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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Mar 01. 2020

#1. 생존하고 말하는 몸

방탄소년단과 Sia가 만나게 된 이유 1 : Sia의 예술 세계

* 이번 글은 뮤직비디오의 이야기가 많아서, 뮤직비디오 장면을 캡쳐하여 첨부한 것이 많습니다. 이미지 각각의 묘사는 사진 설명으로 달려고 노력했으나, 플랫폼의 분량 제한으로 인해 많이 축약되어 있습니다.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좌측은 흰 단발의 무용수가 소파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발차기를 하듯 든 상태에서 오른팔은 위로, 왼팔은 아래로 꺾고 있다. 우측은 세 명의 무용수가 입에 손을 대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지민이 중심에, 옆에는 제이홉과 뷔가 있다. 뒤에는 검은 옷의 댄서들이 서 있고, 세 명의 멤버는 다리를 넓게 벌리고 가슴을 내밀며 춤을 추고 있다.


나에게 몸이란


나는 아미라고 하기도,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사람이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내가 BTS를 알기 전에 Sia의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음악 때문은 아니었다. Sia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된 계기는 바로 'Chandelier'(2014)의 뮤직비디오였다. 곡 자체는 워낙 고음으로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 뮤직비디오는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Sia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뮤직비디오에는 생존하고 비명 지르는 몸이 담겨 있었다.


나는 몸에 관심이 많다. 미적인 측면보다도, 몸이 개인에게 가지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아픈 몸을 가지고 있고, 염증 재발 방지를 위해 수술 당시 몸에 뚫은 구멍 하나가 5년 넘게 뚫린 채로 있다. 계속 염증이 생기는 희귀질환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픈 몸을 관찰하고, 그것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경험과 감각을 계속해서 들여다본다. 그리고 몸의 말을 듣는다.


나는 원래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고, 통증도 잘 참았다. 너무 잘 참아서 맹장염이 그냥 복통인 줄 알았다. 결국 맹장이 터지기까지 했다. 그랬던 내가 크론병 진단을 받은 후로 아주 작은 감각에도 예민해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몸은 말하는 존재라는 것을.


단지 통증으로 나에게 신호를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의 아픈 몸은 항상 그 자체로 말하고 있다. 나의 상태를 상기해 주고, 나의 몸을 아프게 했을 수많은 계기를 나에게 상기해 준다. 때로 이 사회는 이 몸이 살아가기에 벅차기도 하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해 준다. 통증으로 인해 탈락하고, 사람들과 멀어진 경험들은 몸에 차곡차곡 쌓인다. 아픈 몸은 그런 경험들을 계속 뱉어낸다. 몸의 존재만으로 나는 그 경험들을 떠올리게 된다. 몸은 나에게 항상 말하고 있다.



Sia에게 몸이란

어두운 녹색빛이 도는 허름한 실내, 한 무용수는 문이 열린 통로의 벽에 사지를 딛고 떠 있다. 내려온 무용수는 눈과 입을 크게 열고 오른팔로 머리의 오른쪽을 잡고 왼팔을 뻗는다.

Sia의 'Chandelier'에는 한 명의 무용수가 나온다. 눈을 가리지는 않았지만 Sia를 연상시키는 머리 모양을 한 어린 무용수. 최대한 간소화되었고, 색깔도 무용수의 피부색과 비슷한 옷을 입은 이유는 아마도 그 무용수가 가진 '몸'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며, 동시에 피부를 더 드러낼 수 있는 속옷을 피한 이유는 여성의 몸이 경험하는 성적 대상화를 예방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몸으로 말한다는 것, 말하는 몸이라는 것을 말로 설명은 못할지언정 바로 느낄 수 있다.


Sia의 'Chandelier'는 자신이 가장 힘들던 시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곡이라고 한다. 아마도 뮤직비디오 안의 무용수는 Sia의 어린 시절을 재현하는 배우일 것이다. 그는 이 영상뿐 아니라 이후에 여러 영상에도, 라이브 무대에도 등장하여 춤을 춘다. 정확히 어떤 동작이 어떤 경험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영상 내내 나는 특히 얼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눈과 입이 자주, 크게 움직이며, 동시에 손도 입과 눈을 강조한다. 발을 얼굴에 갖다 대기도 한다. 즉, 팔이나 다리, 허리 등도 물론 무용에서 다 많이 사용되지만, Sia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명백히 얼굴과 손, 특히 눈과 입과 손이 강조된다.


눈과 입, 그리고 손은 모두 표현의 도구다. 입은 음성언어와 표정에 사용되고, 눈은 '눈빛'이나 표정에 사용된다. 손은 제스쳐에 사용된다. 그리고 눈과 입과 손이 모두 동시에 사용되어야만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어다. 오랫동안 수화라고 불렸지만, 수어에는 고유한 문법이 있고, 수어가 사용되는 농 문화 또한 문화 안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국립국어원은 한국수어를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로 인정했다. 수어는 '손말'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표정도 아주 중요하다(최근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사만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좌측은 'Soon We'll Be Found', 우측은 'The Girl Lost to Cocaine'의 장면. 수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닌데, 'Soon We'll Be Found'(2008)라는 곡과 'The Girl Lost to Cocaine'(2009)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수어가 등장한다. 후자에서는 잠깐만 등장하긴 하지만, 전자에서는 뮤직비디오 전반에 걸쳐서 수어가 가사를 표현하는 데에 사용된다. 즉, 음성언어와 수어로 동시에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 뮤직비디오다. 실제로 Sia는 인터뷰에서 수어가 아름다우면서도 감정을 담고 있는 소통의 도구라고 밝힌 바 있다(미주1). 같은 기사에서 언급한 라이브 영상에서는 Sia가 수어통역사와 함께 무대를 꾸린 사례도 볼 수 있다. 얼굴의 표정과 손의 움직임은 Sia의 영감을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 주제다.



얼굴은 언어다

좌측은 'Buttons', 우측은 'Big Girls Cry'의 장면. 전자는 눈썹과 입술에 테이프를 붙여서 살을 늘렸고, 후자는 한 손으로 눈 밑의 살을 끌어내리고 있다.
좌측은 'Buttons', 우측은 'Clap Your Hands'(2010). 좌측은 얼굴에 흰색 그물망을 뒤집어 썼고, 우측은 얼굴에 빨간 칠을 했다.
좌측은 ‘Day Too Soon’(2009), 우측은 ‘The Girl You Lost to Cocaine’. 눈 밑에 무지갯빛을 칠했고, 사물의 콜라주로 얼굴을 만들었다.

사실 Sia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대부분 얼굴이 부각되지만, 그중에서도 얼굴이 유독 두드러지는 뮤직비디오로는 'Buttons'(2009)와 'Big Girls Cry'(2015)를 꼽을 수 있다. 전자에서는 스타킹이나 집게 등의 도구를 사용해서 얼굴을 변형하는데, 얼핏 보면 한국 예능에서 개그를 위해 얼굴을 변형하는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를 보다 보면 웃기기보다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반복적으로, 다양하게 변형한다. 후자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오직 얼굴과 손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보기에 고통스럽기도 한 뮤직비디오인데, 이는 너무도 명백히 폭력과 고통의 경험을 담고 있는 움직임이 많기 때문이다. 'Chandelier'도 그랬지만, 이는 그보다도 더 직설적이다.

‘Alive’와 ‘Move Your Body’의 가사 영상 캡쳐. 시아의 가발은 썼지만 얼굴은 완전히 까맣고 어떤 형태도 보이지 않는다.

Sia의 영상들이 특이한 점은, 뮤직비디오와 별개로 가사 영상을 직접 제작하여 올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lyric video'라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것들과는 많이 다르다. 대부분의 가사 영상은 공식 계정이 아니라 일반 사용자들이 만들어서 올리는데, Sia의 경우에는 2014년부터 꾸준히 가사 영상을 별도로 제작했다. 'Chandelier'(2014), 'Alive'(2015), 'Cheap Thrills'(2016), 'Never Give Up'(2017), 'Move Your Body'(2017)까지, 이 영상들은 모두 뮤직비디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뮤직비디오들과 달리 가사 영상에서는 Sia를 상징하는 머리 모양을 한 이들의 얼굴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이 사라지고, 가사가 등장한다. 'Chandelier'의 경우에는 심지어 몸도 없고 오직 머리만 남아 있다. 여기서 몸을, 특히 표정을 곧 언어로 이해하는 그의 일관성이 드러난다.


특히 그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입을 벌리는 동작이 많이 나타난다. 단지 밥을 먹거나 노래를 하기 위해 입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입을 벌린다. 때로는 놀란 듯이, 때로는 화가 난 듯이, 때로는 겁을 먹은 듯이, 때로는 위협하듯이 입을 벌린다. 음성언어에서든 수어에서든 입은 명백히 말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Sia의 뮤직비디오에서 얼굴이 언어가 되는 과정에는 눈과 입이 작용하지만, 눈보다는 입이 더 언어와 직접 관련된다. 눈의 움직임이 없을 때도 입은 크고 격렬하게 움직이곤 한다. 입이 꾸준히 등장함으로써, 몸은 더욱 '말하는 존재'가 되어 간다.



몸은 언어다

'The Greatest'의 장면. 바로 아래 문단에서 사진 설명.

나에게 말하는 존재로서의 몸이 가장 와닿은 뮤직비디오는 단연 'The Greatest'(2016)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Sia의 페르소나로 등장하는 그 무용수만이 살아서 눈물 흘리고 있다. 무용수가 고개를 젖히며 입을 벌리자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하고, 무용수의 움직임에 맞추어 함께 입을 벌린다. 무용수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서 사람들을 이끈다. 계단을 올라 복도에 쓰러진 이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여기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이는 춤보다도 무술에 가까워 보인다. 주먹을 쥔 양팔을 붙이고 주먹을 위로 향하여 마치 권투에서 '가드를 올리는' 것과 같은 형태로 스텝을 밟는다.

'The Greatest'의 장면. 바로 아래 문단에서 사진 설명.

쓰러진 이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우고, 사기를 돋우며 슬픔과 분노를 춤으로 승화시키는 무용수. 그의 입으로 카메라가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공간이 바뀌는데, 미러볼이 굴러다니는 어두운 클럽이다. 무용수가 입을 벌리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쓰러져 있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똑같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들은 모두 쓰러진다. 사람들이 산처럼 쌓여서 쓰러진 그 장면의 뒤에 구멍 뚫린 벽이 보인다. 구멍으로 빛이 비친다. 마치 총알이 뚫고 지나간 듯한 구멍으로, 총알의 궤적을 그리는 듯한 햇빛이 비친다.

'The Greatest'의 장면. 바로 위의 문단에서 사진 설명.

죽은 이들을 살리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듯한 이 뮤직비디오는 미국에서 일어난 성소수자 증오범죄의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2016년 6월 12일, 미국 올란도의 게이 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49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영상에 등장하는 이들은 무용수를 제외하고 49명이다. 무용수는 뮤직비디오 시작부에서 자신의 손으로 볼에 무지갯빛을 칠한다. 양쪽 눈의 바로 아래에 손을 대고, 각 손가락에서 다른 색깔이 양 볼에 세로로 그어진다. 무지개의 얼굴로 눈물 흘리고 소리 지르는 무용수는 살아남아 슬퍼하는 이의 모습을 보여준다(관련하여서는 이 기사를 참고하라).

바로 위의 문단에서 사진 설명.



몸이라는 생존


전투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이 뮤직비디오는 아주 높은 음의 가늘고 긴 '삐' 소리로 끝나는데, 이는  'Alive'(2015)의 뮤직비디오와도 연결되어 있다. 'Alive'의 뮤직비디오는 같은 소리로 시작한다. 'Alive'에서는 무용수가 아니라 무술 선수가 등장한다. 그는 마히로 타카노라는 9살의 카라테 챔피언이다. 뮤직비디오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때로 화를 참는 듯하면서 무술에서 으레 하듯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순서로 따지면, 'Chandelier'-'Alive'-'The Greatest'로 이어진다. 몸으로 말하는 뮤직비디오, 다음에는 무술, 그리고 전투적인 춤.

동양 도복을 입은 마히로 타카노가 차렷 자세를 잡고 서 있다가 소리 치듯 입을 벌린다.
마히로 타카노가 양 손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고, 머리카락이 흔들릴 만큼 기합을 넣는다.

여기서 우리는 Sia가 보여주는 몸들이 말하는 몸일 뿐 아니라, 생존하는 몸임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갇힌 채 비참한 삶을 노래하는 'Chandelier'의 몸, 여전히 어리지만 분노와 슬픔을 힘으로 승화시키며 아직 살아있다고 생존을 외치는 'Alive'의 몸, 그리고 죽은 이들과 함께 전투의 춤을 추고자 하는 마음으로 애도를 표하지만 그들의 생을 다시 불러오고자 하는 'The Greatest'의 몸. 생존한 몸, 생존하여 강해진 몸, 나의 생존이 타인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는 몸이라는 서사다.


Sia에게 몸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그러한 표현은 생존의 경험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는 생존한 몸으로 생존의 경험을 끊임없이 말하며, 자신만의 생존에 그치지 않고 타인의 죽음과 삶에 연대하고자 한다. 'Alive'와 'The Greatest'를 통해 그는 자신이 온갖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기어코 살아남아 지금까지 숨쉬고 있으며,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의 몸은 언어이며, 그의 언어는 생존이다. 그렇게 그의 몸은 생존이 된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미주1) 한편으로 이러한 인식은 소수자의 문화에 대한 낭만화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농 문화는 경우가 조금 다를 수 있다. 농인들의 문화적 자부심과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청인 문화와 농인 문화의 관계는 일반적인 다수-소수 혹은 억압-피억압과는 관계가 조금 다르다. 연구활동가 박이대승(2017)은 다수자와 소수자에 관한 들뢰즈와 과타리의 논의를 소개하는데, 여기서 언어 영역의 접근이 중요하다. 다수 언어와 소수 언어의 차이는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무엇이 '표준'이고 무엇이 그것을 흉내내어 만든 '변이'인지다. 백인의 영어는 고정된 구조를 갖고 있지만, 흑인의 영어는 그것을 따라하고, 비틀며 만들어져서 독자적인 구조가 없다는 것이 사례로 제시된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농인에 대한 사회적 제도가 여전히 미비하지만, 수어를 곧 소수 언어의 위치로 고정하기는 어렵다. 농인의 사회적 지위는 사회 안에서 소수자일 수 있지만, 농 문화의 독자성과 당사자들의 자부심을 고려한다면, Sia의 평가를 낭만화라고 바로 비판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에서 수어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과 같은 노래와 함께 ‘봉사하는 비장애인’ 혹은 ‘착한 비장애인’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자주 활용되곤 한다. 이는 수어에서 수어 자체와 농 문화가 완전히 삭제되는 상황으로, 심지어는 문법도 틀려서 정작 농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공연도 많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는 수어 자체를 드러내고, 농 문화의 독자성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김원영(2018)이 장애인의 몸에 끌리는 ‘디보티’들에 대해 한 이야기("우리는 한 인간의 신체를 그저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거나 거기서 어떤 숭고한 감동을 받는 데서 그칠 수도 있지만, 그 신체를 통해 한 사람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읽어내고 그 사람의 고유한 개별성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시작이 어떻든 말이다.")처럼,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수어에 대한 관심이 그 자체로 문제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러 지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참고문헌

박이대승 (2017)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오월의봄: 서울), 165~169쪽

김원영 (2018)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 파주), 263쪽

그외 본문에 링크로 첨부한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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