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2014년의 좁고 열악한 자습실을 떠올리며
생존의 수단으로 자신의 과거를 거부할 수는 없는 거라고.
- Chris Marker, <La Jetée >(1962)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나 과제를 하다 보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험생 시절이 떠오른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지금 내 방의 구조 때문일 수도 있다. 2층 침대의 1층 자리에 책상이 있어서 마치 독서실 책상 같은 느낌이 난다. 내가 다니던 재수학원의 자습실이 떠오르는 환경이다. 밝은 색의 나무로 된, 칸막이가 설치된 책상. 이따금씩 공부를 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눈으로만 장난을 치거나 웃던 그때가 아주 묘하게 그리우면서 결코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평생 중 수학을 가장 좋아하고 열심히 하던 때, 글을 빨리 읽고 빠르게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던 때, 심지어 내가 읽은 게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결론을 내고 답을 맞히던 신묘한 그 시절은 성취감이 컸다. 매일 내가 무언가를 맞히며 지냈으니까.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해결하고, 맞히던 시절이고, 내가 대체로 옳던 시절. 책 한 권, 논문 몇 편을 통째로 읽고 거기서 키워드를 뽑아내서 내가 질문을 만들어야 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그 시절.
시아의 노래들을 듣고 있어서 그때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정작 당시에는 시아를 잘 알지도 못했지만, 시아의 노래에 잔잔하게 깔려 있는 그리움이나 도피, 슬픔의 무게가 나에게 2014년을 상기하는 것은 아닐지. 공교롭게도 지금 듣고 있는 앨범은 'Chandelier'가 수록된 <1000 Forms of Fear>로, 2014년에 발매된 앨범이다.
시아는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작업을 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 앨범 전에 이미 몇 차례나 앨범을 내고, 뮤직비디오 감독까지 할 만큼 다재다능했지만,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탓이었다. 다음은 없다는 마음으로 배수진을 치고 공부하던 나의 2014년과 시아의 2014년이 묘하게 겹쳐서, 시아의 그런 세월과 감정이 그 앨범에 스며들어 나에게 이렇게 전달되는 것은 아닌지.
성적을 올리고 싶어서 고등학교 때 나보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의 특이한 자세를 따라하곤 했다. 왼쪽 다리를 의자에 올려 오른쪽 허벅지로 왼쪽 발을 누르고, 왼쪽 팔을 내 상체와 평행하게 책상 위에 올리고, 상체를 들어올린다. 오른팔은 팔꿈치를 책상에 댄다. 눈에서 책상 위 종이에 수선의 발을 내리듯 종이를 보고 글을 읽고 문제를 푼다. 얼마나 자주 그러고 있었으면 그렇게 공부하는 모습이 친구에게 찍힌 사진도 있다.
청바지, 왼쪽 뒷주머니에는 항상 멸균 거즈가 있었다. 항문 주위 농양 제거 수술을 받은 후 한참 동안 나는 의자에 제대로 앉을 수 없었다. 수술 전에는 농양이 눌려서 살이 찢어질 것 같았고, 수술 후에는 농양의 누적을 방지하고자 환부에 (잘못) 설치한 실리콘 때문에 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왼쪽 궁둥이만 의자에 올리고 오른쪽은 허공에 띄운 채로, 상체를 왼쪽으로 기울여서 공부했었다.
한 번의 자습 중에도 수시로 화장실에 갔다. 냄새 나고 더럽고 좁아서 들어가기도 싫으면서 내가 있는 동안 누군가 문을 두들길까 봐 눈치가 보이던 화장실. 나는 화장실에서 구멍이 하나 더 뚫린 몸으로 변을 보고 아픈 구멍에 피와 염증으로 늘러붙은 거즈를 떼어 새 거즈를 대곤 했다. 얼마나 거즈를 많이 샀던지 며칠 전 방을 정리하다가도 안 뜯은 거즈를 발견했다.
자습 중에 걸핏하면 나갔다. 졸려서 잠을 깬다는 핑계로 계단에 서서 공부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조교가 조는 틈을 타서 밖에 나가기도 했다. 병이 아니었으면 혼자 나가서 술을 마시다가 공부를 망쳤겠지만, 사실 병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자습 중에 나갈 일도 적었을 것이다. 아마 2014년에 같은 학원에서 자습 중에 나보다 많이 몰래 나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갔다 들어오면서 한 번도 안 걸렸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 자주, 많이, 길게 떠올리는 시기는 2014년뿐이다. 그해만큼 나 자신에게 가혹했던 때가 없어서인지. 예전에는 그것이 '치열함' '열정'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절박함이고 가혹함이었다. 치열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회고의 초점이 조금 달라졌을 뿐. 단 한 문제도 틀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가혹함, 그렇게 내가 자신에게 가혹해지게 만들었던 절박함, 나를 그렇게 절박하게 만들었던 '명문대.'
매일 새로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질문을, 이상한 질문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는 지금이 나는 좋다. 확실한 답을 찾아서, 확실한 길로 나가던 그때보다. 인생이 온통 걸렸다는 그런 절박함이 해소된 이후라서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새로운 질문으로 발전시킬지 고민한다. 틀려도 상관없는 일, 틀리는 데에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일, 기존의 모든 답을 틀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일.
어쩌면 이렇게 계속 내가 과거를, 특히 내가 지금과 가장 달랐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가장 잊고, 외면하고 싶은 과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달라진 내가 손쉽게 부정해 버릴 것만 같으면서도, 그럴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아는 시간들. 나는 그런 이물감 가득한 과거를 꽉 붙들어야만 앞으로도 변할 수 있다. 지금이 당연히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살아가기, 지금의 삶과 태도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기.
생존은 머뭇거림을 삭제해 버리곤 한다. 물리적인 생존이 아니더라도, 지금 당장 생활에 치여서,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들. 지금 사회에서는 발전이 생존이니까. 그러나 생존의 수단으로 자신의 과거를 거부할 수는 없다. 내가 살았던 다른 시기의 잿더미를 잘 보이는 곳에 간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