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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Mar 01. 2020

#2. Kinetic Manifesto의 의미

방탄소년단과 Sia가 만나게 된 이유 2 : BTS와 Sia의 접점

* 1편의 내용은 이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BTS: 이곳에서 생존하고 말하는 몸


그렇다면 BTS는 이러한 맥락에서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지금의 BTS는 이론의 여지 없는 세계적인 스타다. 그러나 그들이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대부분이 서울이 아닌 지역 출신인데다가, 3대 기획사가 방송 및 언론과 유착된 상황에서 중소기획사에 들어갔다. '중소기업돌'이라는 별명은 그런 데에서 나왔다. 영화이론가 이지행(2019)의 표현처럼, "이들의 출발은 K팝 안에서도 중심은커녕 손으로 쓱 밀면 지워질 것 같은 언저리 어디쯤이었다." 데뷔한 뒤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해체의 위기도 겪었다. 인지도가 생긴 이후에도 이들은 여러 여러움을 겪어어야 했다.


그런데 이는 경험에 머물지 않고, 그들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이 꾸준히 발표한 사회 참여적인 가사들과 경험은 한국 사회를 살아내는 청년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고, 이지행(2019)에 따르면 그들이 뮤직비디오와 쇼트 필름 등의 영상들을 통해 구축한 방탄 유니버스의 성장 서사는 생존의 이야기다. 그들은 생존의 경험을 말하고, 다른 이들에게 함께하자고 노래하며 연대를 구축한다.


BTS의 퍼포먼스는 유독 유명하다. 오죽하면 춤 연습 영상이 인기를 끓어오르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그들은 단지 노래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메시지를 몸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메시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춤의 기본적인 속성이니 BTS만의 특징이라고 하기 어렵겠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존과 연대를 노래하며 이를 몸으로 표현한다는 점은 BTS의 고유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유엔 연설에서 "Speak Yourself"라고 말한다. 출신 지역, 피부색, 성별은 모두 몸의 문제다. 여기서 몸은 단지 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물질적 조건이다. 그들은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출신 지역과 피부색, 성별에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말하라고 요청한다. 여기서 열거한 항목들은 몸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차별의 빌미가 된다. 그렇기에 어떤 몸을 가지고 있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달라는 요청은, 그 몸이 사회 속에서 경험한 것, 그 몸으로 이 사회를 살아내면서 경험한 것을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다. 자신들처럼, 생존하고 말하는 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예술 형식의 측면에서도 약간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철학자 이지영(2018)은 BTS의 예술형식이 기존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의 영상은 영화나 뮤직비디오 같은 기존 범주에 갇히지 않고, 그 의미도 다층적으로 구성된다. 영상들이 서로를 참조하며 해석의 가능성을 창출하고, 무작위의 사람들이 이 영상을 관람하며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다. 그러한 해석 없이는 예술의 의미도 없기에, 관객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를 해석하는 데에는 BTS의 인터뷰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올린 모든 콘텐츠에 가사와 뮤직비디오는 당연히 포함되며, 그 안에 배치된 파편적인 상징들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지영은 이 새로운 영상들에 '온라인 설치영상'이라는 이름을, 이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예술형식에는 '네트워크-이미지'라는 이름을 붙인다.


Sia의 영상들이 같은 구조를 갖지는 않지만, Sia 또한 영상들을 통해 생존과 연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해석의 여지가 많지는 않지만, Sia의 뮤직비디오와 가사, 가사 영상은 사회적인 사건과 Sia 개인의 삶, Sia의 인터뷰 등을 통해 해석된다. 관객의 참여가 핵심이며 작품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BTS의 예술형식과는 거리가 있지만, Sia는 BTS 이전부터 생존한 몸으로 생존을 노래해 온 예술가이며, 몸이라는 생존을 영상 예술로 만들어서 온라인 플랫폼에 게시한 예술가다. 그리고 작품 하나하나의 경계가 뚜렷한 편이지만, Sia의 영상들은 비슷한 스타일과 출연자, 그리고 주제의식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의미가 다양하지는 않을지라도, Sia의 콘텐츠들도 상호참조적으로 의미를 형성한다.


BTS의 예술이 Sia의 예술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그들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찾는다.



Kinetic Manifesto


BTS가 이번에 발표한 앨범의 타이틀 곡은 'On'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공식 뮤직비디오가 나오기도 전에 'Kinetic Manifesto Film : Come Prima'(2020)라는 영상이 먼저 공개되었다. 나는 이 영상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음악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영상에 완전히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무술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의 배치는 정말 강력했다. 마치 행군하듯 북을 치는 이들, 그리고 싸움을 구경하는 무리처럼 댄서들이 멤버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 게다가 멤버들의 안무는 무술을 떠오르게 했다. 특히 지미 팰런 쇼에서 기획한 영상의 댄스 브레이크에서 댄서들이 소리를 지르고 바닥을 치는 모습도 호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내내 'Kinetic Manifesto'가 무슨 의미일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Sia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버전을 몇 번이나 행복에 젖어 들었다. 결국 나는 Sia의 'This is Acting' 앨범을 통째로 듣기 시작했는데, 'Move Your Body'라는 곡의 가사를 듣다가 BTS와 Sia의 연결점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꽂힌 가사는 이것이었다.


Your body is poetry
Speak to me
Won't you let me be your rhythm tonight?


이 가사를 듣고, Sia의 작품들을 내가 앞서 쓴 내용처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Sia에게 몸은 '시'다. 수많은 언어를 함축하고 있으면서, 온전히 언어로 번역해 낼 수 없는 감각까지 안고 있는 것, 그 자체로 말하는 것. Sia는 자신의 몸만이 아니라 타인의 몸에서도 시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시의 운율이 되겠다고 말한다. 이 곡의 제목이 'Move Your Body'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춤은 낭송일 것이다. 즉, 춤은 언어였다. 몸은 언어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생존이었다.

'On'과 'Not Today'에서 퍼포먼스를 정면에서 잡는 장면. 중앙에는 멤버들, 뒤에는 검은 옷의 댄서들.
'On'과 'Not Today'에서 퍼포먼스를 공중에서 잡는 장면. 출연자들이 사선으로 잡히게끔 잡는다.

BTS 예술 세계의 전체 맥락은 '성장'으로 요약되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그 성장은 항상 생존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나는 이번 'Kinetic Manifesto Film'을 보면서 'Not Today'(2017)의 뮤직비디오가 자꾸 떠올랐다. 넓은 곳에서, 검은 옷의 댄서들과 함께 강렬한 군무를 선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음악의 분위기도 사기를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퍼포먼스를 찍는 구도도 여러 면에서 흡사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Not Today'의 가사를 생각할수록 어딘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All the underdogs in the world
A day may come when we lose
But it is not today
Today we fight!


이 곡은 모든 억압받는 자를 호출하며, 우리가 질 날이 오겠지만 그것이 오늘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설령 패배할지라도 오늘은 싸우자고 말하는 노래다. 날지 못하면 뛰고, 뛰지 못하면 걷고, 걷지 못하면 기어서 나아가자고 말한다. 이러한 연대의 중심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 곡은 광화문에서 시민들의 촛불이 모여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부르짖던 2017년 2월에 나왔다. "새 세상"을 노래하며,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가"라고 노래한다. 당시 광화문에서는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하자고 노래하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가 울려퍼졌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Not Today'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살아내는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자는 제안이었다. 그 제안은 2016~2017년의 대한민국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비롯되었지만, 연대의 요청은 전 세계를 향했다. 이곳에서 생존한 몸은 세계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On'(2020)의 뮤직비디오와 가사에서 모두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숨 쉬고자 하는 투사(fighter)다. 그런 면에서 나는 'Not Today'의 영상과 'Kinetic Manifesto Film'의 시각적 유사성이 우연보다 의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둘의 메시지는 분명 이어져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Sia가 BTS와 접속했다. 언제나 자신의 예술을 몸으로 표현하며, 생존을 구현한 Sia의 영상들은 돌이켜보면 언제나 이미 '움직이는 몸의 선언(Kinetic Manifesto)'이었다. Sia는 무용수의 몸을 통해 죽은 줄 알았던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굳건히 살아낼 것이라고, 다시는 패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이 이곳에 존재한다고 자기 자신을 말했다("Speak Yourself"). 생존한 몸에는 흔적이 있다. 폭력의 경험을 관통한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것은 몸의 증언이기도 하지만, 증언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인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Sia는 그저 외쳤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온 세상에 외쳤다. 누구의 인정도 필요하지 않은, '선언'이었다.


BTS는 컴백의 타이틀 곡을 왜 하필 'On'으로 정했고, 왜 하필 Sia가 그 곡에 피처링을 했으며, 왜 마침 그 곡만이 이례적으로 'Kinetic Manifesto'로 만들어졌을까. 이번 공식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전의 영상들과는 분명히 다른 맥락이다. 즉, 새로운 방탄 유니버스의 시작이다. 'On'은 새로운 방탄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생존과 연대라는 'Not Today'의 태도를 계승한다. 그리고 Sia의 예술 세계는 생존과 연대를 선언하는 말하는 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Sia는 완벽한 파트너였다.



나가며


BTS의 이번 기획에서 Sia와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컴백하면서 가장 처음 설치한 영상도 'Black Swan Art Film'(2020)이었다. 이 영상 속에서 갈등하고 고통받지만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자유로워지는 모습은 기존 BTS의 예술의 메시지와 맥을 같이 한다. 여기서도 몸은 분명 선언의 도구다. 'Art Film'과 'Kinetic Manifesto Film' 모두 BTS의 예술에서는 처음이었지만, 이 둘의 핵심은 선언하는 몸이었다.


I'm alright, bring the pain, oh yeah
Imma fight, bring the pain, oh yeah
Rain be pourin', sky keep fallin', everyday oh na na na
I'm alright, bring the pain, oh yeah


'On'의 후렴구에서 Sia가 부른 이 부분에서, 시아는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강인한 생존자다. BTS와 Sia의 만남은 생존하고 말하는 몸들, 몸으로 선언하는 이들의 만남이었다. 최근 Sia의 작품 활동이 눈에 띄지 않아서 슬펐지만, 이렇게 멋진 곡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 가는 방탄소년단의 앞으로의 모습도 지켜보고 싶다. BTS와 Sia가 함께 세상에 내어 놓은 몸의 선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하다.


참고문헌

이지영 (2018) "BTS 예술혁명"(파레시아: 서울), 118~127쪽

이지행 (2019) "BTS와 아미컬처"(커뮤니케이션북스: 서울), 2~13쪽, 135~138쪽

그외 본문에 링크로 첨부한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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