사 사무실로 바뀌어 있었다. 안이 참 예쁘고 디저트도 맛있었는데. 그러다 서촌 거리로 들어갔다. 사방에 나의 시간이 보였다. 생각보다 자주 나는 친구들과 이 동네에 놀러왔구나. 항상 지나치던 케이크 카페에 들어갔고, 4시간 동안 열심히 떠들었다. 입이 아팠지만 즐거웠다. 아마 다음에 이 동네에 가면 오늘 만난 사람과, 오늘 나눈 대화들이 또 사르르 떠오르겠지. 다음 약속 장소에 가려고 나오면서 내가 걸은 동네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뻘짓을 하던 바로 그 거리였다. 다 같은 장소다. 근처 식당에서는 부모님 친구들을 만난 적도 있지.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도, 교대역에 갈 생각을 하니 학원에 가기 가장 편한 승차장으로 발이 알아서 움직였다. 번호도 기억나지 않지만 발은 알아서 그곳을 찾아간다. 나는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타고 핸드폰을 본다. 8월에 시작될 메를로-퐁티 스터디를 준비하며 받은 논문을 읽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신사였다. 이쯤부터 나는 내릴 준비를 하곤 했다. 자다가도 고속터미널이나 잠원에서는 무조건 눈을 떴다. 신기하다. 몸은 3호선과 열차 내리는 시간을 함께 기억하는구나. 몸에게 공간과 시간은 하나일까. 생각해 보면 몸부터가 공간과 시간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장소인 것 같기도 하다.
재수하던 시절에 학원 논술 선생님이 우스갯소리로 해 주신 이야기가 있다. 이 학원을 다녀간 학생들은 대학에 가서도 가끔 귀신처럼 학원으로 돌아와서 주변을 어슬렁거린다고. 처음 그 얘기를 들을 때는 그저 웃겼는데, 돌아보니 내가 그 귀신이더라. 대학에 다니면서 가장 힘들 때 내 발걸음은 저절로 학원으로 향했다. 교대역 5번 출구, 아니면 13번 출구, 내 발은 알아서 움직였다. 오늘도 친구를 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해 놓고 13번 출구 코앞까지 갔다가 돌아왔지. 밥을 먹으러 가면서도 친구와 굳이 학원 앞을 들러서 건물을 구경했다. 밥을 먹으러 가는 중에도 거리에는 친구들이 가득했다. 지금 앞에 없지만, 인사하면 나올 것만 같은 친구들.
저녁을 먹으면서는 주로 지금의 이야기를 했다. 너는 어떻게 사니, 졸업하면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대학원에 가려고, 장학금을 받아야지, 서로 전공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만난 지 오래된 친구들의 이야기, 행정고시/로스쿨/CPA를 준비하는 상투적인 명문대 청춘들의 이야기.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도 우리의 이야기는 추억들로 가득했다. 가장 많은 기억이 겹쳐 있는 교대 운동장으로 갔다. 이제는 사라진 가게들을 떠올리고, 똑같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곳들을 짚어 본다. 똑같이 남아 있는 건 편의점뿐이었다. 나와 친구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집으며 그곳의 추억들을 떠올렸다. 나는 초콜렛을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 주던 기억을 떠올렸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태양의 마테차가 1+1이라며 항상 그 음료수만 사 오던 친구를 떠올린다. 미안해, 내 롤 아이디는 아직 너의 이름이야
오늘 따라 유독 사람이 많은 교대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면서 많은 추억들을 떠올렸다. 벤치에는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자습이 끝나고 술과 과자를 사서 벤치에서 여유를 즐기던 친구들, 그러나 그 여유는 수능과 막차의 노예였다. 구슬 아이스크림이 한 스푼씩 줄어들 때마다 추억은 오히려 더욱 강하게 살아났다. 내가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었지만 지금은 많이 괜찮아진 것 같다는 이야기도, 외출증으로 학원을 탈출해 봉구스 밥버거를 사 먹으며 일탈을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5년 전 혼자 교대와 교대 주변을 걸으며 했던 수많은 상념들이 모두 떠오르기에 시간은 너무 짧았고 사람은 너무 많았으며 여유는 없었다.
근처 파스쿠치로 가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재수학원 동창 모임에 나간 날을 떠올렸다. 파스쿠치에서 만나서 좌식 식당으로 간, 앞에 찌개를 끓이며 내가 만든 수학 문제를 친구들과 풀던, 다 먹고 나서는 근처 설빙에 가서 단체로 빙수를 퍼 먹던 날. 친구도 그날을 기억했다. 야간반으로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응원하는 자리였다. 나는 못 기억했지만, 친구는 그곳의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인지했다. 이 근처에 훨씬 자주 온 그 친구에게 기억 속 공간은 훨씬 촘촘했을 것이다. 그 촘촘한 망에 변화가 와서 걸린다. 나의 기억은 0.3mm 샤프심을 뱉어내는 0.5mm 샤프처럼 듬성듬성했다.
기억은 이렇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솟아오른다. 베르그송은 기억을 거꾸로 된 원뿔 모형으로 설명했다. 전공자가 아닌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억은 원뿔이 거꾸로 바닥에 닿아 있는 것처럼, 그 뾰족한 점(순간)에서 반짝! 하곤 내 머릿속을 마구 훑고 순식간에 다시 이 뾰족한 점으로 돌아온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계기가 발생하는 순간에 원뿔에는 왕복하는 하나의 경로가 생기고, 어느 반짝이는 점은 그 경로를 순식간에 1회전한다. 어느 장소에 발을 디디는 순간은 그런 계기가 된다. 묻혀 있던 기억들이 갑자기 하나로 엮여서 건져올려진다. 장소의 바닥은 온통 원뿔의 꼭짓점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경험하는 존재로서의 나에게 시간과 공간은 하나다. 경험한 시간과 공간은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그 경험된 시공간이 겹겹이 쌓인 거리, 땅, 풍경을 장소라고 부른다. 이미 사회학이나 인류학에서 공간과 장소는 구분되어 사용되는 것 같더라. 사실 내가 얘기하는 장소는 별 게 아니다. 의미 있는 공간, 나와 관련이 있는 공간, 추억들이 내 온몸을 붙들고 말을 거는 공간이 나의 장소다. 내가 방의 풍경에서 나의 역사를 떠올리는 것도 내 방이 공간이 아닌 장소이기 때문일 테다.
겹겹이 쌓인 장소들에 한 겹의 장소를 더 겹쳐 놓았다. 어떤 기억도, 어떤 경험도 그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모두 장소에 남아 있어.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내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장소와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어느 틈에 있다. 기억은 경첩처럼 나와 장소를 이어 준다. 기억은 장소의 살, 기억은 나의 살, 기억은 경계, 그래서 나의 기억은 나의 피부다. 겹겹이 쌓인 장소 속에만 겹겹이 쌓인 피부를 가진 내가 있다. 그런 장소는 잘 구운 크로아상처럼 바삭하고 고소하다. 벌써 교대역 운동장이 그립다. 방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실어나르는 이 밤 공기는 그 운동장에서부터 왔을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