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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Jul 12. 2019

얼음 깨기?

    나는 대학을 다니며 총 3개의 학내 단체에서 '~장' 역할을 맡아 왔다. 사실 '~장'을 잘 수행하려면 업무 능력보다도 사람을 대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장'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내가 이런 직책을 여러 번 맡은 이유는 단지 사람이 몇 없는 단체에서 회의에 열심히 참여하고 열성적인 사람이라는 점뿐이지, 실제로 '~장'에 맞는 사람이라서는 아니다. 나는 사람을 대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오늘도 그걸 많이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게 고작 그만큼이고, 그러고 나면 굉장히 지친다. 이런 사람은 대표자의 위치에 가면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 몇 없는 단체에서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도 대표자의 위치에 올라가게 된다.


    처음에 동아리에서 회장직을 수행할 때는 그래도 나름 괜찮았다. 그러나 그건 나와 이미 친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분위기를 잘 이끌어 줬기 때문이었을 뿐 내가 사람들을 잘 뭉치게 한 덕이 아니었다. 나는 일만 열심히 한다. 그러나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이 없다. 대표자의 핵심은 매력이다. 어떤 측면에서든 매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실함은 그 자체로 매력이 되지 못한다. 성실함은 사람이 아니라 일을 끌어들인다. 성실한 사람 옆에서는 자신의 쓸모를 느끼기 어렵다. 성실한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자족적이다.  나는 대표자로서의 매력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쓸 만한 동료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대표자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사람을 모으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자신을 통해 모임에 매력을 부여하거나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아예 없지는 않을 수 있지만, 좋게 봐도 매우 부족한 편이다. 특히 대표자에게 주어진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에 나는 가장 무능하다. 바로 아이스 브레이킹. 모든 '~장'의 첫 임무는 신입회원들이 단체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색함을 깨는 일을 정말 못한다. 소위 '인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대표자는 '인싸'의 중심이어야 한다. 그 단체가 마이너리티들의 집단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초반이 제일 힘들다. 사람을 대하는 게, 특히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게 제일 힘들다. 차라리 1:1은 괜찮다. 나는 항상 1:1의 만남과 대화가 훨씬 편하다. 나는 사람 만날 일과 약속이 가장 많은 1학년 때부터 1:1의 만남을 선호했다. 아니, 사실 그러한 만남만이 나에게 허락되어 있었다. 나는 크론병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었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고도 술 자리에서 잘 노는 사람들이 있지만, 술 자리에서 어색함을 깨기 위해 오가는 '가벼운 농담'들과 '벌칙'들은 나에게 폭력 그 자체였다. 병이 있어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사람에게 소주 1잔 대신 물을 가득 채운 500cc 잔을 건네던 선배,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병신'이라는 단어. 당장 바로 옆의 사람이 '병신'이라는 건 몰랐겠지.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면 승리하는 병신이 돼라.”
“지금까지 승리한 병신 코미디언 한기명이었습니다.”

    한기명이라는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무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면 승리하는 병신이 돼라." 그러나, 아쉽게도 나에게 그런 깡은 없었다. 나는 술 게임을 몇 판 하다가, 500cc 잔을 건네받고 마신 다음, 10분쯤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갔다. 그리고 1학년 내내 다시는 그런 술 자리에 가지 않았다. 2학년이 되니 술을 강요받지 않았고, 술 자리에서 나는 논알콜 테이블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술 자리에 매번 참가할 수는 없었다. 술 자리에서 펼쳐지는 억지 친목과 즐거움의 강요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겨웠다. 나는 약속을 잡아도 1:1, 아니면 기껏해야 나를 합해 4인 정도의 모임에만 나갔다. 나에게 가장 흔하고 편한 자리는 1:1로 만나는 카페다. 상대가 고학번이든 저학번이든 무조건 1:1이 더 편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의 '인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활동하는 곳에서도 겉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운이 좋게 나는 술 자리가 필수도 아니고, 술 자리에서도 술 없이 즐겁게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들을 찾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느꼈다. 그런 공동체에서도 나는 충분하지 않다고. 나는 그리 재밌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의 중심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타입이 아니다. 혼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목을 끌고 발표를 해 내는 일은 전혀 무리가 없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대표자가 된 이후에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싸'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술 없이, 비하 없이, 그러나 술 자리의 분위기 메이커처럼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역할. 나는 이 일에 3년째 실패하고 있다.


    어색함을 없애는 일을 '얼음 깨기(Ice breaking)'라고 칭한 것은 어색함을 얼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어색함은 주로 침묵으로 나타난다. 나는 자꾸 말을 해야 한다. 시덥지 않은 말을 하고, 반응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반응이 없으면 그때부터는 원 맨 쇼가 된다. 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늘은 내 무능을 통해 어색함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 왜 그건 '얼음'이며, '얼음'은 왜 얼른 깨야 할 것으로 상정될까. 사실 얼음은 적당한 온도에 가만히 두면 알아서 녹는다. 어색함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 봤자 나의 역할은 '적당한 온도'를 만들어서 얼음을 녹이는 일이다. 얼음 깨기보다 조금은 부담이 덜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어도 그런 적당한 온도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침묵은 반드시 깨야 할까, 무조건 우리는 빠르게 친해져야 할까, 왜 사람은 친하지 않으면 함께 일을 하기도 쉽지 않은 걸까, 나는 차라리 일만 하는 게 훨씬 편한데. 아무래도 나는 일하기 위해 친해져야 하는 상황이 어색하고 싫은 것 같다. 일은 일이고 친목은 친목이지, 이런 사람들에게 주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붙더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소위 '인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 경험상 그런 사람들은 주로 친목만 하고, 나 같은 사람들은 일만 한다. 네트워킹(net+work+ing)에서 누구는 네트(net)만 하고, 누구는 워크(work)만 하는 것이다. 이 요상한 이분법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그놈의 '얼음 깨기'를 계속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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