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 한 번도 순수하게 애도해 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게 순수한 애도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순수한 애도는, 내가 요구받은 바로는, 단지 슬퍼하는 거다.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도 말고, 그러나 차갑게 식지도 않고, 다만 처절하게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거다. 딱 거기서 끝나야만 한다. 슬퍼하고, 아파하고, 그리워하기. 이게 순수한 애도라면 나는 단 한 번도 순수하게 애도해 본 적이 없다. 몇 순간은 그랬겠지만 그건 순간에 불과했다.
한 사람이 죽었다. 그는 나이가 많았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70~80대 정도. 작은할아버지였다. 그는 빼빼 마른 채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남은 건 표정뿐이었다. 얼마 후 나는 장례식에 가야 했다. 암이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한 번도 제대로 쉬고 산 일이 없었다. 평생 일만 하고 돈을 벌며 살았다. 성과는 괜찮았다고 알고 있다. 보람 있는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 사람이 죽었다.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50~60대 정도였을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였다. 병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고민했다. 일이 너무 많은 건 아니었을까,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해소될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누군가 죽었다. 그는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어느 폐쇄된 공간에서 갑자기 가 버렸다. 그 이후에는 나보다 어린 누군가 죽었다. 나는 그를 존경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 죽었다. 내 친구였다. 오늘은 그의 기일이다. 벌써 1년이 되었네. 봉은사는 여전히 거대했다. 자살이었다. 셋 다 자살이었다. 왜 죽었을까. 참 명랑한 사람들이었다. 모두 그랬다.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니, 나에게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항상 낌새가 있었을지도. 나는 생각했다. 그 폐쇄적인 조직이 좀 달랐다면 어땠을까. 이 세상이 어떤 몸이든 품을 수 있는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낙인과 매장이 아닌 대화가 가능한 세상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세상이었다면 나는 이들이 모두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애도는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내 애도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건 그것 외에 나에게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간 사람이 그립고, 이 상황이 슬프고, 마음이 여전히 아프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나는 더욱 절망한다. 나의 절망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니까. 그리고 장례식과 기일을 챙기는 건 나에게 전혀 충분하지 않다. 나에게는 '그'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아무리 그리워도, 매일 그리워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나아지지 않았다. 난 덜 힘들고 싶었다. 힘들 때 그걸 덜어 보겠다고 혼자 글을 쓰고, 페이스북이 n년 전 오늘에서 너와 친구가 된 날, 너를 태그한 게시물을 보여줄 때 그걸 바라보는 것은 나의 마음을 전혀 돕지 못했다.
내가 나를 도울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더 이상 너처럼 사라져 가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내 주변에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지만, 나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줄 수 있는 따뜻함도 많이 한정된 것 같아서. 그리고 이미 가 버린 이에게는 따뜻함을 줄 수가 없다. 차갑고 딱딱해진 너의 몸을 만져 봤으니까. 그래서 나는 세상을 좀 더 괜찮게 바꾸고 싶었다. 널 고통스럽게 한 인간들은 모두 감옥에 처넣고, 무얼 하다 감옥에 갔는지 만천하에 공개하고, 사이버불링과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폭로하고 싶었다. 더는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죽는 사람이 더 생기는 게 싫다는 말이 불순하고 정치적으로 들린다면 나는 명백하게 불순하고 정치적이다.
나의 애도는 언제나 정치적이고 불순했다. 아름다운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섞인 슬픔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슬픔은 슬픔을 부른다. 그렇게 슬픔에 잠겨 버린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장례식 기간과 그 직후로도 그것에 빠져 살곤 했지만, 이 마음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그저 고통스럽고 절망적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 애도는 앞으로도 불순하고 정치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